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김수빈 인턴 기자 = AI 열풍을 타고 메모리 반도체 장기 공급계약이 급증하고 있지만, 수요가 꺾이면 계약이 재협상 되면서 기대했던 매출이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지난 2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AI 호황을 결속하는 상업적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도 "AI 열기가 식는다면 투자자들은 이 계약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메모리를 많이 사용하는 자율형 AI 에이전트가 성장하면서 관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격 경쟁이 치열하고 업황 변동성이 컸던 메모리 산업이 안정적인 사업으로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거두며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고객사와 통상 5년 동안 유지되는 '전략적 고객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고객이 제품을 인도받지 않더라도 약정한 대금을 지급해야 하는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방식이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이들 계약에서 향후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WSJ는 "장기 계약이 상승세를 이끄는 데 도움이 되고 있지만, 침체기에도 확실성을 제공하는지는 의문"이라고 짚었다. 메모리 수요가 계약 만료 전에 감소하면 계약 조건이 재협상 되거나 이행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필요하지 않은 반도체까지 예정대로 공급할 경우 그 물량은 고객사 창고에 재고로 쌓이게 된다. 이후 수요가 회복되더라도 고객사가 기존 재고부터 소진하려 하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사 입장에서는 신규 매출이 발생하는 시점이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 WSJ는 "원하지 않는 메모리를 공급망에 밀어 넣으면 장기적인 고객 관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 계약에 대한 의존은 메모리 시장을 넘어 AI 공급망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2025년 중반 이후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오라클의 수주 잔액은 두 배 이상으로 늘었으며, 이 기간 추가된 금액만 1조 달러(약 1475조원)를 넘는다.
국제결제은행(BIS)은 기업들이 미래 생산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 계약을 맺으면서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AI 공급망의 과잉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WSJ는 이를 두고 장기 계약을 근거로 기업에 자금을 제공한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훗날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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