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 직후 대규모 2차 추경 논의 예상
재원 마련 방법 한계…적자국채 발행 불가피
주식 양도세·종부세 폐지 등 세수 오히려 줄어
나랏빚 1000조 넘을 듯…"재정준칙 마련해야"
재정 지출 늘리면 물가 상승 압력 키울 수도
[세종=뉴시스] 이승재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집에는 돈을 더 풀겠다는 언급만 있을 뿐 해당 재원을 어디서, 어떻게 벌어들이겠다는 대책은 없다. 오히려 지금보다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공약이 많은 탓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세수 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당장 서민들의 지갑 사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물가 관련 대응책도 시급하다. 무분별한 돈 뿌리기 정책은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와 관련된 대안은 공약집에 나와 있지 않다.
◆50조원 추경 예고…재원 마련 방법은?
11일 윤 당선인의 공약집을 보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손실보상을 위해 50조원 이상의 재정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손실보상 지원액은 최대 5000만원까지 늘리고 지원액 절반은 우선 지급하는 선보상 제도도 시행한다.
또한 영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긴급 자금 수요에 대응하자는 목적에서 5조원 이상의 특례보증을 통한 저리 대출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세금, 공과금, 임대료, 인건비 등 적극적인 세제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공약집 첫 페이지에 제시된 것인 만큼 이를 위한 대규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다음 정부에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게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통상 추경안은 초과세수와 적자국채 발행을 통해 꾸려진다. 기존 예산안에 담긴 사업에서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는 사업을 축소하거나 없애는 세출 구조조정도 방법 중 하나다.
윤 당선인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50조원이나 되는 액수를 이 방법만으로 모두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히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내외 변수로 전 세계 경기가 위축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도 저하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러면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윤 당선인이 내세운 감세 공약들도 세수 확대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여기에는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증권거래세 적정 수준 유지, 부동산 공시가격 환원, 1주택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세율 인하,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세율 적용 배제 등이 포함된다.
돈이 더 들어올 곳이 없는 상황에서 추경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적자국채 발행 즉, 나랏빚을 늘리는 것뿐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약을 그대로 국정 방향으로 삼을 수는 없고, 이는 대표적인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며 "부동산 세제도 단순히 세 부담 축소보다는 합리화라는 방향 아래 필요하다면 감면하고, 줄어든 세수는 어떻게 보충할지 종합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수 확보와 관련된 문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수차례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3일 TV토론에서 윤 당선인이 공약 이행을 위한 소요 재원으로 266조원을 추산한 것을 언급하면서 "얼추 계산해보니 400조원이 넘는다"며 "종합부동산세, 주식양도세를 5년간 60조를 감세하면서 복지를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고 감세한다는 복지는 사기"라고 비판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필요하면 증세도 해야겠고, 국채 발행도 할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써야할 복지에 대해선 효과가 떨어지거나 단기적인 경기 부양성, 한시 예산을 지출 구조조정하고 자연세수가 증가해 나오는 게 연 27조원 된다"고 반박했다.
◆코로나 거치며 악화된 재정건전성…"재정준칙 필요"
현 정부에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과도하게 나랏빚을 당겨쓴 탓에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된 점도 차기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번 정부 들어 국가채무는 매년 평균 10%씩 늘어나면서 국가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017년 36%에서 올해 50.3%까지 확대됐다.
앞서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가 1064조4000억원(본예산 기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이 액수가 1000조원을 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660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약 1.6배 늘었다.
이에 윤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재정 정상화와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재정 운용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재정준칙을 포함한 재정 혁신 방안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울러 국가재정운용계획과 연계된 지출 효율화 과정을 수립해 제도화한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시작부터 나랏빚을 과도하게 늘리면서 추경에 나서게 되면 재정 관리와 관련된 이런 공약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뒷전으로 밀려나는 셈이다.
앞서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60% 이내로,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지표)를 GDP 대비 마이너스(-) 3% 이내로 관리하는 게 골자다.
이를 도입하기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2020년 10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논의 일정은 번번이 미뤄지고 있다.
김우철 교수는 "재정 건전성 문제는 재정준칙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며 "원점에서 재정준칙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이를 누가 관리할 것인지를 정하고, 국가채무관리계획도 국민에게 상세히 밝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정 효율화를 위해서는 기존 예산을 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사업의 성과를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평가하고 정책 목적이 달성됐거나, 단순히 과거 혜택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것들은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규모 돈 풀기 물가 상승 부추길 수도…대책 있어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도 차기 정부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다.
물가는 주로 한국은행에서 통화 정책을 통해 관리하지만, 정부의 대규모 추경은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협의는 필요하다.
나아가 고물가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경기 침체가 더해진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3.7% 오르며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도 2.9%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최근 들어 급등하기 시작한 국제유가가 물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국내로 수입되는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27.86달러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65.8% 올랐다.
앞서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연)은 러시아산 원유·석유제품 거래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될 경우 국제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여기에 환율도 함께 뛰면서 체감 유가를 높이고 있다.
앞서 지난 8일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1230원대까지 치솟았는데, 이는 코로나19 사태에 영향을 받고 있던 2020년 5월 이후 1년 9개월 만이다.
원화가 약세일수록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유의 가격은 비싸진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산 곡물 수급 불안으로 식료품 가격까지 오르기 시작하면 서민경제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우리나라 경제 회복세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 추경 등으로 재정 지출을 늘리면 추가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공약집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고민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정부는 이성적이고 계획성 있는 정상적인 재정 집행을 통해 물가를 자극하지 않아야 한다"며 "글로벌 공급망 체계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와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보다 선제적인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uss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