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자산 전개 시 수억 내지 수십억 소요
미국, 전략 자산 전개 비용 청구할 가능성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에 영향 미칠 수도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란 미국의 동맹국이 핵 공격 위협을 받으면 미 본토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미군 전력을 투입해 응징한다는 개념이다. 핵우산(nuclear umbrella)이 포괄적이고 정치적 개념이라면 확장 억제는 핵우산을 군사적 차원에서 구체화한 개념이다. 확장 억제에는 전략 핵 폭격기, 핵 추진 잠수함, 핵 추진 항공모함,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고성능 스텔스 전투기 F-22 등이 동원된다.
윤석열 정부는 확장 억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21일 한미 정상 회담 당시 공동 성명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 억제 공약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지난 25일 북한이 감행한 ICBM 도발 이후에도 정부는 여지 없이 확장 억제를 꺼내들었다. 윤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연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한미 정상 간 합의된 확장 억제 실행력과 한미 연합 방위 태세 강화 등 실질적 조치를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섭 국방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한 미 전략 자산 전개를 요청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든 게 순조롭다. 앞으로도 강력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 확장 억제가 언제든 북한을 압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확장 억제는 엄밀히 말하면 공짜가 아니다.
전략 자산은 위력이 막강한 만큼 유지 비용이 많이 든다. 일각에서는 "전략 자산이 한 번 움직이면 달러를 하늘과 바다에 뿌리고 다닌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미국 연구 기관인 국방정보센터(CDI)가 2011년 분석한 2000~2010년 미국 공군 항공기 비행 1시간당 운용 비용 자료에 따르면 1시간당 B-2는 13만5000달러(1억4400만원), B-1B는 6만3000달러(6734만원), B-52H는 7만3000달러(7800만원)가 든다. 이 폭격기들과 함께 비행하는 공중 급유기까지 따지면 운용 비용은 더 늘어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으로서는 북한 도발로 인해 한반도 인근에 전략 자산을 보낼 때마다 비용 부담을 느끼게 된다. 경제 논리로 세계 전략을 재해석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두고볼 리 만무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 협정(SMA) 협상 당시 미군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한국이 분담할 것을 요구했다. 앞으로는 전략 자산이 전개될 때마다 비용을 한국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정부의 이같은 요구는 방위비 분담금 성격 자체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방위비 분담금은 인건비와 군사 건설, 군수 지원 등 주한미군 실제 주둔에 필요한 비용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대야 하는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방위비 분담금 외에 다른 항목으로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2018년 방위비 분담금은 960억원이었지만 전체 직·간접 지원 규모는 2조9177억원이었다. 미국이 간접 지원 항목을 만들어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대라고 압박할 경우 한국이 이를 끝까지 거부할 명분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 안팎에서는 미군 전략 자산을 '상시 순환 배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미군 전략 자산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 돌아가면서 붙박이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이 현실화될 경우 방위비 분담금 성격 자체에 영향을 줄 여지가 있다. 최악의 경우 한국이 미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 명목으로 지급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현 미국 정세를 보면 미군 전략 자산 전개에 따른 청구 비용은 한층 비싸질 우려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에서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면 그는 지난 임기 때 이루지 못했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관철하려 할 공산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마크 에스퍼는 지난 25일 SBS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만약 재선이 된다면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에스퍼 전 장관의 말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미 전략 자산 전개 비용을 청구하거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확장 억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남북한 모두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 실험을 할 때마다 미 전략 자산이 전개되는 사례가 반복되면 이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은 남북한 모두를 피폐하게 만든다.
이에 대응해 미 전략 자산이 전개되고 한국이 그 비용을 대야 한다면 그때마다 한국은 미국에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씩을 지불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남북한 모두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확장 억제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래식 억제로 충분한 한반도 상황에 확장 억제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한반도 확장 억제의 재조명: 핵우산의 한계와 재래식 억제의 모색' 논문에서 "본래 재래식 억제는 신뢰성은 높지만 효과성은 핵우산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반도에서는 핵을 통한 대량 보복에 의존할 필요 없이 압도적인 한미 연합의 재래식 보복 능력만으로도 정권 붕괴 위협을 통해 북한을 충분히 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또 "한반도에는 이미 재래식 전력만으로 군사력의 포화 상태, 즉 공포의 균형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으므로 핵을 통한 순수 억제 효과는 크지 않다"며 "오히려 위기 시에 핵 억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우발적 사고, 인지적 오류, 핵무기 사용의 압박 등으로 인해 위기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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