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T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서 반도체·삼성 경영 현안에 대해 언급
"반도체 수요 PC·스마트폰·서버 넘어 피지컬AI·휴머노이드로 이어질 것"
삼성 영업익 연동 성과급 논란에 "평가제도 못 만든 여파"
"과거 성장 방식 유효하다 착각하면 도태"…'퍼스트 무버' 강조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앞으로 최소 10년간 반도체 산업은 성장할 겁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인공지능(AI) 확산을 계기로 반도체 산업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의 메모리 호황에는 가격 급등에 따른 과열이 일부 있지만 과거 PC와 스마트폰, 서버에 이어 AI, 피지컬AI, 휴머노이드 등으로 반도체 수요처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 전 회장은 13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메모리 시장이 저도 예상하지 못한 정도의 대호황을 맞았고 전 세계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AI라는 붐이 만들어낸 효과"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최소 10년간 반도체는 성장 산업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 "PC에서 AI·휴머노이드까지"…반도체 수요처 계속 넓어진다
권 전 회장은 반도체 수요처가 다양해지면서 과거보다 업황의 오르내림 폭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PC 수요에 크게 의존했다. 공급 측면에서도 미국과 일본, 유럽, 한국 등에서 30개 이상의 업체가 경쟁하면서 각 기업의 공급량을 예측하기 어려웠고, PC 시장의 부침이 메모리 시장 전체에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이후 휴대전화가 등장하고 서버 시장이 커지면서 응용처가 확대됐고 최근에는 AI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봤다.
권 전 회장은 향후 피지컬AI와 휴머노이드 등에서도 추가적인 반도체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새로운 기기와 서비스가 확산할수록 생성·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늘면서 반도체 수요도 함께 커질 것이란 설명이다.
다만 최근의 가격 급등세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권 전 회장은 현재 시장에 일부 '오버슈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 반도체 수요의 장기 성장과 가격의 등락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처럼 높은 이익률이 나타나는 것은 공급이 급증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데 따른 이례적인 현상으로 봤다. 반도체 수요 자체는 장기적으로 늘어나겠지만 가격은 수급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세트와 부품 사업 속성 달라…커질수록 의사결정 비효율"
권 전 회장은 최근 삼성전자에서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배분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현장 질문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평가 제도를 만들지 못한 여파"라며 "회사가 앞으로 5년, 10년 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지 정하고 거기에 맞춰 평가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기 실적을 기준으로 성과를 나누는 문제에 매몰되기보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무엇을 지향할지 먼저 정하고 이에 맞춰 인사와 평가, 보상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같은 문제가 단순 삼성전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국내 기업 전반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고 봤다.
특히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과 지향점도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사업보국'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초일류'를 예로 들며 당시에는 임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삼성전자의 사업 구조에 대해서도 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스마트폰과 가전 등 세트 사업과 반도체를 비롯한 부품 사업이 한 회사 안에 있지만 사업의 성격이 다른 만큼 조직이 커질수록 이를 함께 운영하는 데 따른 의사결정 비효율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부품 사업은 기업간거래(B2B), 세트 사업은 기업소비자간거래(B2C)로 속성이 다르다"고 했다. 다만 "경영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사업 분리를 직접적인 해법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조직 규모와 사업 특성에 맞춰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 "韓 패스트 팔로워 성공에 익숙"…퍼스트 무버로 적극 전환해야
권 전 회장은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산업이 앞으로도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과거의 '패스트 팔로워' 성공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은 해방 이후 선진국의 기술과 사업을 빠르게 따라잡은 뒤 이를 더 싸고 좋게 만드는 방식으로 성장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반도체와 철강, 조선, 자동차, 화학, IT 등 세계적인 수준의 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에 없던 사업 자체를 처음 만들어낸 사례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만 TSMC가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사례를 들며 "우리는 카피해서 더 싸고 좋게 만드는 것은 잘한다. 개선은 하지만 혁신은 없다"며 "그 성공 모델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전환을 위해서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교육 시스템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답을 맞히고 실수를 줄이는 데 초점을 둔 교육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인재를 키우기 어렵다고 봤다.
권 전 회장은 "우리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이 굉장히 강하다"며 "새로운 것을 하다 보면 잘 안될 수도 있는데 어릴 때부터 틀리지 않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그런 시스템이 작동했지만 지금은 정답을 찾고 지식을 기억하는 것은 컴퓨터가 더 잘한다"며 "우리는 아직도 기계와 경쟁하는 시스템에 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왜 이런 시스템을 고치지 않는지는 우리 사회 기득권에 던져야 할 화두"라며 "신생대가 왔는데 아직도 중생대가 좋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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