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잡이 규제 선진국도 보기 힘들어
정책 말바꾸기 문 정부 들어 5~6차례
국토장관 '원인 진단 틀렸다' 비판 목소리도
'서울 집값 잡기' 불구 정책 불신에 사자 몰려
일관된 정책과 메시지로 국민들의 집값 안정을 도모해야할 정부가 오히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금융위원회, 당정청까지 경쟁하듯 부동산 정책을 손바닥 뒤집 듯 뒤집고 있어 시장의 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사실상 노무현 정권때부터 이어져오는 판박이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내성이 생긴 국민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정책당국자의 메시지가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만 들리고 있다.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부동산 정책에 대한 입장을 번복한 것만 5~6차례에 이른다. 부동산세 인상,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도입, 그린벨트 해제, 재건축 연한 연장, 여의도 용산 개발, 전세대출 제한,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 등이다.
특히 김현미 장관이 지난달 31일 일부 기자들과 긴밀히 만나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 재검토 발언을 내뱉으면서 그동안 참았던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김 장관은 이날 "당초 정책 의도와 달리 임대등록 혜택의 이점을 활용해 다주택자들이 집을 쉽게 사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과한 임대등록 세제혜택 등을 조정해 이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등록 임대사업자는 임대료를 1년에 5% 이상 올리지 못하는 대신 취득세·재산세·임대소득세·양도세를 감면받는 등 세제혜택을 받는다. 양도세 중과와 종부세 합산이 배제되는 혜택이 핵심이다.
하지만 김 장관이 세제혜택을 줄이겠다고 나서자 등록 임대사업자들은 "혜택을 주겠다고 내놓은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것은 실망을 넘어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르면 망한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결국 논란이 커지자 기획재정부가 나서 "임대주택사업자 세제 감면 혜택을 전면 개선하는 것은 아니라 시장과열 지역중 새 임대주택 등록 부분에 한정해 정책 수정을 검토중"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그렇지만 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세부내용이 설익은 상태에서 '여론 떠보기식' 발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이날 김 장관은 오전에 갑자기 기자들과의 만남을 약속한 후 일부 기자들만을 상대로만 이같은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국토부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도 기사화 시키면 안 된다는 반대가 있었지만 국토부 측에서도 무리하게 기사화를 강행했다.
국토부는 지난 1월에도 재건축 연한을 현행 30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는지 여부를 놓고 열흘사이 입장을 번복한 바 있다.
당시 김 장관은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성이나 내구 연한 등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재건축 연한 연장을 시사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보름이나 지나 "하지 않은 말이 한 것처럼 확대됐다"며 발언을 부인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지난해 국토부 장관이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확대하는 안을 언급했다가 시장이 뒤집어졌다"면서 "재건축 대기 물량들의 집값이 요동쳤고 건설사들도 중장기 사업지 확보 전략에 비상이 걸렸었는데 김 장관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금융위원회가 전세대출 자격 요건을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로 갑자기 강화했다가 실수요자들의 질타에 이튿날 곧바로 이를 수정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용산·여의도 전면 개발 계획 발표 48일 만인 지난달 26일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개발을 전면 보류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하지만 이미 용산과 여의도는 물론 마포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후였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세 인상과 관련해서는 일관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집값 안정화의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실제로 공시가격이 10억4000만원인 강남 은마아파트의 올해 보유세는 346만2240원, 내년 보유세는 348만4080원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문 정부가 보유세를 기존 진보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수준만큼 강화하고 취득세나 거래세를 낮췄다면 고가의 주택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 물량을 내놓으면서 공급도 늘고 집값도 좀 더 안정됐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고공행진중인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방안으로 '보유세는 올리되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며 "집값 폭등 사태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안정화돼 있을때는 자유로운 거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양도세를 포함한 거래세 인하를 시사했다.
이에 집값 안정화만 믿고 주택 구매를 미루던 국민들은 더이상 정부의 정책을 믿을 수 없다며 매도세로 돌아선 상태다.
국토부뿐 아니라 여당과 청와대도 조바심을 드러내며 시장에 개입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시장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집값 논란에 종부세를 추가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또 다시 보유세 인상에 불을 지폈다.
일각에서는 "공급은 충분하지만 일부 부동산 투기세력이 문제"라는 정부의 기본 인식 자체가 이러한 정책 불신을 양산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 정책 주무 부처인 김 장관이 집값 급등에 대한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장 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현미 장관은 3일 KBS 뉴스에 출연해 "많은 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투기 심리, 이런 것들이 일시에 몰려나왔다"면서 "움직임들이 가시화하니까 특별히 생각 없었던 사람들도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가세해 최근 몇 주 동안 집값이 상승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제 거래에선 매물과 거래 가격만을 놓고서는 실수요자와 투기수요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일부 2주택자의 경우에도 실수요자들이 상당해 이들 역시 투기세력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정부 규제로 주요 지역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조급한 수요자들이 일단 서울은 사두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장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단타 투기가 힘든 상황에서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똘똘한 한채'로 옮겨기고 있다"면서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고 여기는 무주택자들이 대다수인데 이들을 투기수요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kmk@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