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 집배원 늘어가는데..고용부 부서간 '업무 핑퐁(?)' 논란

기사등록 2017/03/19 07:00:00
【서울=뉴시스】홍찬선 기자 =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나흘 앞둔 4일 오전 서울 서대문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택배 분류작업에 분주하다. 2016.02.04.  mania@newsis.com
집배노조, 20일 특별근로감독 신청키로
 고용부, 정부기관 상대 근로감독 전례없어 내심 '부담'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고용노동부가 과도한 업무로 사망하는 집배원들이 늘고 있지만 우정사업본부가 공공기관이라는 이유로 근로감독에 미온적이 아니냐는 노동계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근로자의 권익보호에 앞장서야 할 고용노동부가 소관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부서간 업무를 떠넘겨 가뜩이나 대통령 탄핵으로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9일 노동계에 따르면 고용부는 올해 초 집배원들의 과로사로 의심되는 돌연사가 사회적인 논란이 되자 지난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전국집배노조 측과 여러차례 비공식 면담을 갖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집배노조측은 최근 1년 동안 집배원 9명중 7명이 과로사로 사망한 개연성이 높은 만큼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지만 고용부는 난색을 표했다.

 노조에 따르면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는 장시간 노동은 안타깝지만 집배원은 노동시간이 무제한인 특례업종이라 법적관련 규정이 없어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선뜻 근로감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과에서도 소관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극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작업장내 위험요소 등과 관련된 문제점이 발견돼야 하는데 산안법상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처벌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근로감독에 나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집배노조는 고용부의 이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내 게임업체인 M사의 경우 직원들의 잇따른 돌연사로 노동인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확산되자 고용부는 M사를 포함해 IT 업종 100여곳을 대상으로 기획근로감독을 결정한 바 있다.

 게임산업군을 포함한 IT업종은 야근, 특근 등의 제한이 없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속하지만 잘못된 근로관행 근절을 명분으로 기획감독에 착수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대해 취한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노조측은 조기 출근, 초과 근무 등의 '무료노동'을 강요받으면서 수당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임금체불이 명백한 만큼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집배원들의 업무특성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 직무스트레스 등이 잦은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처벌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서울=뉴시스】김진아 기자 = 서울지방우정청 소속 우체국이 제20대 국회의원선거와 관련해 선거우편물 소통에 나섰다고 4일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일 마포우체국 소속 집배원들이 우편함에 선거공보물을 우편함에 넣고 있는 모습. 2016.04.04. (사진=서울지방우정청 제공)  photo@newsis.com
 실제로 최근 사망한 집배원 7명중 3명은 과로사로 인한 산재 승인을 받았으며 나머지 4명은 산재 신청 절차를 진행중이거나 검토하고 있다. 과로사로 집계되진 않았지만 올해 2월과 3월에 연이어 자살한 집배원 2명도 업무량이 과다한 지역에서 일해 주변 사람들에게 직무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성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기획국장은 "근로감독은 불법을 적발해서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는 건데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상습적인 체불로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은 특별근로감독을 할 수 있다"며 "직업상 질환이 생기는 이유는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에 의해 뇌혈관이나 심장 등에 문제가 생겨서 질병이 발생하는 만큼 고용부가 역학조사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는 고용부가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근로감독에 미온적인 배경에는 정부기관을 상대로 한 감독을 실시한 전례가 없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통상적으로 특별근로감독은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등 사법처리를 전제로 착수하는 만큼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 대한 특별감독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 소속이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기관으로 편입됐다.

 전국집배노조 관계자는 "당초 고용부는 우정사업본부가 국가기관이기 때문에 산업안전법 적용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고용부가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면서 "같은 국가기관끼리 근로감독을 한 전례가 없어 아무래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 전했다.

 고용부의 '업무 핑퐁'이 계속 되자 집배노조는 결국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보충해 20일 고용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하기로 했다.

 집배노조 관계자는 "사망한 집배원들 말고도 내심혈관계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집배원들이 많다"며 "죽음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 업무 중 다치거나 아픈건 비일비재하다"며 근로감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김준영 한국노총 미조직비정규사업단 부단장은 "집배원들 같은 경우에는 정부가 정원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탄력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인구의 유입, 도시의 변화에 비례해서 신속하게 인원을 배치하는 시스템과 장기적으로 보면 우편집배원들도 수익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노동강도를 끊임없이 끌어온 이 두 가지가 과로사의 핵심이다. 정부가 탄력적인 인력 운영을 해야 해결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고용부가 지난달말 일자리 정책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일자리정책평가과, 고용서비스기반과 등 2개과를 신설한 것을 두고 '몸집 불리기'에만 골몰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노동자 권익 보호는 소홀한 채 탄핵으로 어수선한 정권교체기를 틈타 조직을 신설한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은 "현재 산안법상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재해이고 우정본부는 1년간 7명이 과로사했음에도 고용부가 당장 실시해야 할 근로감독은 하지 않고 업무가 중복되는 부서를 늘린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즉각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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