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립중앙의료원서 영결식 진행 예정
재난·응급상황실~전국 17개 지원센터 총괄
윤 센터장, 기획연구·질향상팀장까지 겸임
年2000억원 안팎 사업비 확보 위해 노력
응급의료거버넌스·구조사 업무 개편등 과제
24시간 전국 재난·응급 상황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매년 2000억원 안팎의 사업비 확보에 힘써야 하는 직책을, 윤 센터장은 지난 연말 한 차례 내려놓고자 했다. 윤 센터장의 고민과 미처 풀지 못한 숙제는 이제 우리 몫으로 남았다.
◇센터장이자 팀장, 상황실장이었던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2000년 7월 당시 국립의료원이 중앙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고 2002년부터 센터 업무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의료원장이 센터장을 겸임했다"며 "독립적으로 센터장을 맡은 건 윤 센터장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하나의 기관으로 본다면 윤한덕 센터장이 초대 센터장인 셈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재난 감시 및 대응과 함께 병원 간 전원 업무를 담당하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포함해 1실, 8개팀으로 본부를 구성하고 전국 17개 응급의료지원센터를 총괄하고 있다.
조직도를 보면 윤한덕이라는 이름은 센터장 칸은 물론, 응급의료기획연구팀장과 응급의료평가질향상팀장 등 3번에 걸쳐 나온다. 심지어 2017년까지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까지 겸임했었다. 2개팀 14명으로 시작된 센터는 윤 센터장이 팀장을 맡아 팀을 꾸려나가는 식으로 발전해 지금 1실·8팀 430여명까지 확대됐다.
환자 진료를 보지 않는데도 윤 센터장이 일주일에 한두번, 그것도 아주 잠깐 집에 들를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24시간 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응급상황에 대한 중요한 의사결정도 오롯이 윤 센터장 몫이었다. 출퇴근은 근로계약서가 아닌 환자 생명에 따랐다.
센터에선 전국 407개 응급의료기관 정보를 수집·제공하는 국가 응급의료정보망(NEDIS)을 구축하고 국내외 대규모 재난 대비와 함께 병원 간 전원 업무를 담당하는 재난·응급의료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 관리와 종사자 교육, 기관 평가는 물론 응급의료 통계조사까지 맡는다.
전남대병원 응급의학 전임의였던 윤 센터장이 2002년 보건복지부 의무사무관으로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기획팀장을 맡으면서부터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 사업들이다.
◇현장과 행정 오가며 응급의료체계 구축
이런 사업이 돌아가려면 필요한 건 '돈'이다. 더군다나 응급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면서도 수익성이 낮아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료체계 구축뿐 아니라 운영을 위한 예산 마련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권역외상센터를 비롯한 응급의료 관련 예산은 모두 '응급의료기금'에서 나온다. 응급환자 진료비 미수금 대지급을 위해 1995년 조성됐다. 2002년부터 사업성 기금으로 확대됐음에도 2009년까지 연간 400억~500억원 수준이었던 기금은 어느새 2000억원 안팎까지 늘어났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편성된 기금은 사업비만 2323억원 정도다.
명칭은 기금이지만 도로교통법상 범칙금의 20%와 과태료의 20%가 일반회계로부터 마련되는 까닭에 매년 기획재정부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했다. 윤 센터장은 복지부와 함께 세종과 여의도를 오가며 예산 확보에 동분서주했다.
응급의료 현장에 필요한 도로교통 과태료엔 유통기한이 있다. 5년마다 단위 연장이 필요한데 다행히 윤 센터장이 있었던 2017년 한 차례 기한이 늘어나면서 2022년 12월31일까지는 재원 걱정을 덜 수 있게 됐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장 등 응급의료 일선의 동료들이 윤 센터장을 '응급의료 버팀목'으로 기억하는 이유다.
윤 센터장의 25년지기이자 선배인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국회를 쫓아다니면서 왜 이런 예산이 필요한지 다 설득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제일 큰 역할"이라고 말했다.
예산이 10년 전 수준이었다면 우리는 '닥터헬기'나 '권역외상센터'를 아직까지 '선진국 이야기'인 줄로 알고 부러워만 했을지도 모른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보낸 17년, 윤한덕은 줄곧 응급의료 현장과 행정, 그 교차점에 서 있었다.
◇'구축에서 운영으로'…고민 거듭한 윤한덕
윤 센터장은 떠났지만 그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은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응급의료기금과 관련해 윤 센터장은 2016년 민간기구인 '바른사회시민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현 응급의료체계 문제는 구축의 문제가 아닌 운영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당시 윤 센터장은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하며 안정적인 응급의료기금 확보를 통한 운용 효율 강화를 주장했다.
지난해 12월28일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윤 센터장은 토론자로 나서 "양적인 확대에도 응급의료 질과 체계화에 관한 지적은 지속된다"며 "기대하는 응급의료 질과 제공할 수 있는 질 사이 괴리는 크고 119와 응급실, 응급실과 최종치료 사이 분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최근 전공의 특별법, 노동시간 단축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변화와 더불어 전공의 수련기간 단축 등은 최소한 단기적인 의료 인력 감소를 초래한다"며 "향후 고령인구·독거가정 증가, 의료영역 세분화 및 의료분쟁 위험 증가로 응급의료 수요는 늘고 제공은 위축될 것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이에 대비해 환자중심 응급의료서비스 대안을 마련하고 복지부-소방청,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간 응급의료 거버넌스 구축·유지 필요성을 주창했다.
아울러 윤 센터장은 최근까지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19구급대원과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개선 목소리를 높여왔다. 현행 복지부 시행규칙상 심폐소생술과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 약물투여 등 14개에 묶여있는 업무범위를 응급이송 환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개편하자는 것이다.
◇닥터헬기 추가배치 등 남겨둔 숙제는
이런 고민을 일부 담은 정부의 제3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18~2022년)'은 윤 센터장 손을 떠났다. 지난해 12월27일 발표한 기본계획은 중증응급질환 사망률을 2022년까지 질환별로 최대 25% 이상 줄이고 서비스 신뢰도는 20% 이상 높이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는 핵심 정책지원기관으로 거듭나고 지역 응급의료는 시·도 응급의료지원센터에서 맡도록 하는 등 체제가 재편된다. 중증외상 분야를 지자체, 119구급대, 권역외상센터 등이 연계하는 지역외상 체계로 구축하고 지역 맞춤형 이송지침 및 지도를 구비하는 등 응급의료 기반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옮긴다.
이와 함께 다음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겐 2022년까지 닥터헬기를 추가 배치하고 지능형 응급의료정보체계 구축을 위해 국가 응급의료정보망 운영에 힘쓰는 등 과제가 주어진다.
예방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2015년 30.5%에서 2022년까지 23.0%로 낮추고 반대로 중증응급환자 적정시간 내 최종치료기관 도착률은 52.4%에서 60.0%로 높이는 등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측은 윤 센터장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윤 센터장이 끝까지 고민했던 과제들을 풀어나갈 후임 센터장 선임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limj@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