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프로젝트 들어갔다고 출근 요구…위약금만 100만원 넘어
연차는 원하는 시기에…'사업 운영 막대한 지장' 있어야 변경
단순 업무 증가만으론 부족…위약금 배상은 별도로 따져야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 직장인 A씨는 부모님과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3개월 전 연차휴가를 신청했다. 항공편과 숙소가 포함된 패키지 여행 예약까지 마치고 출발일만 기다리던 중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서가 새 프로젝트를 맡게 됐으니 가급적 연차를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출발까지 열흘도 남지 않아 세 사람의 여행 취소 위약금만 200만원 가까이 되는 상황. 여행을 손꼽아 기다려온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출국 전까지 최대한 업무를 마무리하겠다고 했지만, 상사는 웬만하면 여행을 취소했으면 좋겠다는 답을 되풀이했다. A씨는 위약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연차휴가는 일상에 지친 직장인에게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다.
그동안 직장 내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연차휴가 소진율은 79.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여전히 연차 사용을 둘러싼 갈등도 적지 않다. 특히 A씨처럼 회사의 취소 요구로 여행 위약금까지 부담해야 할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우선 회사가 연차휴가 사용 시기를 바꿀 수 있는 상황인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연차휴가는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15일의 유급휴가다. 근속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는 1개월 개근할 때마다 1일씩 연차가 발생한다.
사용 시기는 근로자가 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라 회사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연차휴가를 줘야 한다.
다만 해당 시기에 휴가를 쓰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업주가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일이 바쁘거나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만으로 연차 사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19년 판결에서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를 따지는 기준으로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 ▲사용자의 대체 근로자 확보 여부 ▲다른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신청 여부 등을 제시했다.
이 사건은 가전제품 수리업체에서 일하던 근로자가 징검다리 연휴 사이 이틀간 연차휴가를 신청했으나 회사가 반려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해당 직원이 예정대로 연차를 사용하자 회사는 무단결근으로 보고 정직 24일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직원의 연차 사용을 불허한 회사의 조치를 정당한 시기변경권 행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남은 직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징검다리 연휴는 연초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만큼 업무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면 대체인력 확보 등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짚었다. 회사가 대체인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거나 해당 날짜에 실제 접수 물량이 상당히 많았다는 자료도 없었다.
이처럼 통상적인 경우 회사의 연차 시기변경권은 인정이 까다롭다.
A씨의 경우에도 새 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사실만으로 사측이 연차 취소를 지시하기는 어렵다. 시기변경권이 인정되려면 A씨가 맡은 업무와 휴가 기간의 업무량, 다른 직원이 대신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 3개월 전에 휴가를 승인한 만큼 회사가 업무 공백에 대비할 여지가 있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회사 요구에 따라 여행을 취소하면서 발생한 위약금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연차 사용을 막은 조치가 부당하다고 해서 회사에 위약금 전액을 배상할 책임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부당한 조치로 여행을 취소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과 그 손해의 범위 등을 따져야 한다.
회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연차 사용을 막아 손해가 발생했다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할 수 있다.
다만 곧바로 법적 다툼으로 이어가기보다는 회사에 여행 취소로 발생할 위약금을 설명하고 비용 부담 방안을 협의해보는 것이 좋다. 업무 일정을 조정해 예정대로 휴가를 사용하거나, 불가피하게 취소해야 한다면 회사가 비용을 보전하는 등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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