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 지난 4일 광화문서 촛불집회 열고 오너일가 퇴진 요구
노조에 대한 불신감, 사측과 오너에 대한 불신감이 쌓여 직원들 움직여
항공업계 "오너 일가의 만연된 갑질 경영으로 인해 직원 불만 터진 것"
【서울=뉴시스】김동현 기자 = 대한항공 일반 직원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 집회를 개최하며 조양호 한진그룹 오너 일가들의 경영 퇴진을 요구한 것은 전례가 없는,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통상 직원들이 경영진 퇴진을 요구할 경우 회사의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대한항공 직원들은 오너가 뿐 아니라 회사 노조에 대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극도의 불신이 쌓여있어, 각자가 자발적으로 움직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거리로 나와 카카 벤데타 가면을 착용한 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과 소유 분리를 요구했다.
벤데타 가면은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왜곡된 질서를 강요하는 정부의 폭력과 압제에 맞서는 인물들을 그린 '브리 포 벤데타'의 주인공이 착용한 가면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왜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왜 한진그룹 오너 일가들의 경영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지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들은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 촉구 촛불집회'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 촛불집회 개최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날 집회 행사는 박창진 대한항공 사무장과 박나현씨가 맡았다.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주최측이 그동안 요구해온 집회 복장을 준수하는 한편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 두건 및 벤데타 가면 등을 착용했다.
벤데타 가면 착용을 한 이유는 집회 참여로 인해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신분 노출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주최측의 설명이다. 회사에 대한 불신이 많이 쌓여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픈 채팅방 관리자는 집회에 앞서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은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다"라며 "대한항공 3개의 노조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각을 세웠다.
그는 땅콩회항 사건을 거론하며 "대한항공 직원들은 동료였던 박창진 사무장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심지어 박 사무장이 가입돼 있던 노조도 규정을 내세워 도움의 손길은 커녕 사측을 대변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항공은 직원들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는 직원들의 힘을 모아 줄 구심점이 없다는 얘기와 같다"고 촛불집회 개최 동기를 설명했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다보니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 유지 인원을 남겨놔야 했고 그 제도가 지금의 대한항공의 상황을 만들었다"며 "견제 장치를 상실한 대한항공은 결국 총수 일가의 갑질과 불법이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연일 조 회장 일가와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가 폭로되고 있다"며 "우리의 저항이 대한항공 뿐 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만연돼 있는 갑질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상식이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주죄측의 이 같은 발언 등을 고려할 때 대한항공 직원들의 요구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 퇴진이다. 그동안 한진그룹 계열사를 이끌어오면서 보여준 오너 일가의 경영 능력에 대해 직원들 스스로가 낙제점을 준 셈이다.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그룹 계열사를 오너 일가와 무관한 경영진이 이끌어야 보다 투명하게 기업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두 번째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제 4의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대한항공에는 대한항공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노동조합, 대한항공조종사 새 노동조합 등 3개 노조가 있지만 다수의 직원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항공노동조합의 경우 사측을 옹호하는 인사로 노조원이 채워져 있어 실질적으로 직원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없고 조종사노조의 경우 조종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지만 일반 직원들까지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터질게 터졌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대한항공에서 근무를 하다 다른 항공사로 이직한 한 직원은 "이번 조현민 전 전무 갑질 사태가 처음이었다면 직원들이 이렇게 거리로 뛰쳐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땅콩 회항때의 경험이 있고 그동안 오너 일가의 만연된 갑질 경영으로 인해 직원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조현민 전무 물컵 갑질이라는 단 하나의 계기로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oj1001@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