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175개→명절 최대 270개…50% 가량 늘어나
과일·김치 등 무거운 선물 들고 언덕·계단 오르내려
"마디마디 다 쑤셔…체감 노동강도는 두 배 정도"
추석 택배 물량 1930만개 전망…평시보다 4.9%↑
[서울=뉴시스]신유림 기자 = "솔직히 10초라도 쉬고 싶죠. 그런데 쉴 수가 없어요. 오늘 들어온 물량은 오늘 다 끝내야 하니까요. 평소보다 물량이 50%는 늘었는데, 체감하는 노동 강도는 두 배예요. 마디마디가 다 쑤셔요."
추석을 일주일 앞둔 지난 18일 오전 9시23분께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한 아파트 단지. 16년째 택배기사로 일하는 정하석(54)씨가 1t 탑차의 문을 열자 크고 작은 상자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다. 사과와 배, 밤, 김치 등 명절 선물이 마치 테트리스처럼 빈 공간 없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날 정 기사가 배달해야 할 택배는 모두 230여개. 평소 하루 평균 175개가량을 배송하지만 추석 특별소통기간에 들어서면서 물량이 50%가량 늘었다. 앞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하루 270개를 날랐다. 그는 "오늘은 그래도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정 기사는 탑차 안을 훑어보더니 상자 7개를 연달아 꺼냈다. 상자를 들어 올릴 때마다 "영차" "윽" 하는 기합이 새어 나왔다. 명절에는 과일과 농수산물, 고기 등 무거운 선물이 몰리면서 평소 5㎏ 안팎이던 택배도 10㎏까지 훌쩍 뛴다고 했다.
"물건이 너무 많아서 차 안에 넣는 것부터 일이에요. 기사들끼리 '오늘 이거 다 실을 수 있냐'고 할 정도예요. 잘 쌓는 것도 기술이죠."
정 기사는 상자를 층별로 나눠 손수레에 올린 뒤 곧장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올라가는 몇 초 동안에도 바코드를 찍고 고객에게 도착 안내 문자를 보냈다. 문이 열리자 빠른 걸음으로 상자를 내려놓고 다시 돌아왔다. 한 집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십 초. 오전 10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얼굴과 목에는 이미 땀이 맺혀 있었다.
휴대전화도 쉴 새 없이 울렸다.
"네, 택배인데요. 여기 호수가 안 적혀 있어서요."
수화기 너머에서 "201호요"라는 답이 돌아오자 정 기사는 곧바로 다음 배송지로 향했다. 그는 "이렇게 바로 전화를 받아주시면 정말 감사하다"며 "하루 종일 전화를 해도 안 받는 분도 있고 이틀 동안 연락한 적도 있다"고 했다.
명절에는 쏟아지는 물량만 감당하면 되는 게 아니다. 선물을 보내면서 주소를 잘못 적거나, 받는 사람이 이미 이사했는데도 예전 주소로 보내는 경우가 잦다. 자신이 주문한 물건이 아니다 보니 "누가 보낸 것이냐" "어떤 물건이냐"는 문의도 많아진다.
정 기사는 "주소가 잘못돼 있으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찾아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일일이 연락해야 한다"며 "제대로 된 주소를 확인해 다시 배송해야 하니 사실상 두 번 일하는 셈"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정 기사가 이날 첫 배송지인 아파트 단지에서 약 1시간 만에 배송한 택배는 모두 25개. 오전 10시43분께 아파트 배송을 마친 그는 탑차를 몰고 홍은1동의 가파른 언덕길로 향했다.
오래된 연립주택이 몰려 있는 이곳은 가파른 비탈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 많아 택배기사들이 기피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6㎏짜리 밤과 5㎏짜리 사과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뒤이어 9㎏짜리 김치 상자를 들고 다시 계단을 오르내렸다.
정 기사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된다. 오전 3시40분께 알람을 듣고 일어나 4시께 우체국에 도착한다. 대형 차량에 실려 온 택배 가운데 자신의 구역 물건을 찾아 분류하는 데만 평소 2시간가량이 걸린다. 물건들을 탑차에 빈틈없이 싣고 나서야 배송을 시작할 수 있다. 명절에는 물량이 늘면서 출발 시간도 덩달아 늦어진다.
배송을 시작하면 따로 숨을 돌릴 틈도 없다. 다음 배송지까지 차로 이동하는 시간은 고작 1~2분. 도착하자마자 다시 차에서 내려 상자를 꺼내 들고 계단을 올랐다. 정 기사는 "솔직히 10초라도 쉬고 싶지만 정해진 양이 있으니 쉴 수가 없다"며 "쉼터가 있어도 이동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 퇴근을 늦추느니 빨리 처리하는 게 낫다"고 했다.
오후 1시35분께 오전 작업이 끝났다. 약 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인 정 기사가 배달한 택배는 95개. 하지만 이날 배달해야 할 230여개의 택배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늘은 그래도 아파트가 많아서 나은 편이에요. 언덕 꼭대기에 무거운 택배가 몰려 있으면 정말 지옥이에요. 전쟁이죠."
추석을 앞두고 택배 물량은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다만 명절 선물 수요가 몰리는 일부 배송 구역에서는 개인 기사들이 체감하는 물량 증가폭이 전국 평균보다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4주간 '추석 명절 택배 특별관리기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 하루 평균 택배 물량은 약 1930만 상자로, 지난 7월 하루 평균 1840만 상자보다 4.9%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루에 평소보다 약 90만개의 택배가 더 쏟아지는 셈이다.
고된 하루에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있다. 16년째 같은 동네를 돌다 보니 길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주민들도 적지 않다. 이날도 한 환경미화원은 정 기사를 발견하자 "진짜 부지런하고 늘 열심히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배송이 대부분이지만 정 기사는 고령의 주민들에게는 직접 물건을 건네기도 한다.
정 기사는 "그럴 때 '너무 감사하다', '힘들지 않느냐'면서 시원한 물 한 잔을 주시는 분들이 있다"며 "택배기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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