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엄 내려놓고 중생 품다…한국 불교가 사랑한 '나한'

기사등록 2026/09/19 10:00:00 최종수정 2026/09/19 10:16:23

2004년 도난당한 나한상들, 22년 만에 한자리

초월적 성자·현실적 소망 귀 기울이는 친근한 존재

11월29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 서고사 나한상 특별전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에 전시된 나한상들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불교 전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존재는 엄숙하고 거룩한 부처나 보살이다. 그러나 이들의 좌우에는 각기 다른 가사를 입고 코나 등을 긁거나, 때로는 웃음을 터뜨리는 친근한 상들이 자리한다. 최고의 깨달음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불제자, '나한(羅漢)'이다.

나한은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聖者)다. 그러나 스스로 열반에 드는 것을 미루고 세상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때문에 나한은 불교 존상 가운데서도 성스러움과 세속적인 인간미, 즉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에 전시된 나한상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북 전주 서고사 나한전에 봉안됐던 나한상들도 그렇다. 한 존자는 눈을 내리깔고 참선에 잠겼고, 다른 존자는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 고개를 돌려 미소 짓는가 하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근엄한 부처상이나 보살상과 달리 저마다 다른 표정과 몸짓을 지닌 모습은 평범한 사람을 닮았다.

1695년 조각승 성심 등이 조성한 이 나한상은 2004년 16구 가운데 8구가 도난당했다. 도난당한 나한상들은 2014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4구씩 환수됐다. 이후 서고사와 금산사성보박물관에 나뉘어 보관돼 온 나한상 16구는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을 통해 22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 전시실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만남이 특별한 이유는 도난 문화유산의 귀환에만 있지 않다. 서고사 나한상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세상을 떠나지 않고 중생 곁에 남기를 선택한 나한의 불교적 의미를 보여준다.

나한은 산스크리트어 ‘아라한’(Arhat)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부처의 제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나한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곧바로 열반에 들지 않는다. 불법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땅에 머문다.

스스로의 해탈에 그치지 않고 다른 존재를 위해 세상에 남는다는 점에서 나한의 깨달음은 중생 구제의 실천으로 이어진다. 나한이 초월적인 성자이면서도 사람들의 현실적인 소망에 귀를 기울이는 친근한 존재로 받아들여진 까닭이다.

역사적으로 나한은 십육나한과 십팔나한, 오백나한 등의 무리로 신앙화됐다. 한국에서는 특히 십육나한과 오백나한을 선호했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왕실과 집권층이 주도하는 대규모 불사가 활발하게 이뤄져 거대한 규모의 오백나한상이 주로 조성됐다.

반면 조선 후기에는 불사 주체가 사찰과 일반 민간으로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규모를 갖추기 수월한 십육나한상이 압도적으로 많이 제작됐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에 전시된 나한상들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나한상에는 이처럼 성(聖)과 속(俗)이 공존한다. 수행자 모습과 깨달음의 경지를 드러내면서도 주름진 얼굴과 장난기 어린 미소, 자유로운 자세 등 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한다. 한국 나한상은 중국이나 일본의 사례와 비교해 이러한 세속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전에는 나한의 성격과 역할이 기록돼 있지만 각각의 외형이 엄격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장인들은 전해 내려온 도상을 따르거나 중국에서 유입된 새로운 도상을 받아들이는 한편,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표정과 자세, 지물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에 따라 나한상은 종교미술이면서도 제작자의 개성과 역량이 드러나는 조형예술로 발전했다.

서고사 나한상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제3존자 가낙가발리타사는 번뇌와 마음의 티끌을 털어내는 불교 용구인 불자를 들고 고요한 선정에 든 모습이다. 제14존자 벌나파사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다른 다리를 내린 유희좌를 취한 채 아래를 내려다본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에 전시된 나한상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다른 나한의 발아래에는 익살스러운 모습의 호랑이가 자리한다. 호랑이와 새, 코끼리 등 동물은 나한이 신통력으로 상서로운 동물을 굴복시켰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나한신앙의 성격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조선 전기 왕실에서는 국왕과 왕세자, 왕비와 후궁 등이 병들거나 위중할 때 나한의 위신력에 기대어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나한신앙은 민간으로 확산해 현세의 복덕과 가족의 안녕,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나한상을 바라보는 관상(觀像)도 일반적인 미술 감상과는 다르다. 불전에 봉안된 존상의 얼굴과 몸짓을 바라보는 동안 신도들은 마음속에 자신의 소망을 그리고 그 염원이 이뤄지기를 기도했다. 상을 보는 행위는 나한의 수행과 자비를 되새기며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종교적 실천이었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에 전시된 복장물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고사 나한상 내부에서 나온 복장물은 이러한 신앙의 깊이를 보여준다. 불상 내부에 물목을 넣는 복장 의식은 조형물에 영적 생명력을 불어넣고 발원자의 바람을 오래 간직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불상의 몸 안은 인간의 간절한 소망과 불법의 가르침이 머무는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서고사 나한상에서는 발원문과 경전, 다라니, 후령통 등이 확인됐다. 발원문을 통해 나한상이 숙종 21년인 1695년 5월23일 조각승 성심·체원·민성·진열 등에 의해 조성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제14존자 벌나파사상에서 나온 후령통은 백자로 제작된 유일한 사례다. 후령통 안에서는 팔엽연화와 오색실로 감싼 오보병, 오방경, 오곡 등이 발견돼 17세기 불복장 의식의 면모를 전한다.

신광희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나한은 본질적으로 성과 속이 공존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의 보편적인 경향이지만 한국은 특히 나한의 인간적인 면모가 적극적으로 표출돼 있다"며 "한국 나한상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존하는 수량이 적은 편이지만 한국만의 특성을 확보하고 있어 동아시아적 범주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서고사 목조나한좌상을 비롯해 44건 126점을 선보이는 특별전은 오는 11월29일까지 국립전주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뉴시스] 지난 16일 개막한 국립전주박물관 특별전 '도량으로의 귀환, 전주 서고사 나한' 전시실에 전시된 촉각 체험물 (사진=국립전주박물관 제공) 2026.09.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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