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척 넘게 선박 공격…공격 건수, 중동 6배
최근 공방 격화…조타실·선원 등 핵심 시설 때려
다뉴브강 등 무역 재검토…곡물 수출 등 타격
[서울=뉴시스]고재은 기자 = 올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격화하면서 흑해가 중동 호르무즈 해협보다 더 위험한 해상 교통로가 됐다고 25일(현지 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분석했다.
해안안보업체 앰브리(Ambrey)와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올해 흑해에서 570척 넘는 선박이 공격 받아 최소 40명이 사망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확인된 사망자 수 24명보다 많다. 3분기 동안 공격 수는 하루 평균 4건이었으며, 흑해에서의 공격 건수가 걸프만보다 6배 이상 높다는 추정치도 있다.
FT는 "두 지역 모두 공격 보고가 단편적이라서 실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중동에서 일부 해운사들은 운임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석유 운송 위험을 감수하고 있지만, 흑해는 수익성이 낮고 무역이 훨씬 위험해서 선박을 보내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 15일 루마니아 흑해 연안에 대기 중이던 산마리노 국적의 화학물질 운반선 '와인 트레이더(Wine Trader)' 호에 드론 2대가 충돌하는 일이 있었다. 화재 발생 후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승무원 12명 가운데 7명이 실종됐다.
같은 날, 또 다른 화학물질 운반선 '야라 J(Yara J)'호도 약 15km 떨어진 지점인 술리나 운하 입구 부근에서 정박하던 중 피격됐다. 와인 트레이더 호의 한 관계자는 "인명 피해를 노린 공격"이라며 "연달아 두 번 공격한 것은 살해 의도가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루마니아 당국은 지난 23일에도 자국 해안에서 또 다른 유조선이 피격돼 선원 3명이 실종되고 1명이 사망했다며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영해 경계 지역에서 전쟁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흑해 공격 최근 들어 격화…우크라, 러시아처럼 선원 공격
흑해는 지난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로 매우 위험한 해상 교통로가 됐다. 전쟁 초기부터 기뢰가 매설됐으며 선박의 위성 항법 시스템에 대한 교란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외신은 올해 여름 이후부터 해운, 항만 인프라에 대한 보복 공격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고 봤다. 로이드리스트 인텔리전스의 연구 책임자 브리짓 디아쿤은 "수년간 전쟁이 해상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지만,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며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선박을 대상으로 드론 공격을 벌이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크림반도의 디젤 공급을 차단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아조프해와 흑해가 만나는 케르치 해협의 선박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미군 사령관 로버트 브로브디는 지난달 "11주 동안 300척 이상의 러시아 선박이 공격받았다"며 "공격 대상에는 제재 대상인 유조선뿐 아니라 러시아 곡물을 운송하는 선박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항구를 드나드는 선박의 공격을 강화해,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비교적 잦아 들었음에도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앰브리는 지난 45일 동안 발생한 선박 공격의 90%가 러시아 소행이었다고 분석했다.
앰브리 수석 분석가 토마스 알렉사는 "과거 우크라이나는 선박 매니폴드(선박 1척과 탱크로리 여러 대를 연결해 동시에 충전하는 장치)나 기관실, 방향타 등을 무력화하곤 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러시아처럼 조타실과 선원이 있는 구역을 공격해서 사상자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격이 발생하는 범위도 무차별적으로 변했다. 흑해 전략연구소의 안드리 클리멘토 소장은 "양국 간 전쟁은 사실상 국경을 초월해서 진행될 것이다. 다른 모든 흑해 연안 국가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뉴브강 수계 등 무역 재검토…곡물 수출 등 타격
FT는 그 결과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난 해운회사들조차도 다뉴브강 수계와 불가리아 연안과 가까운 지역에서의 무역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보험료가 선박 선체 가치의 15%, 즉 중동 지역의 보험료 2배보다 높게 책정되면서 노후 선박을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곡물 시장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러시아는 흑해를 피해 발트해를 경유하거나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치는 경로를 통해 곡물을 운송하고 있으며, 9월 흑해와 인근 아조프 해협 항구의 곡물 선적량이 전월 대비 6분의 1로 감소했다는 통계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역시 해상 농산물 수출량이 지난 8월 전쟁 이전보다 약 75% 감소했다. 우크라이나의 한 해바라기유 수출 업체 회장은 "가장 큰 위험은 내년 봄 농작물 재배 현장에서 발생할 것"이라며 "수출 수익은 연료, 종자, 비료 구입 자금으로 쓰인다. 항만 시설이 마비되고 운송비가 영업 이익을 잠식한다면 중소 농가는 파종할 자금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했다.
서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등 고객들은 다른 공급처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 국제곡물거래업체 임원은 "향후 3~4개월 동안 러시아로부터 상당한 곡물을 구입하기로 했지만 도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에 호주 공급업체로 대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까지 갈등이 빠르게 소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클리멘토 소장은 "유럽의회가 '치명적인 공격'을 이유로 흑해에서 EU 해군 작전을 촉구했음에도, 나토의 개입 가능성이 거의 희박해서 상황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며 "양측 모두 해상 운송로 교란의 위력을 깨달은 이상 막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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