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 표지석 쓴 여태명 선생
뉴시스, 남북정상회담 표지석 '평화와 번영을 심다' 쓴 여태명 선생 단독 인터뷰
【익산=뉴시스】심회무 기자 = "가슴이 쿵당거렸다. 역사적인 순간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그 순간 그 영광으로 난 숨을 쉴 수 없었다."
2018년 4월 27일 오후 4시 30분 남북정상회담 오후 일정 첫 행사인 기념식수식 현장.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식수 직후 표지석 양측에 나란히 서서 가림천 끈을 당기자 '평화와 번영을 심다'란 자신의 글을 TV로 지켜 본 여태명 선생은 그 순간을 표지석에 새긴 글씨보다도 더 깊게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그때서야 봉인이 풀린 그 글씨에 얽힌 사연을 뉴시스에 토로했다.
"내 60년 글씨 인생에 이 '평화와 번영을 심다'는 가장 비밀스러웠고 가장 영광스러운 글씨다."
남북정상회담이 한창 준비중이던 지난 21일. 정상회담을 불과 6일 남겨놓은 때.
서울가는 KTX에 몸을 싣고 있었던 여 선생에게 02-로 시작되는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데 그날 따라 받았다. 청와대 비서관이었다. 말하지도 말고 듣기만 하라며 나온 말은 글씨 의뢰였다.
청와대의 조건은 '공개 될 때까지 극비 준수'였다. 그날 서울서 술을 마음껏 마시고 다음날 익산 원광대 대학교 작업실로 돌아와 홀로 한지판(여선생만의 특수한지)을 깔았다. 도와주는 학생도 조교도 부를수 없었다.
표지석에 들어갈 총 47자. 여기에 본문 선택안(3가지) 글씨까지 총 63자. 사전 연습도 없이 단 한번 한 숨에 써내려갔다.
"나도 믿을 수 없었어. 보통 사전에 한 두번 써보고 쓰다가 다시 쓰기도 하는데 이번에 단한자도 머뭇거림없이 썼어. 아니 써졌어."
말 그대로 '일필휘지'였다. 여 선생은 당초 3가지 안을 보냈다.
1안은 '훈민정음과 용비어천가 서체'(전체 사진 맨 위 글씨)이고 2안은 일명 전주체라고 부르는 '완판본체'(사진 중 거꾸로 된 글씨) 다. 그리고 3안은 여 선생이 평생 연구해온 '민체'(사진 맨 아래)다.
훈민정음체는 정중한 전형적 글씨체다. 완판본은 조선시대 가장 일반적 글씨체로 칼로 새긴 날까로운 것이 특징이다..민체는 캘리그라피로 편지글이나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
여 선생은 청와대로 이 3가지 안을 보내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청와대는 3안을 선택했다. 여 선생은 만족을 떠나 너무 기뻤다. 본인이 평생 연구해 온 '민체'를 선택한 것인데 여 선생도 내심 3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 직책과 날짜는 훈민정음체로 글씨의 조화를 이뤘다.
"본문과 사람 이름이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는 것이 바로 평화를 이루고자하는 국민의 뜻이라고 생각해 구성했다."
여 선생은 원본을 평생의 가보로 삼을 예정이다. 조만간 표구작업에 나선다.
"두 정상이 말하는 것 처럼 한반도 평화 선언이 다시 뒤로 가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이 날이 이 글씨가 평화의 시작으로 영원히 남을 것 아닌가,"
청와대의 글씨 의뢰비에 대해선 웃으면서 술 한잔 하는 값이라고 대답했다.
1956년생인 여 선생은 호는 효봉으로 현재 원광대학교 미술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전주에 살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 서울 세종로 문화관광부 현판도 여선생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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