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김 위원장에 올 가을 평양서 재회 약속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저녁 9시13분께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전면 스크린을 통해 나온 '하나의 봄'이라는 주제의 영상을 함께 감상한 뒤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두 손을 꽉 잡고 있던 두 정상은 오후 9시26분 김 위원장이 차에 올라타면서 작별했다. 이날 오전 9시29분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며 첫 인사를 나눈 지 12시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김 위원장의 첫 마디는 "반갑습니다"였다. 그는 문 대통령의 손을 잡은 채 "정말 마음 설렘이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분계선까지 나와서 맞이해 준 데 대해서 정말 감동적"이라고 소회를 밝혔고 문 대통령도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의 아주 큰 용단이었다"고 화답했다.
첫 인사를 주고받은 뒤 김 위원장은 MDL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왔다. 분단 70년사를 통틀어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남한 방문이었다. 영원히 놓지 않으려는 듯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두 정상은 갑자기 '깜짝 월경'을 선보이며 모든 이들을 놀라게 했다.
문 대통령이 먼저 "(김 위원장은)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묻자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 땅을 밟은 김 위원장이 즉흥적으로 "그럼 지금 넘어가볼까요"라고 제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고 직접 북쪽으로 이끌었다. MDL 너머 북쪽 땅을 밟은 두 정상은 나란히 걸어 다시 남쪽으로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장면을 지켜보던 수행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취재진들 사이에서도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 위원장의 국군 의장대 사열도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이었다.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사열대로 이동하던 중 문 대통령은 "오늘 보여드린 전통의장대는 약식이라 아쉽다. 청와대에 오시면 훨씬 좋은 장면을 보여드릴 수가 있다"고 김 위원장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초청해주시면 언제라도 청와대에 가겠다"고 흔쾌히 수락했다.
의장대 사열이 끝난 뒤 두 정상은 양측 수행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에 문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수행원들과 예정에 없던 단체사진 촬영을 했다.
두 정상은 회담장이 마련된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 환담을 나눴다. 김 위원장이 "이제 자주 만나자, 이제 마음 단단히 굳게 먹고 다시 원점으로 오는 일이 없어야겠다"며 "기대에 부응해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앞으로 우리도 잘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와 함께 가는 우리 민족이 돼야 한다"며 "우리 힘으로 이끌고 주변국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두 정상은 오전 10시15분부터 100분 간 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200m를 오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보니 넘기 힘든 높이로 막힌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넘었다"며 "(여기까지) 11년이 걸렸는데 오늘 걸어오면서 보니 왜 이렇게 이 시간이 오래였나, 왜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라고 감회를 전했다.
문 대통령도 "오늘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10년 동안 기다려온 만큼 충분한 얘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2007년 이후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정상회담 뒤 개별 오찬과 휴식을 가진 두 사람은 오후 4시30분께 다시 만났다. 남측 MDL 인근 '소떼 길'에 평화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는 기념 식수 행사를 위해서다.
오전에 이어 또 다시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눈 뒤 두 정상은 높이 약 2.5m의 1953년생 반송(盤松)을 심었다. 문 대통령은 백두산 흙과 대동강 물로, 김 위원장은 한라산 흙과 한강 물로 합토합수(合土合水)를 하며 한반도의 화합을 기원했다.
두 정상은 이어 소나무 왼편에서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식수 표지석으로 이동했다. 표지석에는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문 대통령은 표지석을 보면서 "소나무를 심은 것이 아니라 평화와 번영을 심은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식수를 마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오후 4시36분께부터 MDL 표식물이 있는 길이 70m가량의 '도보다리'까지 40여 분을 산책했다. 이들은 특히 도보다리 끝부분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취재진과 수행원을 모두 물리고 27분간 '밀담'을 나눴다.
두 정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다 중간 중간 서로 웃기도 했고 김 위원장은 대화 도중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에 얹고 문 대통령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의 '단독회담'이나 다름없던 둘만의 담소를 끝낸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다시 평화의 집으로 돌아왔다. 4·27 정상회담의 결과를 정리한 문서이자 이번 회담의 하이라이트인 '판문점선언'의 서명식을 위해서다.
오후 5시58분부터 서명식이 시작됐고 두 정상은 ▲남북관계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등을 골자로 한 판문점선언을 발표했다. 두 정상은 서명을 끝낸 뒤 깜짝 포옹을 하며 친근감을 표하기도 했다.
판문점선언을 내놓으며 마음의 짐을 덜어낸 두 정상은 오후 6시30분부터 평화의 집 3층에서 열린 환영만찬에 임했다. 부부동반 만찬이었다.
환영만찬 참석을 위해 오후 5시53분께 김정숙 여사가 도착한 데 이어 오후 6시18분께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도 평화의 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여사는 리설주를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손을 내밀며 맞이했다. 한반도 역사상 최초로 남과 북 퍼스트레이디(영부인)들의 만남이었다.
환영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이며 현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오래 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래킹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이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 믿는다"며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을 보내주겠나"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농담에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큰 웃음을 터뜨리며 함께 '위하여'를 외쳤다.
김 위원장은 "나는 오늘 합의한 대로 수시로 때와 장소에 가림이 없이, 그리고 격식 없이 문 대통령과 만나 우리가 갈 길을 모색하고 의논해 나갈 것이다. 필요할 때에는 아무 때든 우리 두 사람이 전화로 의논도 하겠다"면서 정기적인 정상회담과 핫라인 통화 의지를 내비쳤다.
환영만찬까지 마친 두 정상은 오후 9시13분께부터 마지막 일정으로 진행된 환송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끝난 뒤 서로에게 '곧 다시 만나자'고 인사한 두 정상은 각자의 차량을 통해 귀갓길에 올랐다.
두 정상은 가을에 다시 만날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에서 문 대통령은 올 가을 평양에 방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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