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번, 데뷔 50년 만의 첫 내한공연 현장 리뷰
향수 대신 '현재진행형'의 종합예술
'사이코 킬러' 떼창에서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주술로
앙코르의 환영과 해체의 아이러니 미학
2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평화의 전당. 번이 약 데뷔 50년 만에 선보인 첫 내한공연에서 10여 명의 멤버가 주황색 수트를 입고 무대에 오르며 공연은 시작했다. 첫 곡은 토킹 헤즈의 1979년 곡 '헤븐(Heaven)'이었다. 무대 뒤 오목한 거대한 스크린 위로 지구가 떠오르며 "저기 있네요, 우리의 천국, 우리가 가진 유일한 천국"이라는 번의 선언과 함께 시작된 이 무대는, 천국이라는 정적이고 무의미한 공간 대신,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하며 연대하는 불완전한 지상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구원처임을 암시했다.
그의 공연은 시종일관 연극성, 영화성, 뮤지컬적 요소가 교차했다. '에브리바디 래프스(Everybody Laughs)'에서는 연극적 요소가 도드라졌고, '앤 쉬 워즈(And She Was)'에서는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화음이 돋보였다. 베이스 라인이 인상적인 '스트레인지 오버톤스(Strange Overtones)' 연주 중에는 스크린에 펼쳐지던 정원 풍경이 점차 도시 풍경으로 전환되며 관객과의 공감각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우시스 인 모션(Houses in Motion)'에서는 번 특유의 그루브 넘치는 내레이션과 함께, 멤버들이 화려한 군무 대신 묘한 시각적 쾌감을 주는 안무를 선보이며 펑키한 리듬감을 끌어올렸다. 무대 스크린에 '아이 러브 서울(I Love Seoul)'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례들을 띄운 '티 셔츠(T Shirt)', 인간의 안일함과 이기심을 관조하는 토킹 헤즈의 찬가 '(나싱 벗) 플라워스((Nothing but) Flowers)'를 거치며 무대는 단순한 공감(空感)을 넘어 치밀하게 직조된 상징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모든 악기를 직접 메고 대형을 수시로 바꾸며 움직이는 멤버들의 모습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치밀하게 계산된 미학적 동선이자 새로운 서사가 빚어졌다.
'웬 위 아 싱잉(When We Are Singing)'에서는 10명의 멤버들의 입 모양이 화면에 분할돼 나타나는 시각적 위트를 선사했다. 압권은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였다. 멤버들이 대형을 바꿔 이동할 때마다, 마치 축구 포메이션 그래픽처럼 그들의 이름이 스크린 위에서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스테판' '데이비드'이라는 이름들이 별처럼 반짝이며 그 자체로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위트를 완성했다.
토킹 헤즈의 곡들, 특히 '슬리퍼리 피플(Slippery People)' 같은 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초적 리듬은 관객들의 신체성을 일깨웠다. 펑키한 기타와 수준급의 베이스 연주 위로 펼쳐지는 멤버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도식이자 도상이었다. 부처의 사진을 띄워놓고 부른 '아이 멧 더 부다 앳 어 다운타운 파티(I Met the Buddha at a Downtown Party)'에서, 무대 위를 걷는 번의 스텝은 그 자체로 음표가 됐고 삶은 곧 선율이었다.
◆사랑과 친절이라는 이름의 가장 펑크적인 저항
"배우 겸 감독인 존 캐머런 미첼은 사랑과 친절이야말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펑크적인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광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사랑합니다."
번의 메시지는 노래 가사를 넘어 무대 전체를 관통했다. '마이 아파트먼트 이즈 마이 프렌드(My Apartment Is My Friend)'에서는 그의 아파트가 스크린에 재현되며 고립과 연대 사이의 긴장감을 그렸고, 황혼이 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한 '에어(Air)'는 화음과 댄서들의 움직임이 더해져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켰다.
국내 사이키델릭 밴드 '이날치' 밴드를 이끄는 장영규 음악감독이 좋아한다는 '사이코 킬러(Psycho Killer)'의 전주가 시작되자 장내는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이날치는 번이 설립한 미국의 명문 인디 레이블 '루아카 밥(Luaka Bop)'과의 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한 뒤 월드 투어를 도는 중이다.
◆시각적 시위, 살아 움직이는 서사
가장 강렬한 순간은 단연 '라이프 듀어링 워타임(Life During Wartime)'이었다. 번은 이 1979년 곡을 철저하게 재맥락화했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의 폭력적인 단속과 경찰의 시위 진압 장면이 무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구구절절한 연설은 없었다. 비극적인 국가 폭력의 이미지가 긴장감 넘치는 리듬과 충돌하며 그 자체로 거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됐다. 과거의 곡이 현재 진행형의 투쟁 서사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Once in a Lifetime)'에서 양손을 흔드는 그의 퍼포먼스는 일종의 주술과도 같았다. 이것은 거장의 품격을 증명하는 것을 넘어, 음악이 어떻게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항거'의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였다. 지난해 토킹 헤즈의 1983년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가 국내 최초로 개봉되며 주목 받았는데, 이 영화의 핵심 중 하나인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 덕에 해당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관객들의 목소리가 객석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앙코르 무대는 위트와 아이러니의 절정이었다. 번은 다가올 자신의 죽음 이후를 상상하는 곡 '에브리바디스 커밍 투 마이 하우스(Everybody's Coming to My House)'를 불렀다. 마치 성가대와 같은 거룩한 찬송가 분위기 속에서 그는 관객들을 향해 "우리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유쾌하게 외쳤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마지막 곡은 토킹 헤즈 시절의 명곡 '버닝 다운 더 하우스(Burning Down the House)'였다. 스크린과 무대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한 붉은 조명 아래서, 번을 비롯 주황색 옷을 입은 이들이 방금 전 환대했던 '그 집'을 다 같이 불태워버리는 이 기막힌 전복. 정형화된 유토피아를 해체하고 지금 이곳의 혼돈 속에서 춤추자는 그의 오랜 철학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완성한 강렬한 마침표였다.
결국 번은 예술과 이념,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는 향수에 기대지 않고 유연하게 적응하며, 음악이 사회·인문학적인 메시지를 함축하면서도 얼마나 원초적인 그루브를 지닌 현재진행형의 종합 예술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절망적인 정치 현실 앞에서도 분노 대신 웃음과 연대를 택하고, 완벽히 통제된 이성 대신 우연과 부조리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그것이 그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구축해 온 세계이자,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저항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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