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두칠성을 오른쪽에 둬"…천문학으로 되짚은 '오디세이' 3000년 항해술[사이언스 오디세이①]

기사등록 2026/09/13 12:00:00 최종수정 2026/09/13 12:04:40

영화 '오디세이' 속 항법의 비밀…그리스인은 큰곰자리, 페니키아인은 작은곰자리

별자리가 밝힌 오디세우스 이타카섬 복귀일, 기원전 1178년 4월 16일?

호메로스 서사시 속 천체 위치 역산…개기일식 예언과 일치하는 과학적 가설

[AP/뉴시스]유니버설 픽처스가 공개한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에서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 2026.09.11.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북두칠성을 오른쪽에 둬."

최근 1000만 관객을 넘어서며 대흥행을 기록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는 망망대해 위에서 밤하늘의 별을 길잡이 삼아 고향 이타카로 향한다.

위성항법장치(GPS)는 물론 나침반조차 존재하지 않던 고대 그리스 시대, 밤하늘의 별자리는 뱃사람들의 목숨을 건 항해를 책임지던 가장 선진적인 항법 도구였다.

이 장면은 거장의 영화적 연출을 넘어 약 2800년 전 쓰인 호메로스의 원전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고증에 정확히 기반을 두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플레이아데스 성단과 목동자리, 큰곰자리를 살피며 바다를 건너는 대목이 나온다. 현대 연구자들은 이 천문 기록을 역산해 작품 속 사건이 벌어진 날짜까지 추적했다.

◆그리스인은 큰곰자리, 페니키아인은 작은곰자리…고대의 GPS '별'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메리타임 아케올로지'에 게재된 키아라 마리아 마우로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고대 지중해 선원들은 밤에도 바다를 건넜으며 주극성(밤새 지평선 아래로 지지 않는 별)인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를 활용해 북쪽을 파악했다.

당시 그리스 선원들은 찾기 쉽고 밝은 큰곰자리(북두칠성을 포함)를, 페니키아 선원들은 상대적으로 찾기는 어렵지만 천구의 북극에 더 가까운 작은곰자리를 주로 활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북두칠성은 큰곰자리 가운데 국자 모양을 이루는 일곱 별을 뜻한다. 반면 작은곰자리는 북쪽을 보다 정확히 가늠할 수 있었다.

오디세이아 원전 5권에도 이런 항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칼립소의 섬 오기기아를 떠난 오디세우스는 플레이아데스와 늦게 지는 목동자리, 큰곰자리를 바라보며 뗏목을 몬다. 원전에서는 칼립소가 큰곰자리를 왼쪽에 두고 항해하라고 알려준다. 북쪽 하늘의 큰곰자리를 왼쪽에 둔다는 것은 배가 동쪽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영화에서는 큰곰자리를 '오른쪽'에 두라고 한 것과 반대지만 모순은 아니다. 이는 항해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반대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장면은 트로이(동쪽)를 떠나 서쪽의 고향 이타카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서쪽을 바라볼 때 북쪽 하늘(큰곰자리)이 오른편에 위치한다. 반면 원전에서 오디세우스는 지중해 서쪽 끝 오기기아 섬에서 동쪽 스케리아로 향하므로 북쪽이 왼편에 놓이게 된다. 출발 방향에 따른 당연한 반대 배치인 셈이다.

별은 방향뿐 아니라 계절을 읽는 표지이기도 했다. 플레이아데스와 목동자리는 계절에 따라 뜨고 지는 시각이 달라진다. 학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두 천체를 함께 관측했다는 묘사가 항해 시기를 늦겨울에서 초봄으로 좁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밤하늘이 나침반이자 달력 역할을 한 셈이다.

육지가 보이지 않는 원거리 항해 자체도 당시 실제로 이뤄졌다. 연구진은 이스라엘 아슈켈론 해안에서 약 48㎞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기원전 8세기 난파선 '타니트'와 '엘리사' 등을 원거리 항해의 고고학적 근거로 제시했다.

2019년 국제학술지 '안티크톤(Antichthon)'에 실린 연구도 '오디세이아'의 항해 장비와 항로, 난파 묘사 등을 실제 항해 관행과 비교했다. 연구진은 작품의 구체적인 묘사가 고대 지중해 뱃사람들의 현실적인 경험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니버설 픽처스가 공개한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에서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의 모습. (사진=유니버셜픽쳐스 공식 예고편 캡처) 2026.09.11. *재판매 및 DB 금지
◆별자리·금성·달을 거꾸로 돌려보니…기원전 1178년 4월16일 행해진 '복수'

천문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별과 행성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만큼 천체의 위치를 과거로 되돌려 계산하면 작품이 묘사한 밤하늘이 언제 나타났는지 추정할 수 있다.

콘스탄티노 바이쿠지스와 마르셀로 마냐스코 연구팀은 2008년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오디세이아에 일식이 묘사돼 있는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오디세이아'에 명시된 플레이아데스 성단, 목동자리, 금성, 초승달의 위치 관계를 기원전 1250~1115년 사이의 천문 데이터와 대조해 역산했다. 그 결과 모든 천문적 조건이 유독 한 날짜로 귀결됐다. 바로 기원전 1178년 4월 16일이다.

이날 정오 무렵 이오니아 제도 일대에서는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으로 시뮬레이션 된다. 이는 오디세이아 20권에서 예언자 테오클리메노스가 구혼자들의 죽음을 예고하며 "태양이 하늘에서 사라지고 어둠이 세상을 뒤덮는다"고 외친 묘사와 정확히 일치한다.

연구진의 시간표상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한 날은 그보다 닷새 앞선 4월 11일이며, 피의 복수극을 완성한 날이 바로 4월 16일이다.

물론 이는 문학적 묘사를 천문 현상으로 해석한 과학적 가설이다. 연구진도 테오클리메노스의 말이 실제 일식을 뜻하는지를 두고 회의론이 크다고 밝혔다. 작품 속 표현을 특정 천문현상으로 본 해석이 틀리면 날짜 계산도 성립하지 않고, 계산이 맞더라도 오디세우스가 실존했거나 서사 속 사건이 실제 이날 벌어졌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러나 3000년 전 서사시 속 밤하늘이 현대 천문학의 계산을 거쳐 구체적인 시간의 기록으로 재탄생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대 오디세우스에게 별이 바다 위 길을 밝히는 GPS였다면, 현대 학자들에게 별은 고대 서사 속에 담긴 시간을 되짚어가는 정밀한 이력표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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