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임신중지약, 제도권으로…초기 2년 원내 처방 '문턱' 우려

기사등록 2026/09/17 06:00:00 최종수정 2026/09/17 07:29:50

정부, 임신중지약 도입 추진…초기 2년 의료기관서 처방·조제

여성계 "도입 환영" 목소리…지역·청소년 접근성 제약 우려도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6.09.16.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이지우 인턴기자 = 정부가 먹는 임신중지약을 제도권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성계와 의료계 일각에선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장기간 미뤄졌던 약물적 임신중지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정부가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 안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조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지역별 의료 격차나 청소년·저소득층 등의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7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16일)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정식 도입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그간 제도권 밖에서 불법 유통되던 임신중지 약물을 국가 의료체계 안으로 들여와 여성 안전과 건강권 저해 문제를 해소한다는 방침이다.

식약처는 현재 수입 품목허가가 신청된 임신중지 의약품에 대한 허가·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약품이 2024년 품목허가를 신청한 '미프지미소정'으로,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신청됐다.

복지부는 임신중지약을 단계적으로 의료현장에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도입 초기 2년 동안에는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이후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살펴 적용 범위를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7년 만에 제도권 도입 본격화…"오래 기다려왔다"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인공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6.09.16. chocrystal@newsis.com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국내에서는 먹는 임신중지 의약품이 품목허가를 받지 못해 정식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성평등부는 이 같은 제도 공백으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약물이 불법 유통되고,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수술과 약물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돼 왔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임신중지약이 정식 허가되면 의료기관에서 처방을 받은 뒤 약물을 이용해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제도적 경로가 마련될 전망이다.

성·재생산권 및 보건의료 단체들은 우선 임신중지약의 국내 정식 도입 자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은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의약품정책부장은 "유산유도제가 도입된다는 사실 자체는 반가운 소식"이라며 "굉장히 오래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임신중지약 도입으로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20대 여성 이모씨는 "여성으로 살면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다면 내 인생이 끝나는 것 같다는 걱정을 어느 정도 안고 산다"며 "약이 도입된다면 적어도 그렇지만은 않게 해주는 보루가 생긴 느낌이라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이모씨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여성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약을 처방받은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도입 초기 2년 '원내 처방·조제'…"지역 따라 접근성 격차"

현장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도입 초기 2년간의 원내 처방·조제 원칙이 또 다른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산부인과가 지역별로 고르게 분포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기관 방문을 반드시 거쳐 약을 받아야 한다면 거주 지역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예훈 색다른의원 원장은 "전국 산부인과 병원의 분포가 매우 불균형한 상황에서 접근성 제약은 임신중지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시기를 늦출 가능성이 크다"며 "지금도 지역에서 오직 임신중지를 위해 서울까지 이동하는 사례들이 많다"고 말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도 "서울을 제외하면 산부인과 의료기관도 적고 그중 임신중지를 제공하는 병원은 굉장히 적다"고 짚었다.

이어 "병원 운영시간에 맞춰서 가려면 반차를 내거나 퇴근을 빨리 하고 병원에 방문해야 되는데, 그 시간에 병원에 방문해서 여유 있게 진료를 하고 약 처방까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대부분 없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저소득층엔 더 높은 문턱…비용도 변수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지난 2022년 8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6.09.17. 20hwan@newsis.com

병원 이용 자체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이나 저소득층 등에게 원내 처방·조제 원칙이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 학교 밖 청소년이나 난민, 장애인 등을 접한다는 최 원장은 "청소년의 경우 부모 동의 없이 안 된다는 이유로 여러 병원에서 거절당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기관을 찾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수 있고, 학교생활 때문에 평일 진료시간을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나 대표 역시 "청소년이나 산부인과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 자녀 양육으로 돌봄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어 병원 대기가 길어지면 개인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생기는 분들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비용도 향후 접근성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임신중지약의 건강보험 적용 여부나 실제 환자가 부담해야 할 가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서 부장은 "(비급여로 결정될 경우) 저소득층의 이용이 굉장히 어려워질 수 있다"며 "최소한 건강보험 적용은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왜 2년인가"…이후 규제 완화 가능성에도 의문

정부가 도입 초기 2년 동안 의료기관 내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정한 데 대해서도 그 기간과 방식의 근거가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초기 2년간 약물을 제한적으로 운용하면서 부작용과 안전성 등을 확인한 뒤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넓힌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용 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처방 사례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경우, 국내 의료현장의 경험과 데이터가 축적되기 어려워 오히려 향후 접근성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 대표는 "2년 후에 확대하려면 의료인들에게 현장 경험이 있어야 그걸 근거로 확대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규제를 많이 두면 데이터가 쌓이기 어렵다"며 "접근성 제약을 줄여 사용하면서 필요한 보장 조치들을 확대해 나가는 방향이 더 좋다"고 말했다.

서 부장은 해외에서 이미 임신중지약과 관련한 임상 경험과 자료가 상당 기간 축적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임신중지약이 현재 100여개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2년간의 제한을 두는 것은 불필요한 절차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2년 후 재평가를 거쳐 실제 전환이 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도 지난 15일 성명을 내고 "의약품의 원내조제와 원내투약 방식을 철회하라"며 "이미 축적된 국제적 근거와 사용 경험에 기반해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이용 체계를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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