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장하는 독일, 친러 극우까지 약진…프랑스·폴란드 경계

기사등록 2026/09/20 05:00:00 최종수정 2026/09/20 05:30:24

폴란드 외무, 친러 극우의 독일 군사력 통제 가능성 경고

AfD, EU 탈퇴·대러 제재 해제 주장…옛 영토 문제도 불씨

[뒤셀도르프=AP/뉴시스] 4일(현지 시간) 독일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의사당 앞에서 독일 연방군 신병들이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대식을 하고 있다. 독일은 2011년 징병제를 중단하고 전면적으로 모병제(자원 입대)를 실시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유사시 징병제를 부활하는 내용이 담긴 새 병역제도를 마련했다. 2025.09.05.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독일의 군비 확장이 프랑스와 폴란드 등 주변국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친러시아 성향의 극우 정당이 집권해 독일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쳤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프랑스·폴란드 정치인과 유럽 당국자들을 인용해 독일의 재무장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부상이 주변국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이 인용한 독일의 경제 연구기관인 킬세계경제연구소(Kiel Institute for the World Economy)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군수 조달 계약액은 영국의 3배를 넘었다.

독일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프랑스·영국의 국방비 지출에 기대 안보 혜택을 누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은 경제 규모에 걸맞게 국방비를 늘리라고 압박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은 독일이 본격적인 재무장에 나서는 계기가 됐다.

미국이 유럽 내 군사적 역할을 줄이려는 상황도 주변국의 불안을 더했다. WSJ은 미국이 그동안 이해관계가 다르고 역사적 앙금이 남아 있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고 짚었다.

여기에 독일 극우 정당 AfD의 약진까지 겹쳤다. AfD는 이달 독일 동부 지역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 정당은 유럽연합(EU) 탈퇴와 대러 제재 해제,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 재개를 주장한다. 나치 시대 범죄에 대한 독일의 반성도 '죄책감의 문화'라고 부르며 끝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독일의 군사력 강화를 오랫동안 지지해온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도 경고에 나섰다. 시코르스키 장관은 지난주 독일의 한 신문에 "재무장한 독일이 극우·친러 정당의 손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기억한다"고 말했다.

폴란드에서는 독일에 극우 정부가 들어서면 과거 영토에 대한 권리를 다시 주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부의 광대한 영토를 잃었고, 1990년 통일 당시 해당 영토에 대한 권리를 공식 포기했다.

[브륄=AP/뉴시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오른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7일(현지 시각) 독일 브륄에서 열린 장관급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2026.07.18. *재판매 및 DB 금지
알리체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2023년 현재의 독일 동부를 '중부 독일'이라고 불렀다. 일부 폴란드 정치인들은 이 표현을 독일의 옛 동부 영토에 대한 권리를 우회적으로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티노 크루팔라 AfD 공동대표도 지난해 "러시아가 독일에 위협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폴란드에 대해서는 독일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려는 AfD의 집권 가능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WSJ에 따르면 일부 유럽 당국자들은 재무장한 독일과 러시아가 유럽의 양대 강국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우려했다. 이들은 독일이 러시아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다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도 걱정했다.

WSJ은 과거 독일의 대러 협력 사례도 짚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러시아의 크름반도 병합 이후에도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반대를 외면한 채 독일과 러시아를 직접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추진했다.

독일이 재무장을 추진하면서 유럽 동맹국들과 충분히 협력하지 않는다는 불만도 나왔다. WSJ이 인용한 킬세계경제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무기·장비 등 군수 조달 계약액 가운데 약 3분의 2가 독일 업체에 돌아갔고, 다른 유럽 동맹국 업체에 직접 발주한 몫은 미미했다. 독일은 최근 프랑스·네덜란드와 추진하던 수십억 유로 규모의 공동 사업에서도 빠졌다.

유럽 정책 연구기관 카네기유럽의 림 몸타즈 연구원은 프랑스가 군사·방위산업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독일에 내줄 가능성을 걱정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유럽 차원의 공동 대응이 외부 공격을 억제하는 데 필수적인데도 독일이 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볼고그라드=AP/뉴시스] 9일(현지 시간) 러시아 볼고그라드(옛 스탈린그라드) 지역 인근에서 군사 역사 동호회 회원들이 붉은 군대 복장을 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선 '스탈린그라드 전투'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등 30여 개 도시에서 온 군사(軍史) 동호회 회원들이 함께했다. 2025.02.10.
프랑스 급진좌파 정치인 장뤼크 멜랑숑도 독일이 유럽 최대 규모의 재래식 군대를 건설하려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군비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반론도 나왔다. 카미유 그랑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차장보는 일부 불만이 과장됐다며 독일의 군비 확장은 오랜 국방 투자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동맹국들의 지지를 유지하려는 독일의 노력은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리아나 픽스 유럽 담당 선임연구원은 유럽 차원의 공동 조달과 방위산업 협력, 나토 내 공동 지휘체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픽스 연구원은 EU가 공동으로 돈을 빌려 회원국들의 방위비를 조달하는 방안에 독일이 동의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재정 여력이 부족한 동맹국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사안이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공동 조달과 공동 차입 등 협력 방안을 추진할 정치적 여력이 충분한지도 변수다. WSJ은 외교관과 분석가들을 인용해 메르츠 총리가 주변국의 불안을 달래려 양보할 경우, 오히려 국내 민족주의 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전했다.

볼프강 이싱어 뮌헨안보회의 의장은 독일의 군비 확장이 나토와 유럽에 대한 안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동맹국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싱어 의장은 "독일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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