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피해 영향 63억달러 추산…입출금 일시 중단
기업 계정 훔쳐 AI 사용…결제 관리자 권한 낮춰 차단도 방해
프랑스 냉장고 과열·경찰계정 탈취…AI 활용 공격도 확인
[편집자 주]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마저 해킹 공격에 뚫렸다. 바이낸스는 피해 영향 규모를 약 63억달러(약 8조4420억원)로 추산했다.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한 사이버 공격이 금융은 물론 일상생활까지 위협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는 세계 곳곳의 해킹 피해와 추적 사례를 통해 AI가 바꿔놓은 사이버 공격의 양상을 짚어보고, 국경을 넘는 해킹에 맞선 각국의 방어 전략과 대응책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해커의 손이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의 문턱을 넘었다. 피해 영향 규모는 약 63억달러(약 8조4420억원)로 추산됐다. 프랑스에서는 슈퍼마켓 냉장실이 섭씨 50도로 달아올랐고, 아일랜드 경찰의 공식 계정에는 가상자산 광고가 올라왔다.
해킹범은 돈과 개인정보뿐 아니라 기업의 결제 권한과 식품 보관설비, 공공기관의 계정까지 노렸다. AI를 이용해 침입 시간을 줄이는 공격도 확인됐다.
◆바이낸스 "엔지니어 노트북 침해 가능성"
바이낸스는 지난 30일 보안 사고 공지를 내고 입출금을 일시 중단했다. 자금 추적과 자산 동결에 나선 회사는 개발·운영 담당 엔지니어의 노트북이 침해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해킹범이 이를 통해 서비스 운영 환경에 접근해 승인되지 않은 출금 거래를 요청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지갑의 비밀키가 유출됐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이낸스는 관련 업체들과 협력해 약 30억달러(약 4조200억원)의 자산을 동결했다고 설명했다. 추산한 피해 영향액 전체가 회수 불가능한 손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회사는 이용자 보호기금과 자체 자금으로 손실을 충당하겠다며 "이용자 자금은 안전하다"고 밝혔다. 정확한 침입 경로와 범인은 조사 중이다. AI 사용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AI가 등장한 다른 사건에서는 해커가 서비스를 쓰고 기업이 돈을 냈다. 계정을 빼앗긴 기업은 이용료가 불어나는 것을 보고도 직접 사용을 차단하기 어려웠다. 해킹범이 기존 결제 관리자의 권한까지 낮춰 놓았기 때문이다.
보안업체 위즈가 지난 20일 공개한 사례다. 해킹범은 구글 클라우드 이용기업의 계정을 탈취한 뒤 자신들이 만든 작업 공간을 피해기업의 결제 계정에 연결했다. 이후 구글 AI 서비스 제미나이를 대량으로 사용했다.
침입 후 24시간에서 48시간 만에 수만달러에서 수십만달러(원화로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이용료가 발생했다.
시작은 검색 광고였다. 구글 클라우드 관련 광고를 누른 이용자가 가짜 로그인 화면으로 유도됐다. 여기에 입력한 계정 정보와 추가 인증번호가 해킹범에게 넘어갔다.
해킹범은 외부 계정의 접근을 막던 제한을 풀고 결제 권한을 확보했다. 기존 결제 관리자는 내역만 확인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낮췄다. 기업이 수상한 연결을 발견해도 관리 화면에서 직접 끊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피해기업은 돈을 내면서도 AI가 어떤 작업에 쓰였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질문과 답변이 해킹범의 작업 공간에 남았기 때문이다. 위즈는 피해기업 이름과 개별 침입 날짜를 공개하지 않았다. 구글 자체 시스템을 뚫은 사건이 아니라 고객 계정과 결제 권한을 악용한 사례다.
◆냉장고가 50도로 달궈졌다…프랑스 슈퍼 700곳 해킹
프랑스에서는 해킹 피해가 매장 진열대까지 번졌다. 지난 11일 밤부터 12일 사이 슈퍼마켓 냉장·냉동설비가 공격받으면서 보관 중이던 식품을 대거 버려야 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 따르면 남서부 그라디냥의 앵테르마르셰 매장에서는 새벽 배송기사가 물에 잠긴 창고를 발견했다. 매장주는 냉장실 온도가 섭씨 50도까지 올라 자동 살수장치가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해킹범은 설비의 성에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가열 기능을 악용했다. 식품을 차갑게 보관해야 할 설비가 오히려 온도를 높인 것이다. 고객 정보나 결제 시스템에 문제가 없어도 매장 영업에 타격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프랑스 정부는 13일 의회에서 약 700개 슈퍼마켓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냉장설비 제어장치 공급업체인 덴마크 댄포스는 피해 설비 대부분이 보안 업데이트 지원이 끝난 구형 제품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 AI가 사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냉장설비는 유지·보수업체가 원격으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연결돼 있었다. 여러 매장을 편리하게 관리하던 기능이 해킹범의 접근 통로로 악용된 셈이다. 일부 매장에서는 식품 폐기뿐 아니라 화재와 살수장치 작동에 따른 피해도 발생했다.
아일랜드에서는 경찰의 공식 계정이 가상자산 광고판으로 바뀌었다. 공영방송 RTE에 따르면 지난 14일 밤 경찰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 두 개가 탈취됐다.
교통·도로 안전 정보를 전하던 계정에 가상자산 홍보물이 잇따라 게시됐다. 약 60만명이 팔로우하던 계정이었다. 다른 경찰 계정은 가상자산 지갑의 고객지원 계정처럼 꾸며졌다. 시민들이 경찰 소식을 확인하던 통로가 해킹범의 홍보 수단으로 바뀐 것이다.
경찰은 해당 계정에 반응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15일에는 통제권을 되찾았다며 내부 시스템과 경찰이 관리하는 자료에는 피해가 없었다고 밝혔다. 수사를 위해 계정 활동은 당분간 중단했다. 이 사건 역시 AI를 이용한 공격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AI가 실제 침입 속도를 높인 사례도 나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21일 중국 국가와 연계된 것으로 평가한 해킹 조직이 AI 도구 '아르텍스(ARTEX)'를 활용해 미국 IT기업 커넥트와이즈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표적은 고객 자료를 보관하고 복구하는 클라우드 백업 서비스였다. 해킹범은 서비스의 인증 정보를 악용했다. 고객사가 자료 백업을 위해 허용한 접근 권한이 침입 통로로 바뀐 것이다.
◆AI가 줄인 침입 시간…3시간도 안 걸렸다
AI는 시스템 탐색과 비밀번호 대입, 탈취한 권한을 이용한 후속 작업을 빠르게 진행하는 데 쓰였다. 해킹범은 고객 조직 2250곳 이상에 로그인을 시도했다. 일부 환경에서는 인증 정보를 바꾸거나 접근 권한을 확대하려는 활동도 확인됐다.
같은 조직의 AI 활용 공격 가운데는 표적 탐색부터 높은 접근 권한 확보까지 3시간도 걸리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여러 침입 경로를 동시에 시험하면서 피해기업이 경보를 확인하고 대응할 시간을 줄였다. 다만 로그인 시도나 접속 성공이 곧 자료 유출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커넥트와이즈는 연결 차단과 인증 정보 재설정 등 수습에 나섰다. 고객사에도 내부에 승인되지 않은 변경이나 별도 접근 통로가 남았는지 확인하도록 안내했다. 서비스업체가 문제를 고쳐도 고객사의 조사가 함께 필요한 상황이다.
각 사건을 모두 AI 해킹으로 묶을 수는 없다. 다만 AI는 해킹범이 훔쳐 쓰는 자원이면서 공격 속도를 높이는 도구가 됐다. AI를 활용한 일부 공격은 침입 시간을 크게 줄였다. 피해기업과 기관에는 자금 회수와 설비 복구, 신뢰 회복이라는 긴 과제가 남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sno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