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끊고 싶어요" 1명이 오자 10명이 따라왔다…학교에 상담부스 차린 경찰

기사등록 2026/09/19 08:00:00 최종수정 2026/09/19 08:19:10

신고 접수 서울 지역 최다 종암서 채한서 경장

3개월간 44건 접수…서울 일선 경찰서 중 최다

점심시간 학생들 오가는 길목에 상담부스 차려

금품갈취 면담 중 도박 정황 포착…치유 연계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종암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채한서 경장이 지난 16일 서울 중구 뉴시스 본사에서 뉴시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6.09.16. kmn@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저 사실 도박했는데 이번 기회에 끊고 싶습니다."

서울 성북구 한 남자 중학교 점심시간. 교내에 마련된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상담 부스를 찾은 한 학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먼저 신고한 학생을 지켜보던 친구들도 하나둘 마음을 바꿨다. 결국 이날 현장에서만 학생 10명가량이 잇따라 자진신고했다.

이처럼 학생들의 신고를 이끌어낸 건 서울 종암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 채한서(33) 경장이다.

채 경장은 지난 5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약 3개월간 운영된 청소년 사이버도박 자진신고 기간 동안 모두 44건의 신고를 접수했다. 서울 일선 경찰서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채 경장은 학생들이 경찰서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학교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학생들이 오가는 길목에 상담 부스를 차리고 게임판과 홍보물, 선물 등을 준비했다.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자진신고 제도를 설명하고, 도박이 의심되는 학생들에게는 별도로 상담을 권했다.

채 경장은 당시 상황을 두고 "한 명이 용기 내서 자진신고를 하니까 같이 도박했던 친구들도 '나도 해야겠다'며 신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처음부터 학생들이 선뜻 손을 든 것은 아니었다. 채 경장이 만난 자진신고 학생 상당수는 경찰에 도박 사실을 털어놓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채 경장은 "학교에 가서 처음부터 '자진신고해'라고 하면 학생들이 선뜻 응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너희를 처벌하는 경찰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경찰이고, 자진신고하면 선도의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전달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서울 종암경찰서. (사진=종암경찰서 제공) 2025.09.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신고가 많이 나올 가능성이 있는 학교를 먼저 찾아가는 전략도 썼다. 종암서 관할 초·중·고교는 모두 21곳이다. 종암서는 과거 도박으로 선도 조치를 받은 이력과 112·117 신고 현황 등을 토대로 도박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교를 추렸다.

관련 학생들이 많이 재학 중인 학교에서는 학교장과 간담회를 열고 자체 제작한 교육자료를 활용해 전 학년 대상 특별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중·고교 점심시간에는 학생들의 이동 동선에 맞춰 캠페인과 상담소를 운영했다.

평소 학생들과 쌓아온 관계도 자진신고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

채 경장은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조사하기보다 친해지려고 노력한다"며 "안부 문자를 보내고 학교에서 자주 얼굴을 보다 보면 친밀감이 쌓이고, 이후 도박과 관련한 고민도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금품갈취 신고로 만난 중학생들을 면담하다가 사이버도박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생들이 도박 자금과 빚을 마련하려 서로 돈을 요구하면서 금품갈취로까지 번진 것이다.

해당 학생은 처음에는 도박 사실을 부인했지만, 채 경장이 지속적으로 면담하며 유대관계를 형성한 끝에 도박 사실을 털어놨고, 사건은 수사팀에 넘겨졌다.

채 경장은 청소년 사이에서 도박이 범죄라기보다 또래 놀이처럼 받아들여지는 점을 가장 우려했다. 친구가 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시작하거나, 함께 베팅해 결과를 비교하며 놀이처럼 즐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도박 경험 청소년에 비해 자진신고에 나선 학생은 여전히 극히 일부라고 지적했다.

채 경장은 "현재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통계상 도박 청소년이 15만7000명인데 자진신고는 1777명으로, 실제 도박 청소년의 1% 정도만 신고한 셈"이라며 "청소년 도박과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박 자진신고 제도뿐 아니라 청소년 도박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정책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청소년들이 도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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