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맞아 공간·콘텐츠 확 바꿔…F&B는 '잔치마당'
유영국 6억~7.2억 등 거래…수백만원대 젊은 작가도 팔려
"사람은 많은데 안 산다" 푸념도…판매정보 공개 꺼리는 관행 여전
내년 프리즈 DDP로 이동…'한 지붕' 벗어나 독자 경쟁력 시험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올해는 프리즈보다 키아프가 더 볼 게 많았다."
25주년을 맞은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 달라졌다. 전시장은 넓고 화려해졌다. 작품만 빼곡히 늘어놓던 아트페어에서 벗어나 먹고 쉬고 즐기는 공간도 커졌다. F&B 공간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잔치마당'을 방불케 했다.
볼거리도 늘었다. KB금융그룹이 마련한 김택상 특별전 '별의 축적(A Gathering of Stars)'은 빛과 색을 중심으로 한 신작을 선보였다. 상업 부스 사이에서 작품을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운 전시로 호평을 받았다.
현장에서는 "올해는 프리즈보다 키아프가 볼 게 많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2022년 프리즈 서울 상륙 이후 상대적으로 밀려 보였던 키아프가 올해 공간과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손보면서 존재감을 키웠다는 평가다.
7일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지난 2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2026에는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행사 기간 약 8만명이 찾았다.
개막일인 수요일과 목요일 관람객은 지난해보다 5~10% 늘었다. 프리즈 서울이 끝나고 키아프만 열린 일요일에도 약 8000명이 찾았다.
올해 처음 도입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도 변화를 이끌었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공간과 콘텐츠 전반을 맡아 전시장에 일관된 디자인을 적용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참여한 'Kiaf Classic', 증강현실(AR) 특별전 등 미술 밖으로 프로그램도 넓혔다.
정 디렉터는 "공간과 전시, 프로그램 전반에서 '공존'이라는 방향을 구현하고 관람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유영국 6억~7.2억…수백만원대 젊은 작가까지
작품 판매도 이어졌다. 고가 작품부터 수십만~수백만원대 신진 작가 작품까지 가격대가 넓어졌다.
국제갤러리는 유영국의 1979년작 'Work'를 6억~7억2000만원에 판매했다. 길성의 2009년작 '달항아리'는 5000만~6000만원, 안규철의 2026년작 '미술 세계지도'는 2400만~2880만원에 팔렸다.
장-미셸 오토니엘 작품도 여러 점 거래됐다. 조각 'Sakura (B)' 2점이 각각 6만2000~7만4400유로, 회화 'Sakura' 2점은 각각 4만2000~5만400유로에 판매됐다. 줄리안 오피의 'Katie II.'도 4만5000~5만4000파운드에 팔렸다.
갤러리현대는 백남준, 정상화, 김보희, 김성윤 등의 작품을 판매해 18억원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가나아트는 박은선 작품 6점을 5억원 이상에 판매했다. 표갤러리는 김창열, 하종현, 김강용, 위이 등 작품 6점을 약 5억원에 팔았다.
눈에 띈 것은 젊은 작가와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작품이었다.
키아프서울에 처음 나온 호리아트스페이스는 김남표 꽃 작품을 2800만원, 1800만원에 팔았고, 키다리갤러리는 임일민 출품작 11점을 완판하는 등 총 46점을 약 2억원에 판매했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는 박지영 작품 8점이 모두 팔리는 등 신진 작가 작품 16점이 판매됐다. 가격은 40만~300만원대였다.
1998년생 박영환을 내세운 갤러리 휴에서는 작품 약 25점이 팔렸다. 갤러리헤세드는 최지현의 80~120호 대작 8점을 완판했다. 아트소향도 감성빈 솔로부스에서 600만원 이하 작품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어졌다.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은 "올해는 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컬렉터층의 유입이 눈에 띄게 늘었고 중국·일본·태국 등 국제 컬렉터들의 방문 또한 지속적으로 다양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8만명 몰렸지만…"사람은 많은데 안 산다"
화려해진 행사장과 달리 부스 안 화랑들의 표정이 모두 밝았던 것은 아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인파가 구매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상당수 화랑 관계자들은 "사람은 많은데 작품을 사지 않는다"며 판매 부진을 호소했다. 작품 앞에는 관람객이 몰렸지만 거래를 기다리는 화랑주들은 애를 태웠다.
이번 키아프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장-미셸 오토니엘의 4억원대 대형 은빛 연꽃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반면 오토니엘의 중소형 조각과 회화, 500만원대 무라노 유리 램프 등은 여러 점 팔렸다.
관람객의 관심과 실제 구매력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판매 온기도 부스마다 달랐다. 일부 주요 화랑과 인기 작가들은 수억원대 판매와 완판 소식을 전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작품 한 점을 팔기도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화랑협회는 "최근 수년간 이어진 미술시장의 조정기를 지나 시장이 점진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 전체가 회복됐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전체 거래액과 전년 대비 판매액 증감은 공개되지 않았다. 몇몇 갤러리의 높은 판매액과 완판 사례만으로 시장 전체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판매 정보 공개를 꺼리는 화랑가의 관행도 여전했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행사 기간 주요 갤러리들이 작품 판매 소식을 잇달아 알렸다. 반면 키아프에서는 작품이 팔리고도 판매 사실이나 가격 공개를 꺼리는 화랑들이 적지 않았다. 젊은 갤러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화랑협회 사무국 역시 참가 갤러리의 판매 실적을 취합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발표된 판매 사례만으로 약 8만명이 찾은 키아프에서 실제 얼마만큼의 거래가 이뤄졌는지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관람객 숫자와 판매액은 다른 지표다. 8만명이 몰렸다는 사실만으로 시장 회복을 말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공간 변화에서도 명암은 있었다.
F&B 공간은 작품과 테이블, 먹거리가 어우러지며 페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반면 현대백화점이 운영한 VIP 라운지는 전시장 밖에 자리해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특별전과 이어진 또 다른 VIP 공간은 제주맥주 팝업과 맞물려 라운지와 F&B 공간의 경계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에서 동선을 확인하며 머뭇거리는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올해 키아프의 변화는 분명했다. 25년간 국내 최대 아트페어로 성장했지만 프리즈 서울 등장 이후 따라다녔던 '프리즈의 안방 파트너'라는 인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색깔을 만들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읽혔다.
◆25주년 잔치는 끝났다…내년부터 진짜 시험
25주년 잔치는 끝났다. 이제 키아프의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은 내년부터 장소를 달리한다. 키아프는 코엑스에 남고 프리즈 서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옮긴다. 2022년부터 이어진 '한 지붕 두 가족' 체제가 5년 만에 끝난다.
지난 5년간 두 페어는 같은 코엑스에서 공동 티켓을 운영하며 관람객과 국내외 컬렉터를 공유했다. 올해도 키아프에는 약 8만명이 찾았고, 프리즈 서울에는 7만명 이상이 방문했다.
프리즈에서는 유영국 작품이 22억~25억원에 판매되는 등 수억원대 고가 작품 거래가 잇따랐다. 키아프에서는 국내 주요 작가부터 중견·신진 작가까지 폭넓은 가격대의 거래가 이뤄졌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페어가 한 공간에서 관람객과 컬렉터를 공유하며 만들어낸 시너지였다.
키아프는 올해 공간과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바꾸며 독자적인 색깔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영입부터 특별전, 클래식 공연, F&B까지 변화의 폭도 컸다.
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은 "마지막 날까지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을 보며 키아프가 국내외 미술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 예술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며 "앞으로도 키아프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히 하며 새로운 25년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이다.
공동 티켓과 협력 관계는 이어지지만 한 공간에서 관람객과 컬렉터를 공유했던 조건은 달라진다. 올해 넓고 화려하게 변신한 키아프가 프리즈와 한 지붕 아래서 누렸던 시너지를 벗어나서도 8만명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까.
키아프 자체의 콘텐츠와 시장 경쟁력이 새로운 25년의 첫 시험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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