천하의 방탄소년단·방시혁마저…'국가 기간산업화'된 K팝의 그늘

기사등록 2022/06/16 00:00:00 최종수정 2022/06/16 00:04:46

BTS·하이브, K팝 거대한 금기 깨며 주목

'K팝 기계'라고 불리던 다른 아이돌들과 차별화 성공

하지만 현재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고 토로하는 상황

K팝 국가대표가 되면서 부담이 컸을 듯

연예인 병역 특례 관련 총대 메게 된 상황도 버거움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방탄소년단 10일 오후 서울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BTS PERMISSION TO DANCE - SEOUL'에서 열창하고 있다. (사진=빅히트뮤직 제공) 2022.03.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천하의 '방탄소년단'(BTS)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마저 K팝의 성장주의에 포박당했다. 방탄소년단이 데뷔 9주년 만에 단체활동을 잠정 중단한 배경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K팝의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했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방탄소년단 리더 RM은 지난 14일 유튜브 채널 '방탄TV'에 공개된 영상 콘텐츠 '찐 방탄회식'에서 "K팝이라는 것도 그렇고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를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되고 계속 뭔가를 해야 되니까"라는 얘기다.

사실 방탄소년단은 기존 K팝 그룹과 결이 다르다는 점을 높게 평가 받아 세계적인 그룹이 됐다.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잡지 '롤링스톤'은 지난 2018년 방탄소년단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던 당시 분석 기사에 'BTS는 어떻게 K팝의 거대한 금기를 깨고 있나'라는 제목을 달았다. 상당수 K팝 아이돌 그룹이 안전하다고 입증된 성공 공식을 따르는데 반해, 방탄소년단은 이를 깨는 행보를 이어왔다고 봤다.

특히 "다른 아이돌들과 달리 사건, 사고에 연루되지 않은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노래를 만들 때는 비평적인 시선을 유지한다"는 것을 특기할 점으로 짚었다. "아이돌 그룹들을 똑같은 'K팝 기계'라고 비판하던 평론가와 음악팬에게 신선함을 안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RM이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고 토로하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사실 하이브는 아티스트 친화적인 회사로 알려졌다. 윤석준 하이브 아메리카 CEO가 2020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온라인 강의에 특별 게스트로 참여했을 당시 이 학교 학생들은 하이브(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차별점으로 아티스트 친화적 계약 조건, 아티스트의 자율성 존중, 회사와 아티스트의 합리적 힘의 균형 등을 꼽았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찐 방탄회식'. 2022.06.14. (사진 =유튜브 방탄티비 캡처)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해 미국 경제 전문매체 ‘패스트 컴퍼니(Fast Company)’가 하이브를 마이크로소프트, 스페이스X 등과 함께 '2022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50대 기업'(The World's 50 Most Innovative Companies 2022)에 선정했을 당시에도 하이브가 팬데믹 기간 동안 방탄소년단의 '21세기 팝 아이콘'으로서 위치 공고화를 위해 성공적인 지원을 펼쳐왔다는 점을 높이 샀다.
 
여기에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방시혁 의장이 '작가주의 이미지'로 K팝 아이돌 그룹 회사에 지적이고 자율적인 이미지를 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브(당시 빅히트)가 지난 2020년 10월 상장 이후 회사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방탄소년단과 방 의장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됐다. 다양한 이해 관계가 맞물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자율성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K팝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고 짧은 시간에 밀어붙이는 성장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기업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하이브나 방탄소년단도 몰릴 수밖에 없었다. 또 세계를 휩쓴 K팝이 마치 국가 기간 기간산업(基幹産業)처럼 되고 방탄소년단·하이브가 주역 또는 국가대표처럼 되면서 쉴 틈도 없었다.

더구나 올해 데뷔 9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그동안 장기휴가를 2번 보냈을 뿐, 음악·예능 콘텐츠 등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자신들을 소진시키야 했다. RM이 "아침에 헤어·메이크업하고 뭐하고 뭐하면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프루프 라이브'. 2022.06.13.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슈가도 "지금 쥐어짜는 거랑 8년 전 7년 전 쥐어짜는 거랑은 너무 다르다. 그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스킬적으로 부족하니까 쥐어 짜낸 느낌이었고,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팀 활동을 쉬고 한 챕터를 정리하면서 쉼표를 찍을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스·딥 퍼플·신중현 등 오랜 경력의 전설적인 뮤지션만 내는 앤솔러지 앨범 '프루프'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낸 것도 설명이 된다.

또 방탄소년단이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스케줄을 소화해야했던 이유 중 하나는 군 입대 문제와도 얽혀 있다. 병역 특례 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한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군 입대는 수순이다. 이에 따른 방탄소년단 공백은 하이브의 위기와도 직결된다. 하이브가 상장 이후 방탄소년단을 대신할 수 있는 라인업 구성을 위해 세븐틴(SVT) 소속사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등 인수합병 등에 주력한 이유다.

일본 마쓰타니 소이치로(松谷創一郎) 문화 칼럼니스트 겸 저널리스트는 15일 방탄소년단이 단체 활동을 잠정 중단한 것과 관련 야후 재팬에 쓴 칼럼에서 "한국에서는 만 28세(방탄소년단 진은 화관문화훈장을 받아 만 30세인 올해까지 연기)까지 남성은 약 20개월간의 병역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 "연예인들도 예외가 아니라 K팝 남성 그룹에서는 이를 극복하는 것이 큰 걸림돌이다. 신화,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 등 과거 인기그룹들이 군복무로 인해 한 때의 기세를 꺾였다"고 분석했다.

진이 연내에 입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짚으며 "이번 방탄소년단의 단체활동 중단은 (현재 한국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병역 특례 혜택 논의가 큰 진전이 없는 가운데 발표됐다. 현재 병역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반반 정도일 것이다. 오히려 이 활동 중단으로 국회의원들 사이에 병역면제 논의가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또 "방탄소년단이 전례 없는 활약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병역 관련 전망은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면서 "다만 한국 연예계와 한국 정부가 앞으로도 K팝의 글로벌 전개를 지향한다면, 미래에도 비슷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번 방탄소년단 사례를 다루는 케이스가 전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2022.06.09. (사진 = 빅히트 뮤직 제공)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의 국회나 사회가 어떤 판단을 하느냐에 따라 소프트파워 정책이 국가적으로 공감대를 어떻게 얻어가는지에 대한 측정 지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방탄소년단이 명실상부 세계적인 스타가 된 계기인 미국 빌보드 메인싱글차트 '핫100' 1위, 미국 최고 권위의 대중 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에 2년 연속 후보로 지명된 것이 '양날의 검'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분들이 팀에겐 영광인건 분명하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가수로는 처음 '핫100' 1위를 차지한 '다이너마이트'를 시작으로 '버터' '퍼미션 투 댄스' 등 영어 노래들은 사실 방탄소년단 스타일의 곡이 아니다. 영어 노랫말의 '버블검 팝'(10대들을 타깃으로 한 대중음악 장르)으로 팝 본고장 미국을 공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밝음과 희망을 상징하며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방탄소년단은 '팝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UN총회 연설 등의 내용까지 더해지면서 '평화대사' 같은 이미지도 더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태생적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르다. 원래 방탄소년단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정통 힙합그룹을 고려해 제작을 시작했다. 연습생 시절 아이언 같은 래퍼가 포함됐었다. RM은 언더그라운드 힙합 크루 '대남협'(대남조선힙합협동조합)에 속해 있었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뮤직 제공 )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런데 데뷔 직전 아이돌 힙합그룹으로 정체성이 다소 바뀌었다. 그럼에도 힙합 기반의 저항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가져갔다. '학교 3부작' 등을 통해 '입시' '등골브레이커' 등 동세대가 동시대에 겪는 문제들을 다루며 팬층을 형성했다. 특히 '쩔어' '상남자' '불타오르네' 같이 다소 거칠지만 화끈한 군무와 비트의 노래로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와 달리 개구진 모습들을 마음껏 보여준 웹콘텐츠 '달려라 방탄'도 이들의 인기에 한몫했다.

하지만 점차 세계적으로 이들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조금 더 대중성의 기준을 찾게 됐고 기존의 색깔을 조금씩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영어 노랫말의 팝을 잇따라 발표하는 것과 관련 멤버들 사이에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잇따른 '핫100' 1위 신기록 그리고 마치 한국 국가대표처럼 '그래미 어워즈' 수상을 노려야 하는 상황들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연예인들의 병역 특례 혜택과 관련 본의 아니게 하이브와 함께 총대까지 메게 되면서 이 역시 큰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혈기왕성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마음껏 해야 하는 20대 중후반의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흘러가는 여러 안팎의 상황들이 압박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마쓰타니 소이치로 칼럼니스트는 "한국에서 음악을 비롯한 K-콘텐츠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며 중요한 소프트파워 정책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방탄소년단의 병역 특례는 단순히 인기 스타를 특별취급이 아니라 국익에 직결되는 문제로, 일본을 포함한 해외에선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다행인 건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완전히 단체 활동을 접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단체 음악 활동은 잠정 중단하되, '달려라 방탄' 활동을 재개하며 초심을 다잡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이번 단체 활동 잠정 중단이 해체 수순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 박지원 대표는 15일 오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팀 해체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팀 해체 수순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의 팀 활동을 잠시 쉬어간다는 아티스트의 메시지는 완전한 활동 중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박 대표는 개인 활동 병행으로 활동의 범위는 오히려 더 다채롭게 확장돼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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