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응 주아프간 공사참사관 현장 회고
아프간 공관 철수 후 22일 다시 카불행
버스 동원 철수…정체, 통제 등 기다림
동료와 만나 포옹…"얼굴 많이 상했다"
당초 아프간 조력자 철수는 지난 7월부터 고려되기 시작, 8월 초부터 준비해 이달 말께 이송 예정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의 카불 장악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지면서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대사관 철수 결정이 지난 15일 있었고, 17일 새벽 마지막 남은 교민 1명과 공관 인원들이 완전히 철수했다. 이후 김 공사참사관 등은 조력자 철수를 위해 22일 다시 카불로 향했다.
당시 카불 공항에서는 관계국 대사관 등 확인 하에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김 공사참사관 등은 현지에서 철수 대상 인원들과 소통하면서 지원 등 활동을 벌였다고 한다.
정부는 조력자 철수를 위해 미국 등 주요 우방국은 물론 카타르, 터키, 파키스탄 등 주변국과 접촉해 우리 이송 계획 협조에 나섰다. 또 외교부 본부에서 조력자들에 대한 증명서 발급을 지원, 빠른 준비가 이뤄졌다.
또 "외교부 본부도 고민이 많았다. 누구라도 가서 대응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지 투입 인원들에 대해 "각각 책임감이 있었다. 들어간 동안엔 우리 나름대로 결연했다"고 회상했다.
카불에 다시 돌아가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나오는 것은 쉬웠지만, 들어가는 것은 승인 아래서만 가능했다. 분투 끝에 김 공사참사관은 카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카불 현지에는 류부열 대사관 경호단장, 고관옥 아랍에미레이트(UAE) 무관 등이 함께 했다. 공개 사진 중 '코리아(KOREA)'라고 적인 종이를 들고 현지인을 찾던 인물이 류 단장이라고 한다.
이후 버스를 동원한 철수가 추진됐다. 이와 관련, 관계국 회의에서 자력으로 공항에 집결하는 철수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 버스를 활용해 공항으로 이송하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카불 공항 근처에서는 자살폭탄 테러 가능성이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력 집결보다는 버스를 통한 공항 진입 시도 위험이 덜할 수 있다는 현지 판단도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대상 조력자 대부분은 이미 카불에 들어와 있던 상황이었다. 장소 두 군데를 선정해 집결, 50인승 버스 네 대로 이송이 이뤄졌다. 안전을 고려해 출발 30분 이내에 집결하라는 고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시간 영유아를 포함한 조력자 대부분은 사실상 버스에 고립된 상태였다. 탈레반은 조력자들의 증명서가 원본이 아닌 사본이라는 이유 등을 토대로 차량 이동을 막았다고 한다.
그는 "원본을 갖고 나가는 과정에서 그러면 나올 것 없다면서 통과가 이뤄졌다"며 "25일 새벽이 되어서야 버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14시간 정도 버스에 갇혀 있다 보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내려왔다"고 기억했다.
또 "더운 날씨에 에어컨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밀폐 공간에서 있었으니 탈진을 해서 내리더라", "돌려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아프간 조력자 390명은 26~27일 입국했다. 먼저 26일 377명이, 이날 남은 인원이 들어왔다. 이들은 우리 군 수송기를 통해 카불에서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를 거쳐 인천에 도착했다.
김 공사참사관도 함께 귀국길에 올랐다. 가족들은 그가 카불 현지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놀라 질책했다고 한다. 이날 그는 가족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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