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극 감정' 양극성장애…'이 유전자' 변이 때문

기사등록 2026/08/03 11:26:43 최종수정 2026/08/03 12:08:24

전장 엑솜·뇌 MRI 분석, 새 위험 유전자 'GNB3' 확인

뇌 구조도 변화…감정 조절 관여 대뇌피질 두께 얇아

[서울=뉴시스] 양극성장애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뇌 구조의 변화가 특정 유전자 변이와 관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 유토이미지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극심한 우울 상태와 들뜬 기분 상태가 번갈아 나타나는 정신질환인 양극성장애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뇌 구조의 변화가 특정 유전자 변이와 관련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함병주·한규만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과 한미령 인천대학교 생명과학부교수 연구팀과은 공동 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다.
 
양극성장애는 전 세계 인구의 1~3%가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다. 유전적 영향이 큰 질환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전율은 60~85%에 이르지만, 지금까지의 유전체 연구는 주로 일반 인구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변이에 초점을 맞춰 왔다. 이 때문에 발병 위험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설명되지 못하는 '잃어버린 유전율' 문제가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드물게 나타나지만 단백질 기능에 직접 영향을 주는 희귀 유전변이에 주목했다. 2015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양극성장애 환자 93명과 건강한 대조군 161명을 대상으로 유전자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부위 전체를 해독하는 전장 엑솜 시퀀싱(WES)을 시행했다.

이 가운데 환자 82명과 대조군 154명은 뇌 자기공명영상(MRI)과 확산텐서영상(DTI) 검사를 함께 받아, 유전정보와 뇌 구조 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뇌영상-유전체 융합 분석'이 이뤄졌다.

먼저 연구팀은 기존에 보고된 양극성장애 관련 유전자 440개를 체계적 문헌고찰을 통해 선별하고, 이 중 382개 유전자에서 환자군의 희귀 변이를 확인했다. 변이가 가장 빈번하게 관찰된 유전자는 SYNE1(28%), PKHD1L1(23%), FRAS1(22%), ZFHX4(22%) 순이었다.

특히 유전자 단위로 희귀 변이의 축적 정도를 분석한 결과 GNB3 유전자에서 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는 희귀 변이가 환자군에 유의하게 몰려 있는 것으로 새롭게 확인됐다. GNB3는 신경전달물질의 신호를 뇌세포 내부로 전달하는 G단백질의 한 축을 만드는 유전자로, 이 유전자의 변이가 신경전달 신호 체계의 이상을 통해 양극성장애 발병에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어 유전변이와 뇌 구조를 연결해 분석한 결과 'KMT2C' 유전자의 변이(rs56850341)를 가진 사람에게서 뇌 구조의 뚜렷한 차이가 확인됐다. 해당 변이를 양쪽 염색체 모두에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정서와 연결하는 후두엽 영역(우측 설상회)의 대뇌피질이 유의하게 얇았다.

 또 뇌의 좌우 반구와 앞뒤 영역을 연결하는 주요 백질 신경다발 전반에서 조직의 미세구조가 느슨해지는 변화가 함께 나타났다. KMT2C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 조절 인자로, 뇌 발달과 신경회로 성숙에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양극성장애 환자군 자체의 뇌 구조 변화도 함께 확인했다. 환자군은 대조군에 비해 전두극, 안와전두피질, 배외측·복외측 전전두피질, 전대상피질 등 감정 조절과 판단에 관여하는 49개 대뇌 영역의 피질 두께가 유의하게 얇았다. 또 우울·조증 또는 경조증 삽화가 누적된 기간이 길수록 안와전두피질을 비롯한 전두엽 영역의 피질 두께가 더 얇아지는 경향도 나타났다.

함병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흔한 유전변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양극성장애의 유전적 취약성을, 드물지만 영향력이 큰 희귀 변이의 관점에서 접근해 새로운 후보 유전자를 찾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유전정보와 실제 뇌 구조 변화 사이의 연관성이 확인된 만큼, 향후 개인별 발병 위험을 평가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규만 교수는 "양극성장애는 진단과 치료 방향 설정이 쉽지 않은 질환으로, 증상 관찰에만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며 "유전변이와 뇌 영상 지표를 함께 보는 접근이 양극성장애를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조기 진단과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령 교수는 "유전체 분석과 뇌영상 분석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의 데이터를 통합함으로써 단일 분석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며 "생명과학과 임상의학의 융합 연구가 정신질환 연구에서 갖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유전체 정보와 뇌 영상 지표를 하나의 분석 틀에서 다룸으로써, 양극성장애의 유전적 취약성과 실제 뇌 구조 변화의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양극성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전장 엑솜 분석을 통해 유전자 단위의 희귀 변이와 뇌영상 지표의 연관성을 함께 밝힌 첫 번째 연구로서, 이번 연구가 유전적 차이가 신경전달 과정과 치료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후속 연구의 단서가 될 전망이다. 연구팀은 후속 검증 연구를 통해 이번에 확인된 유전변이의 임상적 활용 가능성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중개정신의학'(Translational Psychiatry)에 지난달 온라인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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