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취소 요구에 역사수업 위축 우려
교육부·도교육청에 수업 가이드라인 요구
[수원=뉴시스] 박종대 기자 =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의 경기도교육청 초청 강연을 둘러싼 취소 요구가 이어지자 경기지역 역사교사들이 특정 견해를 강요하지 않고 논쟁적 사안을 여러 관점에서 다루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치권과 민원이 역사수업의 토론과 교사의 판단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경기도초등역사교육연구회와 경기도중등역사교육연구회는 26일 공동 성명에서 "역사교육은 정답을 외우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라며 국회와 정치권에 교사의 수업에 부당하게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도교육청은 오는 28일 남부청사 대강당에서 교사와 학부모 등 교육공동체를 대상으로 '경기교육 대전환 명사 초청 강연회'를 연다. 황 소장은 '역사를 역사답게, 교육을 교육답게'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도의회 국민의힘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한민국교원조합은 황 소장의 과거 발언과 역사관 등을 문제 삼아 강연 취소 또는 재검토를 요구해 왔다. 도교육청은 특정 역사관을 주입하려는 행사가 아니라 역사교육의 방향을 살펴보기 위해 강연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연구회는 이번 논란이 역사수업의 자율성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며 우려했다. 역사적 쟁점을 균형 있게 다룬 수업까지 편향 교육으로 낙인찍으면 교사들이 현대사와 논쟁적 주제를 피하고 학생들도 여러 해석과 근거를 비교할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회가 인용한 도교육청 역사교육 실태조사에서는 초등 5·6학년 담임교사와 중등 역사교사 1662명 가운데 학생의 역사 문해력이 낮다고 답한 비율이 초등 76.0%, 중등 94.5%로 나타났다. 역사 부정·왜곡 콘텐츠 탓에 수업이 어렵다는 응답도 초등 50.5%, 중등 61.1%에 달했다.
연구회는 학생들이 온라인상의 왜곡된 주장에 휩쓸리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 판단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한 수업 원칙으로는 특정 견해를 주입하지 않고 논쟁적 사안을 여러 관점에서 다루도록 한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참고 사례로 제시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1976년 서독의 정치교육 전문가들이 마련한 교육 원칙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특정 견해를 강요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다양한 관점과 근거를 놓고 다루며 학생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연구회는 현대사와 논쟁적 주제를 다루는 교사가 자료 제시 방식만으로 민원과 정치적 공방에 휘말릴 수 있어 이런 원칙을 교사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장 교사들은 독일처럼 논쟁적 역사 쟁점에 여러 관점과 주장을 제시하고 학생들이 근거를 비교해 판단하도록 하는 수업을 국내 학교에서 실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교사가 자료를 균형 있게 제시하려 해도 어느 한쪽을 더 비중 있게 다뤘다는 민원이 제기될 수 있고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수업에서 어느 범위로 다뤄야 하는지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교육부와 도교육청에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 근거 없는 주장 등을 구분해 다룰 수 있는 공통 수업자료와 쟁점 수업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연구회는 교사 연수 확대, 체험학습 예산 지원, 중등 역사교사 정원 확충도 요구했다.
도초등역사교육연구회는 2012년 출범해 사회과 역사 영역 교육에 관심을 둔 교사 62명이 활동하는 도교육청 지정 교육연구회다. 연구회는 올해 인공지능(AI)을 역사수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윤용한 경기도초등역사교육연구회장은 "교사들은 여러 견해를 듣고 그 근거를 따져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교육자"라며 "강연 자체를 막아 판단의 기회까지 차단하려는 요구는 역사교육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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