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블록, 무정부·반자본주의 성향…지도부 없는 수평 조직
'팍시외', 단순 폭력 가담자 넘어 기존 정치 질서 위협 세력
[서울=뉴시스] 이재우 기자 = 프랑스 정부가 지난 17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평화 시위가 폭동과 약탈로 변질되는 데 관여한 세력으로 극좌 성향 '블랙 블록(Black Bloc)'을 지목했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극좌 세력 구성원 한 명이 리모주 시청 건물 대부분을 태운 화재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지역에서는 극좌와 급진 극좌 단체가 주도한 반란성 행동 계획이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검찰은 현재 수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리모주 시청 건물 방화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된 34세 남성이 극좌 세력과 연계됐다는 의심 때문에 안보 감시 명단에 올라 있었으며 공무원에 대한 폭력 행위로 경찰에도 알려진 인물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프랑스 안보 소식통에 따르면 극좌 진영 가운데 5000명 가량이 폭력 행동에 나설 위험이 있는 인물로 분류돼 있다.
기욤 게랭 리모주 시장은 18일 르몽드에 극좌 활동가들이 물류를 조직하고 공격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은 폭죽과 박격포형 폭죽, 공성망치를 가져왔다"며 "이들은 전부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자신들이 훈련해온 시가전을 치를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가 블랙 블록 또는 극좌 선동 세력으로 부르는 이들은 이념적으로 무정부주의, 반자본주의, 반파시즘 운동과 연계돼 있으며 정당과 위계적 조직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FT는 전했다.
블랙 블록이라는 전술은 1980년대 서독의 무정부주의자와 급진 좌파 활동가 사이에서 시작됐다. 1999년 미국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의 당시 경찰과 대규모 충돌 등 반세계화 시위를 통해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노동시장 규제 완화 반대 시위를 계기로 힘을 얻었다.
이들은 조직된 지도부나 단체 구조가 없어 당국이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술과 노하우는 소셜미디어나 암호화된 메시징 앱을 통해 퍼지고 집결도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운동과 좌파 정치단체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실뱅 불루크는 "이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에 적대적"이라며 "일부는 폭동이 새로운 세계를 열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블랙 블록을 취재해온 탐사 보도 전문기자 티에리 뱅상은 2018년 노란조끼 운동 참가자들이 블랙 블록 활동가들에게서 전술을 배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블랙 블록 활동가들을 다른 시위대와 단절된 미친 과격분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이들은 확산하고 있는 더 광범위한 사회적 분노의 가장 눈에 띄고 급진적인 표현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한편, 프랑스 정부는 폭력 가담자들을 '팍시외(factieux·전복 세력)'로 규정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8일 대국민 연설에서 폭력 가담자들을 극좌 소그룹 출신의 팍시외와 이들에게 합류한 다수의 범죄자들이라고 지칭하면서 정당한 요구를 가진 시위대와 파괴·약탈 가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민영방송 TF1에 따르면 팍시외는 기존 권력이나 정치 질서에 맞서 소요를 선동하거나 이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가리키는 정치적 표현이다. 단순한 폭력 가담자를 넘어 기존 정치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이라는 비난을 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8일 대국민 연설에서 폭력 가담자들을 “극좌 소집단 출신의 팍시외”와 이들에게 합류한 “다수의 범법자”로 규정했다. 다만 정당한 요구를 가진 시위 참가자들과 파괴·약탈 가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ironn108@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