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닥치고 사랑, 이성 아닌 격정으로 홀렸다…영화 '인간중독'

기사등록 2014/05/14 09:59:14 최종수정 2016/12/28 12:45:20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영화에는 그것을 연출한 감독의 인장이 새겨져 있다.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봉준호의 영화에는 봉준호스러움, 박찬욱의 영화에는 박찬욱스러움이 있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고 이것이 누구의 영화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중독'을 연출한 감독이 누구인지 모르고 본다면, 누구의 작품인지 쉽게 추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사람이 김대우 감독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로지 감정에만 충실한 김대우라니 말이다.

 월남전의 영웅 '진평'(송승헌)은 아내 '숙진'과 군 관사에서 살아간다. 어느날 그의 밑으로 이제 막 베트남에서 돌아온 장교 '우진'(온주완)이 편입한다. 우연히 우진의 아내 '가흔'(임지연)을 보게 된 진평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가흔 역시 진평에게 끌리고 두 사람은 금지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한다. 진평과 가흔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사랑은 위태로워지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김대우 감독은 이야기꾼이다. 단순히 그가 영화 '정사'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우 감독이 연출한 '음란서생'과 '방자전'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음란서생'의 주인공은 자신의 이야기가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낼 때의 짜릿함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방자전'은 '춘향전'의 이야기를 뒤틀어 만든 이야기였다. 그의 영화에서 이야기는 그 자체가 주인공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다룬 성적 소재의 파토스에 주목하지만, 사실 김대우 감독의 영화는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그의 에토스가 더 중요한 작품이었다.

 '인간중독'에서 김대우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건 이 영화가 오로지 파토스로만 이루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죽도록 사랑한다는 게 줄거리의 전부다. 이야기를 대신하는 건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영화는 애초에 '왜'라는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다.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사랑하니까 사랑한다'는 동어반복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인 '이야기'를 버린 이유는 이야기꾼이 아닌 연출가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인간중독'은 목적지를 정해 놓고 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끝도 없이 달리다 보니 어떤 곳에 도착하게 되는 영화다. 그리고 김대우 감독의 이런 변신은 성공적이다.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는 한 남자의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 그의 사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진평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의 사랑이 슬퍼서가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방식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내팽개친 진평의 사랑을 비웃던 장교 부인들이 결국 "그런 사랑을 받으면 어떨 것 같느냐"라고 묻는 것은 '인간중독'이 어떤 영화인지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송승헌, 임지연, 두 주연배우의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외모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이다. 사랑을 말하는 김대우의 한결같은 방식에 피로감이 적은 것은 젊고 아름다운 남녀가 사랑을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송승헌보다 군복이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임지연만큼 신비로운 얼굴을 한 20대 배우는 흔치 않다. 이런 두 사람이 조화를 이뤘을 때 오는 힘이 이들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자연스럽게 극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배우의 무기가 꼭 연기력일 필요는 없다. 배우의 최고의 무기는 때로는 외모일지도 모른다.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조연 배우가 달래준다. 전혜진, 온주완, 유해진은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에 탄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아 제몫을 했다. 유해진은 관객을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배우이고, 온주완은 힘을 빼고도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역시 가장 돋보이는 건 전혜진이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냉철한 여형사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바 있는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는 수다스러운 장교 부인 역을 맡아 발군의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전혜진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 그녀를 더 이상 배우 이선균의 부인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인간중독'이 단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다. 극 후반부 급작스러운 전개는 아마도 관객이 가장 당황스럽게 느낄 부분일 것이다. 촘촘하게 쌓아온 감정을 이렇게 한꺼번에 무너뜨려야 했는지 의문이다. 진평의 아내인 숙진과 가흔의 남편인 우진이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아쉬움도 있다. 진평과 가흔이 사랑에 빠지는 계기를 부분적으로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진 측면이 있다. '사랑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답할 수 있고, 두 사람의 사랑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고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러 외면했다기보다는 감정에 집중하느라 놓쳤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김대우 감독이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화술 없이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차기작은 기대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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