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직접 '입' 열었다…'측근發 정치' 접고 '대선행' 시사

기사등록 2021/06/09 17:33:36

4·7 재보궐선거 때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

"국민의 기대·염려 알고 있다…지켜봐 주길"

첫 일정은 '독립운동가'…"중도·보수에 어필"

예민한 질문에 침묵…"하고 싶은 말만" 비판도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종찬 전 국정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6.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양소리 문광호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향후 정치 행보와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 3월 퇴임 후 측근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내놓던 윤 전 총장이 대통령 선거를 9개월 앞두고 본격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9일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이회영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윤 전 총장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했다. 지난 4·7 재보궐선거 당시 사전투표를 마친 후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한 채 자리를 뜬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입당 시기와 관련해 "제가 걸어가는 길을 보면 차차 아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정치 일정에 대해서는 "국민 여러분들의 기대 내지는 염려, 이런 것을 저희가 다 경청하고 알고 있다"며 "여러분 지켜봐 주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이날 행사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과 가장 앞줄에 나란히 앉아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 중 윤 전 총장에 쏟아진 관심을 언급하며 "우당 선생 기념관을 서울시민 전체가 다 함께 알게 도와줬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첫 발언서 '대선 행보' 우회 시사…"단호한 의지 보여줘"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내에 있는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의 안내로 봉오동·청산리전투때 사용된 옛 체코군단의 소총을 살펴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6.09. photo@newsis.com
정치권은 "지켜봐 달라"는 윤 전 총장의 이날 발언을 사실상 대선 출마 의지로 분석했다.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본인의 정치적 포부를 밝힌 자리"라며 "대권 행보를 본격화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해석한다"고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정치의 길을 걷겠다,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온화한 화법이지만 단호한 의지를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엄 소장은 "특히 '국민의 기대와 염려를 알고 있다'는 발언은 자신의 높은 지지율을 인지하고 있고, 왜 검증대에 서지 않느냐는 염려도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자신이 나름대로의 정치 스케줄이 있으니 지켜보라는 뜻이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입당과 관련해서도 윤 전 총장은 유보적인 대답을 꺼냈다.

엄 소장은 "이번 전당대회서 이준석 후보가 당선이 되더라도 이준석 체제가 자리잡을지 알 수 없다. 또 홍준표 무소속 의원의 복당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통합 논의가 남아있다"며 "윤 전 총장이 입당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이를 반영한 답변"이라고 분석했다.

첫 공개행보를 독립운동가의 기념관에서 진행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또 다른 중진 의원은 "(독립운동은) 좌우의 이념과 관계없이 중도, 보수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문제"라며 무난한 이슈를 선택했다고 해석했다. 그는 "본인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전당대회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간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정치 의지 밝혔지만…"'정치인' 윤석열, 과연 준비됐나
[서울=뉴시스]조성우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을 둘러본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6.09. photo@newsis.com
그러나 이날 윤 전 총장의 발언과 행동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유력 대권 후보인 윤 전 총장의 첫 공식 등장에 현장에서는 상당한 혼란이 벌어졌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연호가 쏟아지는 한편 반대편에서는 '윤석열 구속하라'라는 고함이 이어졌다.

행사를 마친 뒤 기자들 수십 명은 물론 유튜버들까지 그를 향해 뛰어들자 윤 전 총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빠르게 퇴장했다.

윤 전 총장이 이날 가장 길게 내놓은 메시지는 우당 이회영 선생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그는 행사 참석 배경에 대해 "제가 어른들께 어릴 적부터 우당의 그 삶을 듣고 강렬한 인상을 많이 받아왔다"고 했다.

그는 "우당과 (그) 가족의 삶은 엄혹한 망국의 상황에서 정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생하게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윤 전 총장은 "한 나라는 어떤 인물 배출하느냐와 함께 어떤 인물을 기억하느냐에 의해 존재 드러난다"며 "이 우당 선생의 기념관 개관은 아주 뜻깊고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장모의 구형', '제3지대에서 정치 세력 구축',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의 관계' 등 예민한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행사장에 동석한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기자들의 질문이 향하자 이 교수 역시 "내가 취재 대상이 될 순 없다. 민망한 일이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윤 전 총장의 친구인 이 교수는 최근 윤 전 총장의 일정과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처음 공개적인 행사장에 나타난 윤 전 총장이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며 비판했다.

장 소장은 "국민이 묻고 싶고, 듣고 싶은 데에 답변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간 것"이라며 "이 자리에서 진짜 우당 선생에 대해서만 답을 준비했다면 정치를 잘 모르는 거다. 혹은 정무적 판단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석했다.

그는 "전날부터 공지된 자신의 첫 일정에 기자들이 몰려올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을 할 수 있던 부분"이라며 "적어도 공보담당이나 대변인이 함께 했어야 했다. (이날 혼란은)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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