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이 평화길 될 수도" 남북정상회담 여운 남은 DMZ로의 봄소풍

기사등록 2018/04/28 16:40:07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28일 오전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sds1105@newsis.com
【파주 뉴시스】손대선 기자 =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은 28일. 오전 9시20분께 남녀노소 100여명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분단의 현장인 DMZ로 향했다.

  48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국에서 모여든 이들은 4.27 남북정상회담을 기념해 서울시와 ㈜서울관광마케팅이 마련한 'DMZ평화여행'의 수혜자들이다.  DMZ는 'Demilitarized Zone'의 약자로 국제조약이나 협약에 의하여 무장이 금지된 지역 또는 지대를 뜻한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래 이곳은 첨예한 남북한 군사대결의 장으로 한상 긴장감이 감돌았다.

  4세 아이부터 78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탐방단들은 '평화 DMZ버스' 3대를 나눠 타고 저마다 얘기꽃을 피웠다.
 
  70대에게는 여전히 뇌리 속에 남은 전쟁의 상흔이 주된 화제였다. 40~50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언행의 파격을, 30대는 김 위원장의 부인 이설주의 외모를 자주 입길에 올렸다.

  사는 곳과 정치적 지향점은 달랐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지향점인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만큼은 똑같은 듯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신이 났다. 민간인출입 통제구역이라는 특수성이 이들에게 묘한 흥분을 자아낸 모양이었다.

  오전 10시40분께 DMZ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인 통일대교 검문소 앞에서 잠시 버스가 정차하자 사방으로 손짓을 해가며 "여기가 DMZ냐"고 부모에게 물었다. "근처가 지뢰밭"이라는 가이드의 경고가 아니라면 사방팔방 뛰어다닐 기세였다.  

【파주=뉴시스】최진석 기자 = 2018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27일 오후 경기 파주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뒤 개성방향 출입문이 닫혀 있다. 2018.04.27. myjs@newsis.com
  엄마와 함께 김모군은 "아빠 엄마랑 우리나라 여러 곳을 여행 다녔지만 이런 데는 처음"이라며 "북한이라는 데가 가깝다고는 하는데 막상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니 앞으로 자주 와야 겠다"고 말했다.  

  통일대교를 지나 제3땅굴에 도착하자 탐방객들 사이에는 설렘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제3땅굴은 1978년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이다. 지하 73m에서 발견된, 너비와 높이가 2m인 이 땅굴은 아파트 층수로 따지면 25층에 달한다. 탐방객들은 1.6km 남짓한 좁은 땅굴을 오가면서 분단의 현실을 새삼 실감하는 듯했다. 

  탐방단 중 최고령인 송찬용 할아버지(78)는 전직 군인이다. 제3땅굴이 발견되면서 긴장감이 최고조일 때 1978년 그는 전방부대 대대장이었다. 그는 초등학교(옛 소학교) 4학년 때 전주에서 한국전쟁을 겪었다.

  송 할아버지는 "인민군이 우리 집에 진주했다. 아버님이 이장이셨는데 소도 쌀도 다 가지고 갔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산당은 못된 짓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었다"며 "한번은 마을 앞 냇가에 국군 첩보원이 낙하했다가 인민군한테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분개했었다. 총이 있었다면 쏴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방배동 선병철(60)씨는 제3땅굴에서 불안보다는 희망을 느꼈단다.

  선씨는 "그 먼 지하에서 북한사람들이 굴을 파서 서울로 오려고 했다니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며 "탐방이 허용된 땅굴의 가장 끝 군사분계선 부근까지 가니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28일 오전 도라전망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DMZ평화여행 탐방단 일행.   sds1105@newsis.com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이 잘 결실을 맺어 통일이 된다면 땅굴로 남북이 왕래하는 것은 어떨까. 땅굴이 전쟁의 길이 아닌 평화의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낮 12시께 도라산전망대에 오르자 북한 땅이 한눈에 들어왔다. 탐방객들은 500원짜리 동전을 투입하면 사용할 수 있는 망원경으로 연신 DMZ너머를 탐색했다. 아이들은 망원경 렌즈에 두 눈을 밀착시킨 채 양손으로 눈앞에 북한 땅을 헤아렸다.

  40여분 뒤 도착한 경의선 도라산역사 왼편에 설치된 베를린장벽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박재윤(11) 군. 박 군은 이날 뜻하지 않은 상봉을 했다. 기념촬영을 하다 사촌 뻘되는 할아버지가 이 역의 부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제 기능을 못하고 있지만 도라산역은 향후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되면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될 곳이다. 

  할아버지로부터 용돈 '1만원'까지 챙긴 박군은 7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다음역 개성역에 통일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꼭 한번 가고 싶다고 말했다.

  탐방객들을 안내한 캠프그리브스 관계자는 "개성공단까지는 7분, 개성시내까지는 17분이면 경의선 열차가 주파한다. 정거장 1개면 북한 땅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평소 하루 30~40명의 전화문의가 오는데 정상회담이 열린 어제 오후에만 200여명이 문의를 해왔다"며 "이미 1년 치 예약이 거의 다 찼는데 참 바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28일 오후 도라산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DMZ평화여행' 탐방객들.  다음역은 개성역이다.  sds1105@newsis.com
  그는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까지만 해도 신1번 국도에 개성공간에서 물품을 실어오는 탑차가 하루에 500~700대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한대도 없다"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그동안 뜸했던 왕래도 활성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 신지아(40)씨, 그리고 남동생 김도운(5) 군과 나들이를 나선 김도엽(8)군은 "오늘은 아빠가 탁구대회에 나가느라 못 왔는데 다음에는 함께 개성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탐방객 안내를 맡고 있지만 서울시측에게도 이날 행사는 뜻 깊은 모양이었다.

  탐방단을 환송했던 박원순 시장은 "어제의 (남북정상회담)감동이 진하게 남아있다. 어제 지켜봤듯이 얼어붙었던 동토가 다 녹아내린 봄인 것 같았다.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해외동포, 세계인이 같은 느낌을 가졌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지속 가능한 미래, 평화로운 한반도를 물려줘야한다"며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 프랑크푸르트, 마드리드까지 한 14박15일 정도 수학여행 갔다 오는 게 멀지 않은 것 같다. 어제 남북정상이 경의선 복원을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평화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다. 11년 전에도 했던 약속이다. 이제는 잘 가꿔가야 한다. 오늘 어린이들의 표정에서 번영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시 직원인 기은아(30)씨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 DMZ가 있었는데 심리적으로는 너무 멀었던 것 같다"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와보니 바로 옆 동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행사를 통해 남과 북의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28일 오후 도라산역 내부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신지아(40)씨와 아들 김도운(5) 군.  sds1105@newsis.com  sds1105@newsis.com
탐방을 마친 송찬용 할아버지는 이제 평화를 말했다.

  송 할아버지는 "(남북정상회담이 있던)어제는 하루 종일 행복했어요. 남북 정상이 8000만 국민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줬어요"며 "우리의 염원은 평화통일이에요. 눈앞에 온 것 같아요. 전 세계가 칭찬해야 마땅한 일이에요"

 탐방단은 이날 4시30분께 미국기지를 리모델링해 만든 캠페그리브스에서의 토크콘서트를 끝으로 알찬 하루 여행을 마쳤다.

 서울시 안준호 체육관광 국장은 "DMZ평화여행에 대한 시민 호응이 예상보다 좋자 올해 가을에는 500명 정도로 인원을 늘려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sds1105@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