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이나 민가에서 사악한 귀신과 악귀,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베푼 의식이 나례(儺禮)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그리고 개인 문집들에 관련기록이 400여건있다.
이긍익(1736∼1806)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섣달 그믐날 밤에 궁중에서 행하는 나례의 행사를 민간에서도 역시 모방했다. 비록 진자(侲子; 소년)는 없으나 푸른 댓잎, 자형나무 가지, 익모초 줄기와 동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를 합해 한 데 묶어 비를 만들어서 창문과 문지방을 마구 두드리며 북과 방울을 울리고 문밖으로 쫓아내는 시늉을 하며 말하기를, '매귀(枚鬼)를 쫓아내자'고 한다. 또 첫 새벽에 그림으로 그린 처용·각귀(角鬼)·종규(鍾馗)·복두(幞頭)를 쓴 관인(官人), 갑주를 갖춘 장군, 보물을 받은 부인, 그림 닭, 그림 호랑이를 문간이나 사립문에 붙인다"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황호(1604∼1656)는 '동사록(東槎錄)'에 "한 해의 마지막 날을 곧 제일(除日)이라 한다. 옛적에 나례가 있었으며 지금도 천하에 통용된다"고 썼다.
궁중의 나례 의식은 고려 정종6년 무렵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온 듯하다.
안정복(1712∼1791)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 "나례에서는 닭 다섯 마리를 찢어 죽여서 여역(癘疫; 전염성 열병)의 기운을 몰아내는데, 왕은 이것이 살려주기를 좋아하는 덕이 아니라고 해 다른 물건으로 대신할 것을 명했다. 사천대(司天臺)가 아뢰기를 '상서지(祥瑞志)에 나례에는 흙으로 만든 소를 쪼개서 추위를 쫓는다고 했으니, 토우를 만들어 닭을 대신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쫓았다"고 적었다.- 경진년 정종6(송 인종 강정원년 거란 흥종 중희9, 1040년)
이런 나례가 조선의 궁중으로 넘어왔다.
'세종실록' 중 '노상왕이 나례와 화산대를 보고 싶어하여 준비케 하다'는 기사에는 "임금이 말하기를 '노상왕(정종)께서 나례와 화산대(火山臺)를 구경하고자 하시니, 이를 맡은 여러 관사로 하여금 그 일을 준비케 하라'고 했다"고 돼있다.- 세종 즉위년 무술(1418년 영락16) 12월29일(갑진)
'성종실록'의 '선정전에 나아가 나례를 구경하다'는 기사는 "임금이 선정전에 나아가 나례를 구경했다'고 전한다.- 성종3 임진(1472년 성화8) 12월28일(경인)
문제는 나례를 둘러싼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에서 엿볼 수 있다.
"나례가· 역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주례(周禮)'에도 실려 있으니 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 백성들에게 끼치는 폐해를 가지고 말하자면, 나례에 소요되는 종이가면의 수효가 매우 많아 한 개의 값이 큰 것은 쌀 30말이고 작아도 20여말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으니, 이것을 모두 합하면 많게는 400여섬이나 됩니다. 이것은 모두 시민의 고혈에서 나온 것으로 지난날 폐조(廢朝)에서도 시민들의 상언(上言; 백성이 임금에게 글을 올리던 일)에 따라 그들이 원하는대로 하게끔 허락해 줬습니다. 그런데 관상감에서 때에 임박해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으니 매우 안타깝습니다. 만약 시민의 소원에 따라 목상으로 종이가면을 대신해 해마다 단장만 새로 한 다음 사용한다면, 비용이 매우 절감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정원일기' 인조1 계해(1623년 천계3) 10월10일(정묘)
"영의정 정존겸이 아뢰기를 '전부터 나례를 거행할 때에는 무뢰배와 한잡인(閑雜人; 관계도 볼일도 없는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고 잡란해지는 폐단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좌포장과 우포장으로 하여금 구관(句管; 맡아 다스림)해 각별히 금지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성록' 정조8 갑진(1784년 건륭49) 10월8일(경인)
나례의 허례허식을 지적한 나식(1498∼1546)의 시도 있다.
"나례의 북소리가 둥둥 이웃 마을까지 울리며(儺鼓鼕鼕動四閭)/ 사방 동서로 쫓아내는 형세가 어지럽구나(東驅西逐勢紛如)/ 해마다 너를 들으면 흰머리만 늘어날 뿐(年年聞汝徒添白)/ 이 나라 귀신 하나라도 없앤 적이 있더냐(海內何曾一鬼除)"
대궐에서 거행하는 나례는 더 이상 없다. 하지만 섣달 그믐날 폭죽을 쏘거나 집안 불을 밤새 켜놓고 잠을 자지 않는 등 소소한 기복·주술행위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31일은 핼러윈이다. 우리나라에도 핼러윈은 있었다.
문화부장 reap@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