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이드, 거창한 선언 없이도 온전한 세계…'여유'라는 이름의 하이브 음악적 자부심

기사등록 2026/08/31 05:00:00

하이브 신규 레이블 ABD 첫 걸그룹

데뷔작 '튠 앤 플레이'… 과잉 문법을 비껴난 '솔트로닉'

힘을 뺀 자리에 고인 K-팝 미니멀리즘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과잉의 시대에 무언가를 덜어내는 일은 증명하려는 욕망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자극적인 훅과 정교하게 계산된 세계관, 일체화된 칼군무의 긴장이 지배해 온 K-팝 걸그룹 시장에서 하이브(HYBE) 산하 레이블 ABD의 첫 주자 튜이드(TUIDE)의 등장은 사뭇 이질적이면서도 매혹적이다.

지난 24일 발매된 데뷔 앨범 미니 1집 '튠 앤 플레이(TUNE & PLAY)'를 관통하는 단어는 멤버 세아가 쇼케이스에서 밝힌 '여유'다. 세아를 비롯 이들이 주창한 '솔트로닉(Soultronic)'은 단순히 솔의 온기와 일렉트로닉의 감각을 결합한 장르적 조합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규격화된 틀에 자신을 욱여넣지 않고, 음악의 파도(Tide)에 유연하게 몸을 맡기며 고유의 결을 찾아가는 태도에 가깝다.

◆첫 트랙 'ABD'부터 재닛 잭슨까지…한성수 총괄과 ABD가 선언한 레이블의 미학

각 레이블의 독립적인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온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멀티 레이블 전략' 일환으로 설립된 ABD는, 온전한 창작의 자유 속에서 기존 K-팝의 문법을 비껴간 신선한 음악과 콘셉트를 길어 올렸다. 한성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마스터 프로페셔널(MP)이 총괄을 맡아 하이브 산하에 새롭게 닻을 올린 ABD의 출발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선명한 음악적 선언이다.

특히 데뷔 앨범의 포문을 여는 첫 번째 트랙으로 레이블의 사명을 그대로 전면에 내건 'ABD'를 배치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아티스트가 곧 레이블의 얼굴이자 철학이며, 레이블의 방향성이 곧 아티스트의 음악으로 직결된다는 단단한 자신감의 표출이다.

이러한 지향은 팝의 전설 재닛 잭슨(Janet Jackson)의 메가 히트곡 '올 포 유(All For You)' 멜로디를 품어낸 '에코(Echo)'의 인터폴레이션으로 한층 명확해진다. 1990년대 흑인음악의 황금기와 2000년대 초반 팝·댄스 뮤직이 지녔던 찬란한 유산을 ABD라는 감각적인 필터로 통과시켜 현대 K-팝의 문맥 위에 새롭게 안착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과거의 명곡과 장르적 유산을 빌려오되 결코 낡은 복고로 환원시키지 않고, 레이블 고유의 세련된 질감으로 번안해 내는 기획력이 이 첫 음반에서부터 뚜렷한 인장을 남긴다.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90년대 클럽 뮤직과 시부야케이의 서정…과거의 기억을 세련되게 길어 올리다

타이틀곡 '선 키스(SUN KISS)'를 비롯한 앨범 트랙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클럽·댄스 뮤직과 시부야계의 미학을 환기시킨다. 몬도 그로소(Mondo Grosso),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PM), 토와 테이(Towa Tei), 재즈노바(Jazzanova), 니콜라 콘테(Nicola Conte) 등이 일구어냈던 브라질리언 하우스와 보사 하우스, 라틴 하우스 특유의 유려함이 튜이드의 사운드 밑바탕에 흐른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과거의 유산을 단순히 '레트로'라는 향수 어린 도구로 박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흑인음악의 그루브와 세련된 일렉트로닉 비트를 현대 K-팝의 호흡으로 유연하게 직조해 냈다. 90년대 R&B와 로우파이 텍스처를 엮은 첫 트랙 'ABD'부터 딥하우스와 클래식 하우스를 횡단하는 '에코(Echo)', 지-펑크(G-Funk)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한 '플립플롭 걸(Flip-Flop Girl)', 통통 튀는 비트가 질주하는 UK 개러지 기반의 '걸스(GRLS)'까지, 앨범은 하위문화의 다양한 댄스 뮤직 어휘를 한 장 안에 촘촘하게 엮어낸다.

이러한 유려한 흐름의 중심에는 프로듀서 듀오 '그루비룸(GroovyRoom)'의 조율이 자리한다. 이들은 트렌디한 클럽 비트 위에 탄탄한 베이스 라인을 구축하면서도, 멤버들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말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여기에 수비(SOOVI), 달총, 진초이 등 뚜렷한 음악적 인장을 지닌 아티스트들의 협업이 더해져, 자칫 차가워질 수 있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서정적인 온기와 독특한 결을 덧입혔다.

◆'비트를 맞추기보다 타는' 신체성과 영상 미학…군무 대신 여백을 택하다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0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운드가 구축한 여유는 무대 위 신체성과 시각적 미학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튜이드의 퍼포먼스는 멤버 7인을 획일적인 칼군무의 공식에 가두지 않는다. 대신 정해진 안무 안에서도 멤버 각자의 리듬과 춤선이 노닐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다. 선공개곡 '걸스' 무대에서 엿보이듯, 대형을 맞춰 군무를 펼치다가도 한 명씩 중앙으로 걸어 나와 저마다의 그루브를 자유롭게 펼쳐내는 세션식 구성은 시각적 해방감을 준다. 비트를 기계적으로 '맞추는' 대신 유연하게 '타는' 움직임, 서로 다른 보컬 톤과 춤선을 균질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무대에 얹어내는 태도다.

이러한 시청각적 여백과 몽환적인 정서는 김성욱(Oui Kim)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뮤직비디오를 통해 한층 입체적인 영상 미학으로 완성된다. 광활하고 이국적인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과하지 않게 배치된 시각특수효과(VFX)는 인위적인 과시를 지양하고, 자연의 거친 질감과 멤버들의 유기적인 몸짓 사이에 신비로운 조화를 직조해 낸다. 사운드가 품은 전자음의 온기와 대자연의 풍경이 이질감 없이 맞물리며 곡과 멤버들이 지닌 고유한 무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타이틀곡 '선 키스(SUN KISS)'의 노랫말 '노 빅 쇼(No big show)'나 '걸스(GRLS)'의 '나싱 투 프로브(Nothing to prove)'라는 선언처럼, 이들은 무언가를 과시하거나 증명하려 힘을 주지 않는다. 목청을 높여 자신들을 각인시키기보다 스스로의 리듬을 믿는 태도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단단한 정체성이 싹튼다.

2006~2011년생 다국적 멤버 7인이 지닌 또렷한 개성이 풍부한 거름이다. 팀의 중심을 잡는 맏언니 서희의 맑고 깨끗한 보컬과 깔끔한 춤선, 도회적인 음색을 지닌 엘레나와 우아함·시크함을 넘나드는 지아의 스펙트럼이 보컬 라인을 탄탄히 받친다. 여기에 파워풀한 춤선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사키, 키즈 모델 출신다운 유연함과 시원시원한 에너지를 지닌 세아, 감각적인 마스크와 개성 있는 음색의 막내 이하늬가 활력을 더한다.

◆K-팝 미니멀리즘의 새로운 변주…조수의 흐름처럼 스며드는 잔향

국내외 평단 역시 튜이드의 데뷔를 K-팝 신의 의미 있는 변곡점으로 짚어내고 있다. 강렬한 콘셉트와 자극적인 드롭, 맥시멀리즘이 지배하던 기존 데뷔 공식을 빗겨간 이들의 선택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일본 음악 매체 롤링스톤 재팬(Rolling Stone Japan)은 "튜이드의 새로움은 미지의 장르를 발명해 낸 데 있지 않다. 90년대 이후 R&B와 클럽 뮤직의 어휘를 넘나들면서도 역사의 무게가 아니라 '타는' 것의 즐거움을 경쾌하게 길어 올렸다는 데 있다"며 "소리를 과도하게 채우지 않고 각자의 목소리와 신체가 노닐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둔 '여유'야말로 이들이 울려 퍼뜨린 첫 번째 정체성"이라고 평했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는 "시부야계로부터 파생되어 재즈, 브라질리언, 하우스를 흡수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일본 클럽/댄스 뮤직의 미학과 궤를 같이하며, K-팝의 전형성을 벗어난 이상적인 차별점"이라고 평했다.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는 "흑인음악 어법을 부드러운 이지리스닝 팝으로 재배열해 탄력과 여유가 공존하는 감각을 빚어냈으며, 맥시멀리즘을 덜어낸 자리를 곡마다 다른 그루브로 채운 K-팝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변신"이라고 짚었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는 "인위적 자극 대신 따뜻하고 세련된 그루브를 앞세워 최신의 세련됨과 과거의 노스탤지어를 함께 불러일으킨다"고 평가했다. 김성환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또한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 감각을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슬기롭게 결합해 완성도 높은 5세대 K-팝의 모범적 답안을 제시했다"고 호평했다. 이아림 대중음악 평론가는 "수비, 달총, 진초이, 그루비룸 등과의 협업이 차분한 서정을 들려주며, 조수의 흐름처럼 유려하게 스며드는 것이 이들의 강점"이라고 분석했다.

끝없이 자신을 입증해야만 안도하는 잔혹한 속도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뭉클하고도 단단한 위안이 된다. 튜이드의 음악은 청자를 강요하거나 장악하려 들지 않고, 소리와 소리 사이에 남겨진 여백으로 상대의 숨결을 가만히 초대한다. 가장 격렬한 파도가 아니라 힘을 뺀 자리에 고요히 차오르는 온기, 거창한 선언을 거두고 제 안의 리듬을 가만히 긍정하는 나직한 호흡. 튜이드가 K-팝의 과열된 시간 속에 띄워 올린 이 느긋한 조율(Tune)은, 서두르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온전하다는 가장 우아하고 애틋한 음악적 긍정이다.

다음은 이번 튜이드 음반에 대한 평론가들의 리뷰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성환 대중음악 평론가

"트위드의 첫 EP '튠 & 플레이'는 하반기 K-팝 걸그룹 음반들 가운데 단연 상위 퀄리티의 작품으로 기록될 것 같다. 타이틀곡 '선키스'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듣고 보며 머릿속에서 '뉴진스와 키키 사이의 그 어딘가'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그러나 단순히 그 모방이 아니라, 그 두 선배 팀의 음악적 장점과 방향성을 슬기롭게 진화시켜 갈 준비를 마쳤다는 게 중요하다. 그루비 룸이라는 작곡-프로듀싱 팀이 중심을 잡고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 감각을 트렌디한 클럽 비트-일렉트로닉 사운드와 잘 결합한 사운드를 선사한다. 그러나 두 사운드에서 감성적 에너지는 전자에 있다는 게 이들 음악의 차별적 포인트다. 5곡의 트랙들이 장르적으로 조금씩 달라도 전체적 일관성이 있는 이유다. 이제야 드디어 완전히 정립됐다는 소위 '5세대 K-팝'의 모범적 답안 중 하나를 만난 기분이다."

◆이아림 대중음악 평론가

"데뷔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신인, 튜이드를 일축하자면 묘하다. 풋풋하면서도 몽환을 한 스푼 더해 잔잔하지만, 동시에 발랄한 생기를 품고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다국적에 다인원 걸그룹임에도 음색은 이질감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고, 은은하게 어우러져 청자의 귀를 잡아챈다. 자칫 무력하고 유약한 인상을 줄 수도 있겠으나, 퍼포먼스로 느른한 여유와 그루브를 함께 전하기에 산뜻한 청량감을 선사하고, 일견 뉴진스의 색채가 떠오르기도 하나, 수비, 달총, 진초이, 그루비룸 등과의 협업이 차분한 서정과 독특한 매력을 들려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튠 더 타이드(Tune the tide)라는 의미처럼 이들의 음악은 강렬한 자극을 담고 있진 않지만, 조수의 흐름처럼 유려하게 스며드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이다."
[서울=뉴시스] 튜이드. (사진 = ABD(하이브) 제공) 2026.08.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정병욱 대중음악 평론가

"튜이드의 첫 EP는 음악적으로 뉴진스를 떠오르게 한다. 솔팝, 딥하우스, 지-펑크(G-Funk), UK 개러지 등 과거 여러 시대와 맥락의 하위문화에서 차용한 흑인음악 어법을 부드럽고 캐치한 이지리스닝 팝으로 재배열해 세련되고 편안한 무드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절제된 스윙과 퍼커시브 리듬, 묵직한 글라이드 신스베이스, 느긋한 탑라인 등을 조화시켜 탄력과 여유가 공존하는 팝 감각을 만든다. 뉴진스의 아련한 청춘상과 달리 자유롭고 경쾌한 동시대 또래 집단의 이미지를 앞세우고, 세밀한 구조를 짧은 호흡으로 압축한 점은 아일릿과 닮았다. 강렬한 콘셉트, 강한 후렴, 화려한 사운드가 대표하는 맥시멀리즘을 덜어낸 자리를, 곡마다 다른 그루브와 같은 바이브로 채우는 K-팝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변신이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

"인위적인 자극 보다는 따뜻하고 세련된 그루브를 앞세운 튜이드는 기존 아이돌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이나 후크송과는 달리 자연스러운 흐름을 추구, 최신의 세련됨과 과거의 노스텔지어를 함께 불러일으킨다. 90년대 일본의 걸그룹을 떠올리게 하는 'ABD'부터 청량함과 이국적인 분위기의 신비로운 '선키스'를 비롯 하우스와 힙합을 접목하여 정형화된 곡의 형태를 타파한 '걸스'까지 앨범 전체의 완성도가 높고 멤버 본연의 깨끗한 매력에 집중한 점이 인상적이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

"힘을 뺀 보컬과 온기 어린 일렉트로닉 사운드, 보사노바에 기인한 그루브로 장식된 타이틀 '선키스'는 '데뷔 곡은 강렬해야 한다'는 기존의 공식을 가볍게 비껴가고 있다. 특히 몬도 그로소나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PM)처럼, 시부야계로부터 파생돼 재즈와 브라질리언, 하우스 등을 흡수하며 진화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일본 클럽/댄스 뮤직의 미학과도 일정 부분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K-팝의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최근의 흐름이 이상적인 차별점으로 이어진 사례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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