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현역 최장수 걸그룹 '소녀시대'가 오는 5일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미국의 권위 있는 음악매체 빌보드가 최근 발표한 '지난 10년간 베스트 K-Pop 걸그룹 10 : 평론가의 선택'에서 1위를 차지한 소녀시대는 명실상부 국내 톱 걸그룹으로 통한다.
2007년 나란히 데뷔한 2세대 걸그룹(1세대는 S.E.S·핑클) '원더걸스' '카라'는 한때 소녀시대와 천하를 양분 또는 3등분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소녀시대만 살아남았다.
소녀시대는 1세대 아이돌의 대표주자 'H.O.T'를 발굴한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내놓은 그룹이다. 1996년 H.O.T가 데뷔한 이후 한국 아이돌 역사가 20년이 넘었는데, 소녀시대는 그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명이 길지 않은 아이돌 그룹, 특히 수명이 짧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그룹 역사에 소녀시대는 이례적인 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는 "소녀시대는 걸그룹 생명력이 짧다고 여겨지는 K팝에서 드문 팀"이라며 "소속사와 가수의 전속계약 기간이 최대 7년(공정거래위원외 표준약관 계약기간) 인 상황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10년을 유지한 건 의미와 상징이 있다"고 했다.
아이돌 전문 웹진인 아이돌로지의 편집장인 대중음악평론가 문용민(필명 미묘)도 "걸그룹으로서 10주년을 맞는 팀들이 거의 없다"면서 "소녀라는 타이틀을 앞세운 팀을 20대 후반까지 끌고 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다"고 했다.
◇왜 소녀시대만 살아남았나
SM은 소녀시대에 대해 "캐스팅-트레이닝-프로듀싱-매니지먼트로 이어지는 SM의 기획력이 총집합된 국내 최초의 완성형 걸그룹"이라고 자부했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노래, 춤, 연기, 언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도록 길게는 7년, 평균 5년이라는 기간동안 다양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며 "멤버 구성 단계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동의한다. 김윤하 평론가는 "소녀시대의 10주년에는 한국에서 가장 큰 가요 기획사인 SM의 힘도 분명 있다"며 "퀄리티 컨트롤이 잘 됐다"고 봤다.
SM의 프로듀싱 역시 돋보였다. 소녀시대가 2007년 8월5일 발표한 데뷔 싱글 '다시 만난 세계'는 음악, 퍼포먼스, 비주얼 등에서 대중이 바라는 걸그룹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같은 해 11월 발매된 셀프 타이틀 정규 앨범 '소녀시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팀 이름이자 지난 1989년 빅히트한 이승철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한 '소녀시대'를 타이틀곡을 내세운 아이디어는 번뜩였다.
문용민 평론가는 "소녀성을 전면에 내세운 걸그룹 아이돌이 10주년을 맞이한 자체가 의미가 깊다"며 "소녀시대가 지금부터 활동하는 하나하나는 K팝 걸그룹의 역사가 된다"고 했다.
소녀시대 같은 2세대 걸그룹이 S.E.S와 핑클 등 1세대 걸그룹과 달랐던 점 중 하나는 본격적인 한류의 첨병 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특히 소녀시대는 외모와 음악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성취욕이 넘치는 전문진 여성을 가리키는 '알파걸' 이미지로 특히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문용민 평론가는 소녀시대가 2014년 2월 발표한 미니 4집 타이틀곡 '미스터 미스터(Mr. Mr.)'를 이런 이미지를 가장 압축한 곡으로 꼽았다. 사랑에 빠진 여성이 화자지만, 남성을 이끄는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곡이다.
외모와 퍼포먼스만 내세운 것이 아닌, 음악적인 힘도 한몫했다. 특히 지난 2013년 1월 발표한 정규 4집 타이틀곡 '아이 갓 어 보이'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당시 혁신적인 곡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는 "시류가 빨리 바뀌는 댄스 음악을 주무기로 정상에서 10년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매번 최고는 아니었지만 음악 자체가 좋았고 거기에 따른 좋은 콘셉트를 내놓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걸그룹 열풍이 불었는데, 흐름이 길게 이어지는데 기여했다"고 봤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 2014년 제시카가 팀을 탈퇴하면서 9인 멤버가 8인 멤버로 재편됐을 때다. 하지만 "멤버들이 팀을 지키고자하는 의욕이 강한"(문용민 평론가) 덕분에 위기를 잘 봉합할 수 있었다.
소녀시대 멤버 써니는 소녀시대 멤버 8명을 커버로 내세운 패션 매거진 '더블유(W)' 8월호 인터뷰에서 "각자 사춘기처럼 개인적인 슬럼프도 있었고, 팀의 어려움을 함께 겪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도움이 되는 건 서로였던 것 같다"고 했다.
◇여덟 멤버들의 성장 서사
소녀시대가 장수그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특징은 팀뿐만 아니라 멤버들 각자의 성장서사이다. 각자 개성과 장점을 잘 살린 탓에 여덟 멤버들 모두 큰 인지도를 갖게 됐다.
메인 보컬 태연은 탁월한 가창력으로 솔로 앨범은 물론 각종 드라마 OST에서 활약하며 음원강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써니는 발랄한 매력으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끼를 뽐내고 있다.
눈웃음이 매력적인 티파니는 언어 능력, 글로벌한 음악 감각으로 두루 활약 중이다. 효연은 화끈한 춤 실력과 호탕한 성격이 매력적이며, 청순함과 발랄함을 고루 갖춘 유리는 남녀노소에게 호소력이 크다.
소녀시대는 이와 함께 보컬라인인 태연, 티파니, 서현으로 구성된 유닛 '소녀시대 - 태티서'로 소녀시대의 댄스 음악과 다른 색깔의 음악으로 실험을 꾀하기도 했다.
SM은 "소녀시대는 그룹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 활동을 할 때도 멤버별 개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지속적으로 소녀시대의 모습을 비추고 어필해왔다"며 "소녀시대가 장수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봤다.
SM은 데뷔 전 트레이닝 단계에서부터 노래, 춤, 연기, 언어 등을 익히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왔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각 멤버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를 잘 포착했다"며 "보컬 멤버 중심의 소녀시대-태티서라는 유닛을 구성해 성공적인 활동을 했고 멤버들이 솔로 앨범을 발매할 때에도 각자 가진 보컬 스타일과 퍼포먼스 실력, 비주얼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했다"고 전했다.
또 "연기에 재능 있는 멤버들에게는 연기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데뷔 초부터 연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고, 뮤지컬, 예능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도 멤버별 개성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진행하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김윤하 평론가도 "멤버들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고유하고 능력치 표현도 잘 해줬다"며 "지난 10년은 개인으로도 그룹으로도 탄탄하게 다듬어왔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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