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밤공기, 서울의 주파수와 맞닿다…日 밴드 에메랄드 '사람 냄새'

기사등록 2026/09/13 05:00:00

잔다리 페스타로 첫 내한…韓 밴드 팔칠댄스와 협업 무대

"도시인 고독과 온기 어루만지는 노랫말…15년 버틴 힘은 신뢰"

[서울=뉴시스] 에메랄드.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살아있는 인간이 직접 연주한다는 감각, 그리고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그 곁에 머무는 온기. 이 두 가지가 지난 15년간 저희를 지탱해 온 유일한 중심축입니다."

디지털 시퀀싱의 완벽한 박자가 음악의 틈을 지워버리는 시대에, 일본 도쿄 기반의 6인조 밴드 '에메랄드(Emerald)'는 여전히 인간의 불완전한 호흡을 믿는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스페이스 브릭에서 열린 인디 음악 축제 '2026 잔다리 페스타'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세련된 어반 사운드의 외피 아래 숨겨둔 소박하고도 단단한 음악적 윤리를 털어놨다.

2011년 결성된 에메랄드는 전설적인 밴드 '피쉬만즈(Fishmans)'의 궤적을 덧그리는 커버 작업으로 첫걸음을 뗐다. 이후 15년 동안 재즈와 네오솔, AOR(Adult Oriented Rock)의 문법을 일본어 특유의 정서로 치환하며 독자적인 J-팝의 결을 벼려왔다. 도쿄 에비스의 블루노트 플레이스(BLUE NOTE PLACE) 기획 공연을 연이어 매진시키고, 글로벌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Spotify) 누적 스트리밍 960만 회 중 해외 리스너 비중 38%를 기록하는 등 이들의 음악은 이미 로컬의 경계를 지웠다.

이번 첫 방한에서 역시 '잔다리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성사된 한국 밴드 '팔칠댄스(87dance)'와의 협업곡 '서머 매직(Summer Magic)'을 라이브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첫 해외 공연인 이날 무대에서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그루브가 돋보이는 '4-251'을 시작으로 '트러스트 미(TRUST ME)', 대표곡 '라쿠텐(楽園·Rakuten)', '나이트 글로(Night Glow)' 등을 들려줬다.

에메랄드의 음악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인공미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공연 직전 만난 팀의 매니퓰레이터 켄지는 밴드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근간으로 '연주의 생체성'과 '가사의 태도'를 나란히 놓았다.

"저희가 지금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점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살아있는 인간이 직접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밴드이기 때문에 언제나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합니다. 그날의 호흡에 따라 박자가 조금씩 어긋날 때도 있고, 반대로 딱 맞아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매일 다른 연주가 나오는 가운데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루브를 만들어 나간다는 감각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습니다."

사운드가 인간의 체온을 담보한다면, 보컬 나카노 요스케의 노랫말은 거대 도시의 소외를 응시하되 방치하지 않는다. 켄지는 "그가 표현하는 노랫말은 사람들의 삶에 매우 가까이 닿아 있어요. 도쿄나 서울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외로움과 슬픔,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기쁨이나 따뜻한 온기 같은 감정들을 그가 섬세하게 표현해 낸다"며 "이 두 가지가 현재 에메랄드를 지탱하는 가장 중심적인 축"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에메랄드.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구의 블랙 뮤직과 AOR을 토양 삼아 모국어로 노래하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국경 밖 청자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낯설고도 친숙한' 환대를 건넨다. "저희는 일본 밴드이지만 재즈, 네오솔, AOR 등 해외에 뿌리를 둔 음악을 깊이 사랑하고 영향을 받았죠. 이러한 음악적 어법을 베이스에 두고 일본어로 노래하고 있어요. 해외 리스너 분들에게는 이미 친숙한 장르적 기반이 마련돼 있기에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고, 거기에 얹히는 일본어 가사가 어우러지면서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특별한 음악적 경험으로 가닿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켄지)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유 중 하나도 이 특별한 경험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다른 멤버들 또한 "라이브를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이 어떤 반응으로 함께 열광해 주실지, 저희 음악이 어떻게 가닿을지 직접 부딪쳐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잔다리 페스타가 뜻깊은 첫걸음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보컬 나카노 요스케는 언어 이전의 파동이 가닿는 순간의 힘을 짚었다. "저 역시 일본 라이브 하우스에 내한하는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닌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음악이 지닌 뉘앙스와 감정의 파동은 온몸으로 온전히 전달되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습니다. 저 또한 언어와 국경을 넘어 사람들에게 그런 감각과 정서를 온전히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특기했다.

지난달 27일 발매된 팔칠댄스와의 협업 싱글 '서머 매직'은 소리의 결이 맞닿을 때 언어의 장벽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허물어지는지를 증명한 결과물이다. 이날 팔칠댄스가 게스트로 직접 무대와 올라 이 결을 관객들에게 확인해줬다.

켄지는 "우선 저희 에메랄드 측에서 데모를 만들어 전달했어요. 그 데모를 바탕으로 팔칠댄스 멤버들이 베이스, 기타, 그리고 보컬 라인을 얹어 보내왔는데, 그 트랙을 확인한 순간 멤버들 모두 '엄청나게 좋다'고 감탄했습니다"라며 "그 즉시 양 팀의 합이 빈틈없이 들어맞았다는 확신이 들었고, 이 흐름과 기세 그대로 밀고 나가면 완벽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돌아봤다.

나카노는 "팔칠댄스 쪽에서 보내온 초기 트랙에는 영어와 한국어 뉘앙스의 가이드가 담겨 있었어요. 이를 두 보컬이 어떻게 나눠 부를지 조율하는 과정에서 팔칠댄스가 먼저 '일본어로 불러보고 싶다'는 의견을 내줬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후렴구도 일본어로 구성해 보자고 뜻을 모았고, 그가 만든 멜로디 위에 제가 일본어 노랫말을 붙였어요. 완성된 파트를 듣고 '정말 좋다'고 호응해 줬어요. 이러한 소통 전반이 막힘없이 유기적으로 흘러갔고, 감각적인 면에서 무척 잘 통한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서울=뉴시스] 에메랄드, 87댄스.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2026.09.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드러머 사토시는 상호 존중이 빚어낸 추진력에 무게를 실었다. "팔칠댄스의 보컬이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는 점도 원활한 소통에 보탬이 됐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서로의 음악성을 깊이 존중하고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나카노가 이야기했듯, 말을 몰라도 음악 자체에 매료되는 순간이 분명 존재합니다. 뮤지션 사이에서도 음악적 지향점에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언어의 벽은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첫 데모를 보냈을 때부터 팔칠댄스 측에서 진심 어린 반응을 보내주어 멤버들 모두 큰 힘을 얻었고, 그 교감이 작업 전체를 강하게 이끄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결성 15주년을 기념해 올해 발표한 미니앨범 '인 유어 트러스트(In Your Trust)'는 밴드가 청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단단한 약속이다. 켄지는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해 온 역사와 신뢰의 무게가 앨범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말했다.

나카노는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신뢰의 무게를 담담한 언어로 갈무리했다.

"오랜 시간 지켜봐 주신 관객들과의 신뢰, 그리고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멤버들 간의 신뢰를 온전히 하나의 작품 안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에메랄드다운 본질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저희의 모습을 기꺼이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주는 관객분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오롯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번 앨범에 담았습니다. 앞으로도 그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면서, 관객분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도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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