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100조, 출산율 1.17명 불과
기약 없는 배정, '아이돌봄 서비스'
"남성 육아휴직, 아직도 눈치 봐야"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혼자서 육아를 전담한다는 이른바 '독박육아'. 육아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 독박육아의 고통을 호소하는 글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온종일 혼자서 아이를 돌보다 보니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또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독박육아의 고통이 심할수록 출산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10년간 무려 100조를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이 1.17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올해는 1.03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출산율 1.68명보다도 턱없이 낮은 수치다. 심지어 올해 신생아 수가 36만 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성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내년 7월부터 5세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씩을 지급하는 아동 급여 예산으로 1조1009억원을 책정했다. 또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아빠 육아휴직 급여를 200만원으로 올리는 등 육아휴직 예산을 올해보다 26% 상승한 9886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단순한 재정 지원만으로 출산율을 높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재정지원만으로 얼마나 효과가 나타날지도 미지수다.
일각에선 언제 배정받을지도 모를 '아이돌봄 서비스'나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순한 재정적 지원만으로도 한계가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육아는 일자리와 복지, 보육, 주거, 의료 등과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독박육아를 권하는 사회적 인식과 틀을 깨지 못하면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육아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언제 배정받나"···아이돌봄 서비스 '그림의 떡'
"대기자가 워낙 많아서 기다려야 돼요. 언제 배정 받을지 장담 못해요."
최근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김지혜(34)씨는 정부에서 시행 중인 '아이돌봄 서비스'를 신청하려다 포기했다. 김씨는 신청일이 다됐는데도 배정받지 못해 결국 지방에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겼다.
김씨는 "신청자가 워낙 많아 어쩔 수 없지만, 무작정 기다리라고 하기보다는 미리 수요를 예측해서 누구나 필요할 때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작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거나 이용하기 힘든 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아이를 키우기 나쁜 환경에서 누가 마음 놓고 출산을 하겠냐"며 "수당을 올리는 것보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촘촘한 정책 구성과 집행이 더 중요하다"고 토로했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만 12세 이하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 등에 정부에서 보증하는 돌보미가 아이를 돌봐주는 제도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가구는 지난 2012년 4만3947가구에서 2016년 6만1222가구로 증가했다. 매년 만족도 조사에서 최고 점수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실제 돌보미가 턱없이 부족해 배정받기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없다. 서비스 대상인 12세 이하 어린이는 전국적으로 590만명이지만, 돌보미는 2만1000명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1년 전에 신청을 해도 배정받기가 쉽지 않다.
돌보미의 급여 수준과 처우도 문제다. 올해 아이돌보미의 시간당 수당은 6500원이다. 과거 실비로 지급되던 교통비 역시 현재 편도 10km 이상 이동하는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줄어든 셈이다.
2년간 돌보미로 활동했던 신모(49·여)씨는 "비슷한 일을 하는데 사설 업체에 비해 낮은 수준의 급여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일은 많지만, 급여와 점점 열악해지는 처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설 산후도우미로 업체 옮길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돌보미 처우 개선에 나섰다. 정부는 최저임금이 16.4% 오르는 것에 맞춰 돌보미 수당 등 인건비, 고용부담금 인상 등도 지원한다.
여성가족부는 늘어나는 아이돌봄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18년 아이돌보미를 2000명 늘린다. 올해 2만1000명에서 내년 2만3000명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또 올해 추가경정예산 11억3100만원을 확보해 저소득층 아이돌봄 서비스 이용 시간이 현재 연간 480시간에서 600시간으로 늘어나게 됐다.
여가부 관계자는 "일부에서 육아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지난해 서비스 이용자 만족도에서 89.5점(100점 만점)을 받을 만큼 만족도가 매우 높은 정책 중의 하나"라며 "앞으로 아이돌보미의 처우개선과 수요에 맞는 공급 확대를 위한 다각도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 급여 오른다는데'···그래도 눈치 보여
남성 육아휴직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을 아예 의무화한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남성의 육아휴직자 비율이 10%를 넘어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는 6월말 기준으로 510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2.1% 증가했다. 전체 육아휴직자(4만4860명) 대비 비율은 11.3%를 넘어섰고, 전년 동기(7.4%)에 비해 약 4% 증가했다.
육아휴직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면서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넘어야할 산도 만만치 않다.
남성 육아휴직이 공직사회와 300인 이상 대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도 망설이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보수적인 기업 풍토와 가계 소득 감소가 대표적인 걸림돌이다.
직장인 강모(36)씨는 "눈치 보지 말고 육아휴직을 쓰라고 하지만, 직장 상사와 동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면 모를까, 민간기업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쓴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한영준(38)씨도 "집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아이 양육비까지 감당하려면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며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내달부터 육아휴직 급여 첫 3개월분이 인상된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이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50만원, 하한액도 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20만원 늘어난다.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보험법 시행령'이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육아휴직 급여는 지난 2001년 육아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험에서 월 20만원을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통상임금의 40%(하한 50만원·상한 100만원)로 상향된 채 유지됐다.
이는 해외 육아휴직 급여의 통상임금 대비 비율 비해 낮은 수준이다. ▲스웨덴 첫 390일 77.6%(나머지 90일은 정액) ▲일본 첫 6개월 67%, 이후 50%를 받을 수 있다. 노르웨이는 출산 후 49주까지 100%를 지급받거나 59주까지 80%를 지급받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문기섭 고용정책실장은 "이번 육아휴직급여 인상은 육아휴직자의 생계를 안정시키고 육아휴직 사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다만 근로자가 사내 눈치를 보고 사업주는 근로자의 육아휴직에 따른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직장문화를 개선하고, 육아휴직 활용이 미흡한 사업장에 대해 근로감독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ky0322@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