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靑 이전 속전속결…정치쟁점화 '이슈 블랙홀' 되나

기사등록 2022/03/20 16:14:07 최종수정 2022/03/20 16:19:29

尹, 靑 이전 속도조절론 정면 돌파…강력한 추진력 과시

제왕적 대통령 탈피 취지 좋지만 밀어붙이기 결정 지적

靑 이전비 법적 근거 논란…文정부와 예산문제 등 갈등

靑 이전 정치 쟁점화…인수위, '이슈 블랙홀' 빠질 우려

충분한 국민 의견수렴 부족에…尹, 비판 여론 다독여야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3.20.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면서 청와대 이전 작업에는 속도가 붙게 됐다.

하지만 인수위 출범과 동시에 민생이 아닌 청와대 이전이 정치쟁점화하면서 다른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혹'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이 청와대 이전 철회를 요청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여야 대립은 물론 보혁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이 높아 자칫 국정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윤 당선인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대선이 끝난 지 불과 11일 만에 청와대 이전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시급한 국정 과제가 아닐 뿐더러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이라 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의 측근인 권성동 의원은 "청와대를 해체하겠다는 가장 큰 이유는 청와대 참모진의 비대화와 이로 인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탓에 역대 대통령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내놓고도 한계에 부딪혀 관철시키지 못한 것과 달리, 윤 당선인은 대선이 끝난 지 불과 2주도 안 돼 청와대 이전 부지를 신속하게 검토, 확정했다. 

이같은 신속한 결단이 윤 당선인의 강한 추진력을 돋보이게 하는 측면은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거액의 예산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청와대 이전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중대한 사안인데도 국민들의 충분한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선인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컨센서스가 부족한 만큼 이에 따른 정치권의 반발이나 비판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 당선인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용산 집무실 이전 결정 과정이 완전한 졸속, 불통"이라며 "구청 하나를 이전해도 주민의 뜻을 묻는 공청회를 여는 법이다. 국가 안보와 시민의 재산권을 좌우할 청와대와 국방부 이전을 국민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강행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국민의 뜻은 깡그리 무시한 당선인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주요 공약을 번복한 사실도 윤 당선인에게는 집권 5년 내내 따라붙게 될 '불명예 딱지'가 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대통령 집무실을 정부서울청사로 옮겨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전 비용과 경호보안 문제 등을 다각도로 고려한 끝에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 방안을 발표한 20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TV로 기자회견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2022.03.20. livertrent@newsis.com
대선 내내 청와대 이전 공약을 여러 전문가들과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라며 강한 실천 의지를 드러냈지만, 당선 후에는 "광화문 이전은 재앙"이라며 종전과는 180도 다른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공약을 사실상 번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윤 당선인 측에선 청와대를 이전하기로 한 공약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해도 '반쪽 공약'이라는 핀잔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청와대를 이전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장 국방부 청사 주변 일대에 군사 시설이 밀집해 광화문 외교부나 정부청사보다 더 폐쇄적이라는 시각이 많다. 국방부 건물과 대통령 집무실이 한 곳에 몰려 있어 국가 안보 관점에서 리스크가 따른다는 지적이나 군부대 이전으로 인한 안보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윤 당선인은 "군부대가 이사한다고 그래서 국방의 공백이 생긴다고 하는 거는 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예를 들어서 합참을 남태령의 전시 지휘소가 있는 쪽으로 만약에 옮긴다고 하면 그것도 국방 공백이라고 보실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대신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이전을 완료해서 안보 태세에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할 생각"이라고 윤 당선인은 약속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관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예산 소요 부담 등을 당선인의 과제로 들기도 한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약칭 '대통령직인수법')에는 ▲인수위 업무 범위로 정부의 조직·기능 및 예산현황 파악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대통령의 취임행사 등 관련 업무의 준비 ▲대통령당선인의 요청에 따른 국무총리 및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검증 ▲그 밖에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으로 제한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한 20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을 지나고  있다. 2022.03.20. scchoo@newsis.com
대통령직인수법에는 청와대 이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는 만큼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청와대를 이전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론도 정치권 안팎에서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사항이라는 조항을 광범위하게 해석하면 청와대 이전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지만, 청와대 이전이 대통령직 인수업무와 연계성을 따져볼 때 논리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만약 윤 당선인이 집권 후 청와대를 이전해 용산에서 대통령 집무를 보더라도 그 다음 대통령은 용산 집무실 대신 지금의 청와대 위치를 선호한다면 다시 청와대 이전 논란이 불거질 소지가 있다.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집무실을 옮기는 것이 국가적으로도 소모적인일 뿐만 아니라 공무원 업무 차질이나 예산 낭비 등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 위기로 엄중한 시국에 5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청와대 이전을 강행하는 것이 법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합리적인 결정인가에 비판도 있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게 될 경우 총 소요예산을 496억원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여기엔 군 전략자산 이전과 군 부대 이전 비용 등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비용이 제외된 것이라는 여당의 비판이 나온다.

여권에선 "용산 집무실과 한남동 관저, 현 청와대 영빈관까지 몽땅 사용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구상대로라면, 경호·경비에 따른 예산 투입도 지금의 2~3배 이상 소요될 것", "합참과 예하 부대의 연쇄 이동에 따른 혈세 낭비도 큰 문제"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윤 당선인은 "지금 1조니, 5천억이냐 이런 얘기들이 막 나오는데 그건 좀 근거가 없다"며 "496억의 예비비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광화문 이전은 시민들에게는 거의 재앙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추진도 간단하지가 않고 그 자체가 몇 년이 걸린다"며 "비용 또한 전체 비용을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든다"며 용산으로의 이전 당위성을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대위 운영과 당 쇄신 방안 등을 발표한 후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환 정책위의장, 윤 공동비대위원장, 김병주 의원. (공동취재사진) 2022.03.20. photo@newsis.com
윤 당선인은 "예비비 문제는 기재부하고 다 협의해서 법적인 범위 안에서 다 한 것"이라며 "예비비 문제라든지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이 정부와 인수인계 업무의 하나라고 보고 협조를 요청을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윤 당선인의 청와대 이전에 필요한 예산은 문재인 정부가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여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의중을 존중해 청와대 이전 관련 예산을 협조할 가능성이 크지만, 코로나 위기로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피해 보상이 절실한 상황에서 5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굳이 이 시점에 청와대 이전비용으로 쓸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정치권에서 제기된다.

윤 당선인은 광화문 외교부 청사보다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최소화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설사 가장 낮은 비용이 들더라도 결국 국민들의 혈세로 재원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납득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권 한편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졸속 이전"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이전 문제로 인한 갈등이 가열될 경우 윤 당선인이 취임하기도 전에 리더십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신속한 결단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윤 당선인은 객관적 명분으로 경호안보, 이전비용, 국민소통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청와대 이전 문제가 윤 당선인의 사실상 첫번째 국정 과제로 떠오른 국면에서 빠른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만 계속 끌수록 리더십에 타격을 받을 것을 의식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청와대 이전 문제에 관한 결정을 취임 후로 미루거나 시점을 정하지 않고 잠정적으로 미루면서 지연시킬수록 논란만 가열되면서 국론 분열을 초래하거나 자칫 헌법소원이나 국민투표 요구 등의 여론이 빗발칠 수도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여가부 폐지 등의 정부조직법 개편은 거야(巨野)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청와대 이전 공약마저 여권의 반대로 후순위로 밀리거나 무산된다면 윤 당선인의 국정 동력에도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의 찬성 없이 여가부 폐지를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청와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대치국면에서 윤 당선인이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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