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대담…김애란·라바투트가 답한 '인간다움'
김애란 "문학은 기다리는 마음"…라바투트 "I보다 We가 중요"
김애란 "언어는 불완전한 도구"…라바투트 "논리만 따라가면 최후"
[서울=뉴시스]조기용 기자 = 빠른 기술 발전에 따라 가속화되는 인공지능(AI) 시대. 정보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 어려워진다.
AI가 점차 인류를 대체하는 이 시대, 무엇이 인간답게 만들고 존재에 관한 질문을 떠올리게 할까.
동시대를 감각하며 삶의 균열을 포착하는 소설가 김애란(46)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온 칠레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46), 두 동갑내기 작가가 AI 시대에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사람입니다'라고 답한다. 성별도, 국적도 다르지만 세상의 변화를 남다르게 포착하고, 문학의 언어로 써 내려간다는 점에서 두 작가는 교집합된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전미도서상 후보에 올랐던 라바투트는 과학사에 허구를 더해 자신의 문학적 상상력을 펼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대표작 '매니악'에서 헝가리 수학자 폰 노이만의 삶을 다루면서 학문에서 출발해 AI의 망상까지 다룬다. 특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작품에 다루며 국내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작품에서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하거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초래할 수 있는 미래를 그려온 두 작가가 AI 시대 문학의 역할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마주 앉았다.
11일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개막한 '2026 서울국제작가축제' 개막대담에서 김애란과 라바투트는 연사자로 올랐다. 올해 축제 주제 '누구세요?'에서 기본적이지만 근본적인 사유를 시도하면서 두 작가는 '사람'이란 소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바라보면서도, 인간을 단순한 논리나 하나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호해지는 순간, 문학이 방향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애란은 지난해 출간한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통해 안부를 건넨 바 있다. 갈수록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에 갇히고 있다. 김애란은 소설집 제목에 대해 "실제로 제 소설집에 실린 모든 인물의 안부를 묻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생로병사로 향하는 삶의 줄거리를 읽었지만 과정은 제각각이다. 방대한 정보가 쏟아짐에도 여전히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문학에서 나타난다.
김애란은 "문학이 제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통찰력, 명민함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인내심과 관대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라바투트는 축제 주제를 영어로 표현한 '후 아 위'(Who Are We)에서 복수성을 나타내는 'We'를 강조했다. 인간은 절대 개인적인 존재가 아닌 공동체를 형성해 의식을 공유하고, 사유하는 존재란 점을 역설했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라 한 지점에 수렴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라바투트는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착각에 빠져있다"며 "(인간은) 복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I'보다 'We'에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작가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라바투트는 '매니악'에서 폰 노이만을 다루지만 그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등장시키지 않고, 주변 인물로 표현한다. 즉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여러 인물과 화자를 거쳐 서술한다. 특히 반핵운동이 일어날 때 반응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시선이 쏠린다.
라바투트는 "우리가 실제로 다른 사람에게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절멸시킬 수 있다는 모순을 발견했다"며 "논리적인 사고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팽배하기에 이성과 논리의 길을 따라가면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AI 시대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김애란은 가장 어려운 글에 대해 "어제 죽은 사람에 관한 글"이라고 답했다. 애도의 성격을 가진 글은 결과보다 과정과 시간을 충분히 겪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글쓰기란 반드시 누가 죽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리는 것들, 젊음, 관계, 나이 등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애도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라바투트는 AI를 보다 직접적인 위험의 문제로 바라봤다. 전날 열린 축제 간담회에서 "문학은 AI로부터 완전히 안전하다"고 말한 라바투트는 쓰기를 벗어나 AI가 실제 세계에서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인간의 언어로 학습하며 AI가 얼핏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라바투트는 "인간이 (AI를)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며 "우리가 AI 기술을 만드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위해서다. 당장 (AI가)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AI 시대에도 결국 언어와 문학의 역할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고 봤다.
김애란은 자신이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현미경과 망원경에 비유했다.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과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것 모두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렌즈를 무엇으로 닦느냐는 것이다.
그는 언어를 "불안전하고 오염되고 불완전한 도구"라며 자신이 가진 언어라는 손수건이 더럽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렌즈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라바투트는 문학이 비록 허구성을 갖지만 현실과 온전히 동떨어지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결국 추측을 통해서 형성되고 왜곡으로 만들어진다"며 이를 정돈하는 과정이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힘이라고 말했다.
결국 두 작가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인간을 끝까지 바라보는 방식에 문학이 자리하고 있음을 들려줬다.
"작가는 남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이라기보다 도덕의 맥락을 재검토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시대에 어떤 일반적인 통념에 착지하기보다는 재검토하고 싶습니다."(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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