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 선도하는 지도자' 이미지 주민에 각인하려면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를 끝없이 주목하도록 만들어야
전세계 '코로나 19' 북새통 속 잊혀지는 것 경계한 행동
올해 대내외전략 '정면돌파전'은 주민 기대 크게 못미쳐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지난해 연말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은둔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시 '도발' 행보에 나섰다. 동계군사훈련의 마지막을 포병의 화력훈련 '현지지도'로 장식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북한군은 초대구경방사포로 보이는 발사체 2발을 발사했고 이에 대해 유엔 등 국제사회는 북한이 제재를 어기고 다시 도발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로써 '코로나19' 사태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는 국제사회는 새롭게 북한이 국제사회의 문제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말그대로 '이 와중에' 김위원장은 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끄는 행동을 했을까?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약화하는 것을 경계했을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임을 잊어버리지나 않을지하는 초조감이 생긴 셈이다.
북한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지 않으면 안되는 입장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30대 중반의 김정은 위원장이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맞장'을 뜨는 모양새는 국내적으로 그의 권위를 극대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3대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데 이만큼 '가치있는' 소재가 달리 없는 것이다.
특히 아무리 '모지름을 써도' 성과가 나지 않는 '자력갱생 경제개발'이 김위원장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이 경제현장보다 군사훈련, 신무기 개발에 더 매달리는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며 '중대 결단'을 연출하는 모습 역시 성과가 나지 않는 자력갱생을 덮는 효과를 노리는 선전수단이다.
김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그 내용으로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 발전 및 새로운 전략무기 개발을 통한 군사력 강화를 핵심으로 제시했었다.
김위원장은 '정면돌파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미국의 북한 적대시정책을 꼽았으며 미국은 장기적으로 북한의 힘을 약화시키는데만 관심이 있다고 규정했었다. 김위원장이 새해 전략으로 '정면돌파전'를 제시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2월말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김위원장에게 정치적으로 큰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30년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북한 주민들의 기대감이 한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은 대내적으로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김위원장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으면서 3대세습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한 온갖 선전활동에 매달리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10여 차례에 걸친 신무기 시험으로 존재감을 과시했었다.
그러나 1년 내내 신무기 시험발사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어 미국을 압박하면서 양보를 기대했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선뜻 호응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트럼프가 어쩔수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김위원장이 고심 끝에 올해 대내외 전략으로 내놓은 것이 '정면돌파전'이다.
백두산 백마 등정을 통해 내린 결단이라면서 제시한 '정면돌파전'은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기대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러티브(narrative)다. 30년을 시달린 북한 주민들에게 '정면돌파전'은 너무 뻔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요즘 북한에서 가장 바쁜 부문은 노동당 선전선동부문이다.
김위원장 백두산 등정 길에 말한 '백두산 대학'을 체험해야 한다며 영하 30도 폭풍이 몰아치는 백두산 정상에 청년, 군인, 노동자, 학생 등 각계각층 사람들을 내몰았다. 100년전 김일성의 항일투쟁 정신이 깃든 '성지(聖地)'를 참배함으로써 오늘의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는 정신력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다. 심지어 명색이 국회의원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들까지 사상 최초로 동원하는 '광란(狂亂)'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김위원장의 '인민에 대한 사랑'이 끝이 없음을 강조하는 각종 스토리들이 연일 노동신문 등 북한의 모든 매체에 하루도 빠짐없이 실리고 있다. 또 김위원장이 해외 각국의 원수들과 주고 받는 의례적인 서한들도 연일 노동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한다. 김위원장이 세계를 주도하는 '국제적 지도자'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하려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다.
그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북한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북한과 가장 인적 교류가 많은 중국이 발원지가 된 '코로나 19'가 북한을 휩쓸 경우 북한 체제는 뿌리부터 흔들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30년 경제난을 이겨낼 방도가 눈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19'로 수백, 수천명이 죽어나가는 일이 벌어진다면 아무리 억압적인 북한 체제라도 파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혈맹이라는 중국에 대해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나서서 국경을 폐쇄하고 왕래를 중단한 것이 북한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 북한은 북한 주민은 물론 평양 주재 외교사절까지도 일절 출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방역망이 완벽할 수는 없다. 특히 밀수 무역에 전적으로 생계를 의지해온 상당수 북한 주민들로선 국경 차단이 '코로나 19'보다 무서운 직접적인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노동신문이 연일 10여건의 기사를 '코로나 19' 관련기사로 채우는 모습은 노동신문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만큼 북한 당국은 '코로나 19'에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있다.
다만 '코로나 19'의 치사율이 생각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 최근 들어 북한의 방역 태세에도 미묘한 변화가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일 노동신문이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감염자도 없다고 주장해온 북한이 슬그머니 의학적 감시대상자 숫자를 밝힌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평안남도에만 2,420여명이 대상자고 강원도에도 1,500여명이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평안북도에 3,000여명 등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감시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보도들은 북한에도 이미 상당수의 감염자가 발생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코로나 19'의 유입을 막기가 불가능하고 생각보다 치사율이 높지 않은 것을 확인한 상태에서 방역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필요해지는 상황에 대비해 서서히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 19' 발생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두문 불출해왔다. 그러나 지난 28일 노동당 정치국확대회의를 계기로 다시 전면에 나서 2일에는 포병부대의 사격훈련을 현지지도하기에 이르렀다.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걸리더라도 별 문제 없다는 자신감이 생긴 듯하다.
결국 더이상 '코로나 19' 때문에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잊혀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장기화되는 두문불출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 김위원장이 인민은 내몰라라하면서 자기만 지키려한다는 의구심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계산 등을 김위원장이 오랜만에 전면에 나선 배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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