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합의, 우라늄 없이 플루토늄 시설만 불능화
北, 우라늄 시설에 대해 외부에 시인한 적 없어
우라늄 시설 폐기, '현재핵' 포기로 나아가는 것
북미정상회담서 '가장 확실한 성과'될 수 있어
영변 핵시설 폐기=현재핵 포기…상징성 클 것
"북미, 좁지만 확실한 '비핵화 입구 찾기'할 것"
제3의 우라늄 시설 언급되면 공세적 검증 수반
정상회담 1개월 남아…영변 핵시설 폐기 집중
美 제재 유지 기조 강조…관계 정상화에 방점
남북미중 참여하는 평화체제 위한 대화 개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31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이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북한의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 시설들을 해체 및 파괴(dismantlement and destruction)할 것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비건 특별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북미의 시선이 이미 2007년 6자 회담을 넘어선 지점에 닿아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과거 2007년 10·3 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5㎿e 원자로와 재처리시설, 핵연료봉 제조 공장 등 플루토늄 생산 관련 시설의 불능화를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 핵 프로그램의 다른 '한 축'인 우라늄 농축 시설은 아직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신고된 적이 없다.
그동안 북한의 우라늄 관련 시설 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보고서가 나왔지만, 북한이 이를 시인한 것은 단 1건도 없다. 지그프리드 헤커 미 스탠퍼드대 교수 등 극소수에게만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것이 전부다.
9·19 공동성명의 연장선이었던 10·3 합의 당시에도 북미는 검증이 어려운 우라늄 프로그램 부분에서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플루토늄 관련 시설에만 집중하게 됐다.
특히 우라늄 농축 시설의 폐기는 '현재핵'의 포기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통해 '미래핵'의 포기에 한 발 들어와 있지만, '현재핵'인 생산시설 폐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또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가장 확실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될 수도 있다. 2007년을 넘어서는 조치를 합의안에 담음으로써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로 들어섰다는 확실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영변 핵시설 폐기'로 확실하게 접점을 모을 경우 그 '상징성'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영변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중심이었던 만큼 비핵화로 가는 중요한 진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한미도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변 핵단지에는 현재 IRT-2000형 연구용 원자로와 5㎿ 원자로, 25~30㎿급 경수로 등과 함께 동위원소생산시설, 방사화학실험실, 폐기물시설, 우라늄농축시설 등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면서 "결국은 북미가 좁지만 확실한 비핵화 입구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서로가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즉 영변으로 좁힐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다만 우라늄 농축 시설의 폐기가 영변 핵시설 내에만 국한될 것인지 영변 이외의 제3의 장소까지 확대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북미가 이어지는 실무협상에서 접점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제3의 장소에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폐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기존에 불능화 작업을 경험했던 영변 외의 다른 장소까지 포함할 경우 '공세적인 검증' 작업이 수반될 수밖에 없어 양측이 이를 피할 수도 있다.
특히 회담이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3의 장소가 거론될 경우 회담으로 나아가는 속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미국이 이 같은 비핵화조치에 대해 내줄 수 있는 '상응조치' 카드 역시 관건이다.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의 비핵화가 완료되기 전에는 대북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 만큼, 이번 북미회담에서는 선별적 지원이나 제재 완화에 대해 의견을 좁히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설치에 대해 확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이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정도가 문안이 담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와 함께 남·북·미·중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다자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 개시도 상응조치로 제시될 수 있다.
다만 비핵화의 핵심 의제인 제재 완화의 경우, 직접 다뤄질 가능성은 낮지만 구두로 합의하는 선에서 비핵화 추동력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현재까지 북미 대화의 분위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비건 특별대표의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 발언 역시 북한이 보내는 긍정적인 신호에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2차 방미 보고가 있은 후, 대미 소통 채널을 통해 미국에 긍정적인 평가를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 소식통은 "북한과 미국 간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막바지 협상은 이제 궤도에 올랐다고 본다"며 "북한이 사찰단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나아가 영변 핵시설 중에서 상징적 위치에 있는 핵심 시설을 폐기할 용의가 있는지, 반대로 미국이 북한의 체제안전을 담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를 어디까지 낼 수 있을지 등이 실무협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건 특별대표는 오는 3일 방한해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북미 후속 실무협상 관련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이르면 4일께 북측과 만나 본격적인 의제 협상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서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 실무협상을 맡았던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더불어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 박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등이 함께 대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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