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대표직 퇴진 주도"
"총수일가 전횡 공론화·주주권 중요성 환기"
"한진칼 주주제안 불발...전략 부족 지적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목소리를 내며 등장한 KCGI가 지난 5개월간 편 공세는 한진가에 "잽을 날리는 수준이었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주제안을 상정시키지도 못한데다 소액주주들의 지지가 미미해 주주 행동주의 펀드라는 말이 무색했다.
다만 KCGI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공론화하고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에서 조양호 회장의 퇴진을 위한 여론전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또 주주권 행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환기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KCGI는 지난해 11월 한진칼 2대 주주로 오른 뒤 지분율을 12.8%까지 늘렸다. 또 한진의 지분율도 8.0%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KCGI는 2005년 '한국 기업 지배구조'라는 보고서를 내 유명해진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강성부 대표가 이끌고 있다. 엘리엇 등 외국 투기자본의 대기업 공격이 유행한 가운데 주주 행동주의를 내세운 토종 사모펀드가 공격을 펼치자 이목이 집중됐다.
더군다나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 일가의 '땅콩 회황', '갑질 폭행' 횡령·배임·사기 혐의 등으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돼 여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작년 7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한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KCGI 공세에 시큰둥했던 재계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런 분위기에서 KCGI는 지난 1월 21일 '한진그룹의 신뢰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 공세에 나섰다. KCGI는 "회사에 대해 범죄 행위를 저지르거나 회사의 평판을 실추시킨 자의 임원 취임을 금지할 것"을 한진 측에 제안했다. 사실상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이다.
또 한진칼 이사회 산하에 '지배구조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 6인 중 2명을 KCGI가 추천한 사외이사로 앉혀야 한다고 제시했다. 동시에 최고경영자 등 경영진을 선임하는 기구로 임원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포함해 총 7가지 제주제안을 내놓았다. 석태수 대표이사 선임안에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동시에 '밸류 한진'이란 홈페이지를 열어 소액주주 의결권을 결집하는 데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KCGI의 파죽지세는 법원의 판결로 동력을 크게 상실했다. 서울고등법원은 한진칼이 KCGI의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상대로 낸 가처분 이의 신청에서 KCGI가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지 않음에 따라 한진칼 주총에 주주제안을 할 자격이 없다는 취지로 가처분을 인용했다. 법원은 1심에서 KCGI의 손을 들어줬지만 주총을 일주일여 앞두고 나온 이번 항고심에서는 한진가 편에 선 것이다.
이에 따라 KCGI가 제안한 감사와 이사 선임 및 이사 보수 한도 제한 등의 안건은 표 대결은 커녕 주총 안건으로도 올리지 못하게 됐다. 여기에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지난 18일 KCGI의 주주제안 7개 모두에 반대 의견을 내며 KCGI의 힘을 뺐다.
앞서 KCGI가 '3%룰'을 지렛대로 활용해 자기 측 인사를 감사로 선임시키려는 시도도 한진칼이 단기 차입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반격함에 따라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결국 이날 한진칼 주총에는 KCGI의 안건은 등재되지 못했고 7개 안건 모두가 한진가 의도대로 의결됐다. 또한 표결 결과를 보면 소액주주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KCGI의 등장은 소액주주의 권리가 무시돼 왔던 국내 자본시장 풍토에 '주주 행동주의'의 싹을 틔웠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한진가와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재벌 총수의 전횡 문제를 부각시키고 주주권의 중요성을 사회에 환기했다.
실제 KCGI의 공세에 한진그룹은 지난달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한 '비전 2023'를 발표하게 하는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또한 조양호 회장이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대표이사 자리에서 퇴진하게 하는 여론도 KCGI가 주도했다는 전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CGI가 이번에는 한진가에 몇 번 잽을 날리는 데 그쳤고 소액주주들이 적극 행동에 나섰다기보다는 국민연금 등 기금들이 의결에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면서도 "KCGI가 이번에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음 주총에서 재도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은 명목상 대표직에서 내려왔을 뿐 한진가 일가의 한진그룹에 대한 경영권은 여전히 건재하다"며 "KCGI가 한진그룹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관과 소액주주의 표심을 얻기 위한 더욱 정교한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mint@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