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협상 볼모로 잡혔던 추경…99일만에 국회 문턱 넘었다

기사등록 2019/08/02 21:09:48

국회 파행에 번번이 발목 잡혀…역대 두번째 장기 표류

고비마다 조건 불어…경제청문회에 국조·장관 해임까지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0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적 297인 중 재석 228인, 찬성 228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19.08.02.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김형섭 기자 =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99일 만인 2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추경 규모는 당초보다 8568억원 가량 줄어든 5조8269억원으로 확정됐다.

국회로 넘어온 지 106일 만에 확정된 2000년 추경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국회에서 오랜 기간 표류한 추경이다. 정국 고비마다 새로운 조건이 따라 붙으면서 오랜 기간 여야 협상에 볼모로 잡혀 있었던 탓이다.

정부가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한 것은 지난 4월25일이다. 미세먼지 대응 등 국민안전에 2조2000억원, 선제적 경기대응과 민생경제 긴급지원에 4조5000억원 등 총 6조7000억원 규모로 꾸렸다.

당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5월 중에 추경 처리를 완료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추경은 타이밍이 생명인 데다 강원 산불과 포항 지진 피해 예산이 포함된 만큼 적시에 국회에서 통과돼야 현장에서 사업 집행이 조속히 이뤄져 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경이 국회에 제출된 타이밍이 좋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4월23일 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합의하자 정국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급기야 패스트트랙 지정 강행에 반발한 한국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섰고 추경의 장기표류도 시작됐다.

민주당 이인영·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까지 포함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5월20일 이른바 '호프 회동'을 통해 국회 정상화에 큰 틀의 공감대를 이루면서 추경의 불씨도 다시 살아나는 듯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졌다.

이어진 실무협상에서 정상화 조건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지 못해 협상이 다시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패스트트랙 지정 사과 및 철회 등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이 절대 불가로 맞선 것이다.

결국 5월 임시국회가 아무런 소득 없이 문을 닫았고 정부와 민주당은 6월 중순을 목표로 추경 처리 시간표를 다시 짜야 했다.

이후 여야는 국회 정상화 합의문에 들어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의 '유감' 표명 수위와 '합의 처리' 관련 문구를 놓고 지루한 협상을 벌이다가 절충점을 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한국당이 '경제실정 청문회'를 추경 처리의 조건으로 붙이면서 협상은 다시 난항을 겪었다.

6조7000억원 규모 정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의 적정성과 각종 경제지표 하락, 자영업자 몰락 같은 현 경제 상황을 올바로 진단하기 위해 경제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한국당의 주장이었다.

민주당은 경제청문회를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버텼다. 추경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국회 정상화에 속도를 냈던 민주당은 경제청문회가 열린다면 추경 처리가 그만큼 더 늦어질 것을 우려했다. 경제청문회가 현 정권에 대한 공세의 장으로 활용될 것이란 우려도 컸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소집 요구로 6월 임시국회가 개문발차(開門發車)한 가운데 6월24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국회 정상화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추경 처리의 불씨는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추경을 6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는 대신 경제원탁회의를 열고 선거제·검찰개혁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은 '합의정신에 따른 처리'를 약속한다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정상화 합의문 발표 두 시간여 만에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비토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추경은 다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이로부터 나흘 뒤인 6월28일 여야가 84일 만에 본회의를 합의 개최하고 한국당도 조건 없는 상임위원회 복귀를 선언함에 따라 국회는 사실상 정상화 수순에 접어들었지만 잠자던 추경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활동기한 연장을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에 대해서만 합의가 이뤄졌을 뿐 구체적인 의사일정에 대한 합의 없이 6월 임시국회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경의 원안 통과를 고집하는 민주당과 비재해 추경을 '총선용 추경'이라고 규정하고 미세먼지와 산불, 지진 등 재해 관련 추경만 통과시켜 줄 수 있다는 한국당의 입장이 맞서면서 추경 처리는 계속 지연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은 북한 목선 국정조사와 정경두 국방부장관 해임 결의안을 추경 처리의 새로운 조건으로 내밀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갔다.

민주당 일각에서 국정조사를 수용하고 추경안을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명분 없는 국정조사를 받을 수 없다는 강경론에 힘이 실리면서 여야의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고 6월 임시국회에서도 추경은 처리되지 못했다.

임시국회 회기와는 별개로 진행됐던 추경안을 심사해 왔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심사도 중단됐다.

앞서 예결위는 지난달 12일과 15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한 데 이어 17일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예결소위)를 열어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19일까지 감액 심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예결소위는 감액 심사에서 보류된 안건에 대한 재심사와 증액 심사 등 종합적인 조정 단계만을 앞둔 상태였지만 지난 달 22일 한국당 소속인 김재원 위원장이 심사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로 요청한 추경 증액안과 관련한 정부의 자료제출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정부와 여당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1200억원→3000억원→8000억원→2700억원 등으로 수차례 번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아무런 근거 자료도 없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주장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민주당은 "7월 말일에라도 추경안이 통과돼야 한다"(윤후덕 예결위 간사)며 추경 처리를 계속 압박했고 한국당도 추경의 발목을 장기간 잡고 있는 데 대한 여론의 부담이 커지면서 여야는 지난달 29일 추경 처리를 비롯한 7월 임시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했다.

이에 예결위의 추경 심사도 재개됐지만 추경 처리를 목표로 한 본회의를 불과 이틀 앞두고 심사가 촉박하게 진행되면서 이번 추경도 촉박한 시간에 떠밀려 '졸속심사'를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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