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여정' 한국영화 첫 주연
독일 입양아 출신 지휘자 '민준' 맡아
"한국어 연기 아이 같은 순수함 있어"
"과거 한국서 느낀 감정 인물에 녹여"
"나혼산 같은 예능에도 나가보고파":
[서울=뉴시스]박재민 인턴 기자 = "한국어 연기를 준비할 땐 영어 연기보다 최소 10배 이상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영어와 비교했을 때 한국어에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지죠."
배우 저스틴 H 민(37)은 20일 서울 종로구 진행된 영화 '흐르는 여정'(10월28일 개봉) 인터뷰에서 한국영화 데뷔작에서 한국어 연기를 선보인 소감을 이같이 말했다.
'흐르는 여정'은 남편을 떠나보낸 뒤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던 '춘희'가 새 아파트로 이사한 후 독일에서 온 입양아 출신 지휘자 '민준'과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년 '성찬'을 만나며 위로를 받는 이야기다. 배우 김혜옥이 춘희를, 저스틴민이 민준을 연기했다. 공민정·박대호 등도 출연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저스틴 민은 2019년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21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대된 영화 '애프터 양'에서 '양'을 맡아 한국 관객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2023)과 예능 '데블스 플랜:데스룸'(2025)에 잇따라 출연하며 국내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흐르는 여정'은 저스틴 민의 본격적인 한국 활동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 데뷔작이자 첫 장편 주연작이기도 하다. 그동안 해외에서 활동해 온데다 영어가 모국어인 만큼 한국어 연기는 쉽지 않았다. 그는 "영어로 연기하면 특정 단어에 집중하기보다 내 의도와 감정에 더 신경 쓰게 된다. 하지만 한국어로 연기하면 단어 하나 하나에 먼저 집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한국어 연기에는 새로운 매력이 있다고 했다. 언어가 달라지면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는 "제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는 제 안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하지만 언어에는 굉장히 마법 같은 부분이 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 나의 다른 모습이 튀어나온다"며 "영어로 연기 할 때와 비교하면 한국어 연기에는 더 따뜻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이 담기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극 중 민준은 독일에서 자랐지만 한국인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인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스틴 민 역시 한국계라는 배경을 가졌다. 익숙하면서도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마주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저스틴민은 민준과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게 닮았다고 했다. 그는 "민준은 저보다 더 낙관적이긴 하다. 힘들 걸 표출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비슷한 점이라면 둘 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 저 역시 음악을 감정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곤 한다"고 했다.
배경이 비슷한 민준을 연기했지만 처음 도전한 일도 있었다. 낯선 한국어 대사를 소화하는 동시에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익혀야 했다. 지휘 연기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가장 긴장하고 무서웠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꾸며내기보다는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감독님한테 빨리 연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음악이 먼저 완성돼야 했다. 감독님께 '빨리 끝내세요'라며 닦달했다"며 "매주 실제 지휘자를 만나 연습해야 했다. 매니저가 촬영지인 강릉에서 서울까지 운전해서 데려다주면 전 주말 내내 지휘만 했다"고 설명했다. 지휘는 단순한 기술 이상의 경험이었다. 그는 "지휘라는 게 테크닉 그 이상이다. 마치 오케스트라와 연결돼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다. 프로 음악가분들이 제 지휘를 기다리며 다 저만 쳐다봐서 무서웠지만, 모두 잘 따라주셔서 다행히 멋진 장면이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캐릭터를 꾸며내기보단 실제처럼 표현하려 했던 저스틴 민의 접근은 이 영화에 출연한 결정적 이유가 됐다. 그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었다. 스크립트를 읽어도 마음에 와닿는 게 없었는데 '흐르는 여정'을 읽고는 바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민준이라는 캐릭터에 감동 받았다. 민준이 독일에서 왔듯 저 역시 미국에서 왔고 더 어렸을 적에 한국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민준에게 녹여낼 수 있었다. 공감이 많이 가는 이야기라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저스틴 민은 어린 시절 한국을 고향처럼 느껴지면서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감정을 경험했다. 그는 "그땐 한국 문화나 언어를 지금보다 잘 몰라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어 "중학생 때 교류 프로그램 때문에 한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던 적 있다. 나이 차이에 따라 선후배가 있는 걸 전혀 몰랐다. 미국은 중고등학생이 서로 나이가 달라도 똑같이 친구이기 때문"이라며 "나이별로 형, 동생 같은 레벨(위계질서)이 있다 보니 처음에는 너무 쇼킹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에서 느끼는 감정도 달라졌다. 이제는 거리에서 자신을 닮은 사람들을 보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나처럼 생긴 사람, 나랑 똑같이 생긴 그런 사람들이 길에 있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점점 더 편안함을 느끼고 안전함을 느끼는 것 같다"며 "한국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다양한 단어를 들어서 인지, 덕분에 한국어는 정말 아주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스틴민은 한국 예능에 다시 출연하고 싶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데블스 플랜'처럼 도전적인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런 힘든 건 끌리지 않네요. 그건 저에게 매우 큰 도전이었거든요. 만약에 예능을 다시 한다면 '나 혼자 산다' 같은 쉬운 거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혼자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는 내년에도 한국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말씀은 못 드리지만 내년에 한국에서 하는 작품이 있어서 굉장히 기대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국 작품 스크립트를 많이 읽어보는데 가장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극심한 고통 받는 천재 같은 거 해보고 싶어요. '퀸즈 갬빗'처럼 한 분야 마스터(장인)인데 큰 갈등을 겪는 그런 캐릭터요. 그런 거 꼭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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