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 판결문
법원 "尹, 김건희 통해 明과 묵시적 합의"
"김건희가 여론조사 수수 범행 조종·지배"
明 "윤 부부는 정치적 공동체…5대 5 나눠"
[서울=뉴시스]이승주 기자 =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로부터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은 혐의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 재판부가 김건희 여사가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윤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명씨와의 묵시적 합의가 이뤄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김 여사가 명씨를 만나 맞춤형 여론조사 실시·제공 등 협의한 것을 윤 전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었고, 김 여사를 통해 명씨와 '의사의 합치'를 이뤘다는 것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전날 선고한 윤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 판결문에 "김 여사는 명씨와 만난 직후 윤 전 대통령에게 협의 내용을 전달했고, 윤 전 대통령은 명씨에게 김 여사와 같은 뜻을 묵시적으로 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다.
명씨는 김 여사와 초반 만남 당시 '앞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인 선거여론조사의 실시·제공 등을 통해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게 도와드리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이후 김 여사가 명씨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여론조사에 관해 일임해 처리해 달라는 의사로 "잘 부탁한다. 명 선생님만 믿겠다"고 말한 것으로 봤다.
김 여사는 명씨와 만난 직후 협의 내용을 윤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보이고, 이 같은 협의가 명씨가 김 여사에게 처음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제공한 2021년 6월 26일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명씨에게 윤 전 대통령의 휴대전화 번호와 당시 홍준표 후보의 행사 참여 정치인 명단 등을 보냈는데, 윤 전 대통령 역시 명씨의 도움을 받겠다는 의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도 설시했다.
김 여사가 2021년 7월 명씨에게 "사무실 근처 오심 문자주세요. 직원이 저희 집으로 안내할거에요. 사무실은 사람이 있어서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점에도 주목했다.
만약 김 여사가 독자적으로 명씨에게 정치적 도움을 받기로 했던 것이라면 윤 전 대통령과 함께 있는 집보다는 사무실에서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봤다.
그럼에도 명씨를 집으로 부른 건 이미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명씨의 도움을 받기로 의사의 합치를 이룬 상태에서, 보다 은밀하고 긴밀하게 여론조사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아울러 김 여사가 명씨와 협의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만남 일정 등을 정했고 실제 윤 전 대통령이 이에 따라 움직였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윤석열이 이준석, 안철수를 만나면 해야 할 질문 리스트'를 요청해 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김 여사는 단순히 대선후보의 배우자 지위에서가 아니라 더 나아가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수시로 협의하고, 유기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당선에 유리한 여러 활동을 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다.
명씨가 수사기관에서 "윤 전 대통령과 김 여사는 정치적 공동체 관계다. 김 여사가 모든 게 (윤 전 대통령과) 5대 5라고 했다"고 진술한 점도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에 힘을 실었다.
윤 전 대통령이 앞선 공판에서 "아무리 부부 사이라고 해도 당시 제가 사람을 굉장히 조심할 때고, 이를 김 여사도 알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저한테 얘기를 잘 안 한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여론조사 수수 범행에 이르는 핵심적 경과를 조종하거나 촉진하는 등으로 지배해 윤 전 대통령과 자신의 의사를 실행에 옮기는 정도에 이르렀다"며 "김 여사가 '정치활동을 하는 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정치자금 부정수수죄의 공동정범으로 책임을 진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는 명씨가 이른바 '윤석열 맞춤형 여론조사'를 제공하기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한 것으로도 적시됐다.
재판부는 "여론조사 결과를 중요시하던 윤 전 대통령은 명씨에게 지지율 차이가 적게 나온 여론조사에 대한 불만의 뜻을 표시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원했다"며 "명씨는 윤 전 대통령 부부 뜻에 따라 유선전화 비율을 더 늘리는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단지 명씨가 제공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일방적으로 받아보는 관계에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도 판단했다.
명씨는 공표용 여론조사는 표본추출 방식에서 유선 비율을 늘리거나 설문 내용을 윤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바꿨다. 비공표용 여론조사는 표본 값을 임의로 부풀려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을 변경하고 윤 전 대통령이 우위에 있도록 조정했다.
결과가 왜곡된 여론조사 중 3건은 윤 전 대통령 부부에게 직접 전달됐다. 재판부는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걸 전제하지 않으면 굳이 왜곡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일련의 행위는 윤 전 대통령 부부와 명씨 사이에 여론조사 제공에 관한 합의가 있었음을 강하게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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