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니 카드빚 2400만원 "해킹 당했다"…갚아야 할까?[법대로]

기사등록 2026/09/19 09:00:00 최종수정 2026/09/19 09:26:24

명의 선불폰 개통 후 카드 3장 발급·사용

피해자 "해킹으로 면허증 유출…명의도용"

法 “적절한 절차 거쳐…카드대금 부담해야”

[서울=뉴시스]법원 로고.(사진=뉴시스DB)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다솜 기자 =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킹범이 자신의 명의로 선불폰과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약 2400만원을 사용했다면 카드대금은 누가 갚아야 할까.

사건은 지난 2023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달 23일 A씨는 자신의 명의로 선불폰 가입계약이 체결됐고 이튿날 이 휴대전화를 이용해 카드사 3곳과 각각 신용카드 이용계약이 체결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발급된 카드들은 같은 달 24일부터 25일까지 사용됐다. 이에 따라 B사 963만6800원, C사 142만6400원, D사 1286만4400원 등 총 2392만7600원의 카드대금이 발생했다.
     
A씨는 자신이 카드를 발급 받거나 사용한 적이 없다며 소송을 냈다. 당시 성명불상의 해킹범이 악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도록 유도해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던 운전면허증 사본을 빼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 해킹범이 A씨의 거주지도 아닌 천안에서 A씨 명의로 선불폰을 개통하고, 이를 이용해 카드까지 발급받아 사용했다는 것이다.

A씨 측은 신용카드 이용계약 자체가 해킹범의 명의도용으로 체결됐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고의나 중대한 과실도 없었던 만큼 카드사들에 약 2400만원을 갚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드사들은 카드 발급 당시 정상적인 본인확인 절차를 거쳤다고 맞섰다.

카드사들은 A씨의 운전면허증 사본을 제출받거나 면허번호를 입력해 진위를 확인했다. 여기에 A씨 명의로 이미 개설돼 있던 은행계좌를 확인하고 A씨 명의 선불폰을 통한 휴대전화 인증도 진행했다.

쟁점은 카드사들이 이 같은 본인확인 절차를 거친 상황에서 실제 명의자인 A씨가 계약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였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지은희 판사는 A씨가 B·C·D 카드사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지난달 11일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A씨가 부담하도록 했다.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제7조 제2항 제2호는 전자문서 수신자가 해당 문서가 작성자나 대리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고 행위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금융사 등이 당시 기술 수준에 부합하는 적절한 본인확인 절차를 이행했는지, 관련 법령에 따른 본인확인이나 피해 방지 노력을 했는지 등 해당 거래의 내용과 성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카드사들이 필요한 본인확인 절차를 적절하게 이행했다고 판단했다.

지 판사는 카드사들이 ▲운전면허증 사본을 통한 실명확인증표 확인 ▲A씨 명의의 기존 은행계좌 활용 ▲A씨 명의 휴대전화번호를 통한 인증 절차 등을 거쳤다고 짚었다.

이는 금융권의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에서 정한 필수 절차 가운데 두 가지와 보완 절차 한 가지를 중첩해 적용한 것이다. A씨 의사에 따른 카드 신청이라고 판단하기에 적절한 본인확인 절차였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A씨는 운전면허증 사본이 해킹으로 유출됐고 휴대전화 역시 해킹범이 임의로 개통한 선불폰이었던 만큼 이 같은 인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우선 카드사에 제출된 운전면허증 사본이 A씨 의사와 무관하게 해킹범에게 유출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카드사에 제출된 신분증 사본 자체도 실제 A씨의 것으로 확인됐다고 봤다.

선불폰 역시 A씨 명의로 가입돼 있어 카드사들이 해당 가입 계약이 실제 A씨 의사에 따라 체결됐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카드 발급 과정에서 확인한 은행계좌 역시 A씨가 실제 개설해 사용하던 계좌였다는 점도 고려됐다. 특히 카드사들이 이들 인증 방식을 하나만 사용한 게 아니라 여러 방식을 중첩해 적용한 점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지 판사는 "피고들은 신용카드 이용계약 체결 과정에서 원고에 대한 본인확인 절차를 적절하게 이행했다"며 "신용카드 신청이 원고 내지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해 송신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전자문서법에 따라 카드 이용계약의 법률효과가 A씨에게 유효하게 귀속된다며 A씨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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