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후 감독 “제주비엔날레 멈출 수 없다…제주·세계 잇는 문화 소통 채널”[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6/09/17 18:05:55 최종수정 2026/09/17 19:25:31

존폐 논란 딛고 10년…올해 시설비 포함 총예산 20억원

제5회 제주비엔날레, 외부 문화 제주식으로 바꾼 ‘변용’

전쟁·이주·기후위기로 확장…제주정체성 드러내 주목

“미술관서 10년간 인큐베이팅…이제 비엔날레 전담 조직 필요”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 이종후 예술감독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제주 작가 강요배의 신작 ‘도새기통시’를 설명하고 있다.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제 멈출 수 없습니다.”

존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제주비엔날레를 두고 이종후 제5회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은 단호했다.

17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만난 이 감독에게 제주비엔날레가 사라진다면 한국 미술계가 무엇을 잃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제주와 세계를 연결하는 문화적 소통 채널을 먼저 꼽았다.

“제주가 가진 문화적인 다양성과 독특한 지점들을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채널입니다. 제주에서는 유일하죠. 그래서 제주비엔날레는 계속 지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비엔날레를 ‘태풍’에 빗댔다.

“제주도는 태풍이 안 와도 문제예요. 한번 휘저어줘야 바다 생태계가 좋아집니다. 미술 생태계도 마찬가지예요.”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은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지만 미술 생태계에는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규모 현대미술 전시를 보려면 비행기를 타고 섬 밖으로 나가야 한다. 외부 작가와 큐레이터를 만날 기회도 제한적이다.

“비엔날레는 담론도 중요하지만 작가들끼리 교류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주 작가들이 이 기회가 아니면 외국 작가나 도외 작가들과 어떻게 만나겠어요.”

특히 어린 세대의 경험을 강조했다.

“제주도민들은 비엔날레를 보려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합니다. 광주에 ‘비엔날레 키즈’가 있듯 어릴 때부터 현대미술을 경험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감각이 생깁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립미술관에 오석훈의 ‘한라영곡(漢拏靈谷)’(2026)이 설치돼 있다. 제주 한라산 영실기암을 광목천 위에 먹으로 그려낸 대형 작품으로, 제주 사람들이 한라산을 유람하며 남긴 한시를 함께 담았다. 2026.09.17.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주를 깊이 파고들자 세계가 보였다
올해 제5회 비엔날레는 외국 작가 숫자나 화려한 국제성을 앞세우기보다 제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유배와 돌, 굿, 신화, 동자석, 통시 등 제주의 역사와 생활문화가 전시 곳곳에 등장한다.

개최 시기도 바꿨다. 기존 11월 개막에서 올해는 8월25일로 앞당겼다. 9월  '키아프리즈' 미술주간과 광주·부산비엔날레 등 주요 미술행사가 이어지는 시기와 보조를 맞추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제주 관광 성수기를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다.

이 감독은 제주비엔날레가 섬 안의 행사에 머물지 않고 국내외 미술계와 접점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한 번도 제주 안에서 제주를 깊이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문화적 변방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우리의 것을 놓치고 자꾸 외부로 시선을 돌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제주 안으로 들어갈수록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 드러났다고 했다.

“우리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인류 보편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유배’, 제주돌문화공원의 ‘돌문화’, 원도심의 ‘신화’를 관통하는 것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제주가 가진 문화적 변형에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이종후 2026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 17일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전시 주제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과 출품작을 설명하고 있다.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15년 전 고향 제주로…“여기 오면 왜 단순해질까”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이 감독은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뒤 15년 전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작가였던 그는 제주에서 본격적으로 전시 기획에 뛰어들었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제주시민회관에서 미술행사를 조직했고 아트페스타인제주, 4·3미술제, 제주미술제 등을 거쳐 제주도립미술관으로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제주 미술을 다시 공부했다. 강요배를 비롯해 4·3을 끈질기게 작업해온 제주 작가들을 만났다. 전쟁과 개인사 등으로 섬에 들어와 정착한 외지 작가들의 작업이 제주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들여다봤다.

“여기 오면 왜 이렇게 단순해지는지, 복잡했던 것들이 조형적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변하더라고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변용’은 그렇게 그가 15년 동안 제주에서 관찰해온 변화에서 출발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은 제주라는 섬을 통과하며 다른 것이 됐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 유배 시절 독자적인 서체와 예술세계를 심화했고, 외부에서 전해진 민요도 제주 사람들의 삶 속에서 제주 가락으로 변했다.

“섬의 숙명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주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을 그대로 흡수하지 않았습니다. 연결하고 융합하면서 전혀 색다른 것으로 변용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명사적인 변용이라고 봅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제주도립미술관 입구에ㅈ설치된 소원 품은 제주 푸른콩이 수북히 쌓여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외부 문화를 삼켜 ‘제주식’으로 바꿨다
이번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단어는 ‘변용’이다.

이 감독은 영어 제목에서도 단순한 변형을 뜻하는 ‘transformation’ 대신 ‘metamorphosis’를 택했다. 형태의 변화만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맥락까지 달라지는 변용을 뜻한다.

그는 제주라는 섬 자체가 오랜 시간 이런 변용을 거듭해왔다고 봤다.

“섬의 숙명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주는 외부에서 들어온 것을 그대로 흡수하지 않았습니다. 연결하고 융합하면서 전혀 색다른 것으로 변용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명사적인 변용이라고 봅니다.”

동자석과 통시 등 제주 고유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에서도 이런 변용의 흔적을 읽었다.

전시는 여기서 동시대 문제로 나아간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추사의 견지에서: 유배’는 유배의 역사를 오늘날 전쟁과 강제이주 문제로 확장한다.

제주돌문화공원에서는 돌을 통해 인간과 문명, 자연의 관계를 묻는다. 원도심에서는 제주 신화가 품은 공동체와 포용의 정신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 공존의 문제를 살핀다.

이 감독은 비엔날레 준비 기간 벌어진 중동 전쟁을 예로 들었다. 현지 작가를 초청하려 했지만 이동이 어려워졌고 작품 운송에도 차질을 겪었다.

과거 제주의 유배와 이주가 박제된 역사에 머물지 않고 오늘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감한 셈이다.

“지금도 정치적인 문제로 인한 이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주라는 조건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전 인류적인 문제와 연결됩니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서순실 심방 ‘다시 살으라’…제주비엔날레에 펼쳐진 굿판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송필의 ‘실크로드, 전설(Version 2)’(2022)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미술관서 10년 인큐베이팅…이제 밖으로 나갈 단계”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올해 제주비엔날레 총예산은 시설비를 포함해 20억원이다. 이 감독은 국제 운송비와 인건비, 아티스트피 등이 크게 오른 상황을 고려하면 넉넉한 규모가 아니라고 했다. 특히 일회성 예산 확보보다 안정적으로 비엔날레를 준비할 조직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주비엔날레는 제주도립미술관이 운영한다. 미술관이 전시와 연구, 소장품 관리 등 고유 업무를 수행하면서 장기간의 국제미술행사까지 떠안는 구조다.

제주도립미술관장인 이 감독이 지난 4회에 이어 5회 비엔날레까지 예술감독을 맡은 것도 이런 운영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미술관에서 비엔날레를 한다는 리스크는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전시와 연구라는 고유 업무가 있으니까요.”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관람객이 노진아의 AI 기반 인터랙티브 작품 ‘진화적 키메라-가이아’(2024)에 말을 걸고 있다.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없애버리라”던 비엔날레…관람객 10만명 넘겨
제주비엔날레가 순탄하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 감독에 따르면 제4회 비엔날레를 준비할 당시 예산이 크게 줄면서 존폐 문제까지 거론됐다. 그가 제주도립미술관에 부임했을 당시에는 개최를 앞두고도 주제와 조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의회에 갔더니 ‘없애버리세요"라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비엔날레를 없앤 관장이 되잖아요. 두고두고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것 같았습니다.”

존폐 논란 과정에서는 도민 설문조사도 실시됐다. 이 감독은 “비엔날레를 관람했다는 응답은 3%에 불과했지만 폐지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60%였다”고 전했다.

결국 그는 직접 예술감독을 맡았다. 별도의 예술감독과 사무국을 충분히 꾸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엔날레를 다시 짰다.

결과는 관람객으로 나타났다. 지난 제4회 비엔날레 관람객은 10만명을 넘어섰다.

예산은 10년 전 첫 비엔날레 당시 16억원 규모로 출발했지만 이후 계속 줄었다. 제4회에는 12억원까지 내려갔다. 올해는 시설비를 제외한 행사비가 다시 16억원 규모로 늘었다. 시설비를 포함한 총예산은 20억원이다.

10년 만에 행사비가 출발 당시 수준으로 돌아온 셈이다. 그 사이 인건비와 아티스트피, 국제 운송비 등은 크게 올랐다.

그는 웃으며 숫자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수치라는 게 참 무서운 평가이긴 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감독이 더 근본적인 문제로 꼽은 것은 조직과 인력이다.

“미술관에서 비엔날레를 한다는 리스크는 있습니다. 미술관에는 전시와 연구라는 고유 업무가 있으니까요.”

이 감독은 지난 10년을 제주도립미술관이 제주비엔날레를 키워온 ‘인큐베이팅 기간’으로 규정했다.

“10년 동안 미술관에서 충분히 인큐베이팅하고 실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할 단계입니다.”

대안으로는 전담 조직을 제시했다. 광주비엔날레처럼 독립재단을 두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면 제주문화예술재단 등 기존 조직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행정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재단에서 운영하면 훨씬 유연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가 비엔날레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전담 조직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해야 합니다.”

다만 조직 개편에는 제주 예술계와 이해관계자들의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제주비엔날레는 올해로 5회째다. 존폐와 예산, 운영 주체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10년을 이어왔다.

이번 비엔날레가 내건 주제는 ‘변용의 기술’이다. 이 감독의 말을 따라가면 이제 변용이 필요한 대상은 작품만이 아니다. 제주비엔날레 자체도 다음 10년을 위한 변용의 기로에 섰다.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 17일 제5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에서 관람객이 룸톤의 VR 설치작품 ‘에코스피어(ECHOSPHERE)’(2023)를 체험하고 있다.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박현주 미술전문기자]제주도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26 제주비엔날레에 선보인 피에르 파브르(Pier FABRE)의 ‘Jeju lava’(2026). 2026.09.17. hyun@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한편 제5회 제주비엔날레 ‘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변용의 기술(The Art of Metamorphosis)’은 지난 8월25일 개막해 오는 11월15일까지 83일간 열린다. 20개국 69팀의 국내외 작가가 참여한다.

전시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갤러리, 제주아트플랫폼, 예술공간 이아, 갤러리 레미콘 등 제주 5개 전시공간에서 펼쳐진다. 제주도립미술관의 ‘추사의 견지에서: 유배’, 제주돌문화공원의 ‘검으나 돌은 구르고 굴러: 돌문화’, 원도심의 ‘큰 할망의 배꼽: 신화’ 등 세 축으로 제주에 축적된 역사와 삶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풀어낸다.


◎공감언론 뉴시스 hyu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