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총·화염방사기 달고 러 진지로…우크라 지상로봇의 진격

기사등록 2026/07/14 14:48:35

물자·탄약 운반 넘어 공격·진지 사수까지…매달 수천 차례 임무

지난해 두 배 넘는 5만대 생산 계획…러시아보다 활용 속도 앞서

[서울=뉴시스]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송 드론, 지뢰 살포 드론, 자폭 지상 드론(왼쪽)과 수송 드론, 무장 지상 드론. (출처=폴리티코) 2026.4.21.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기관총과 화염방사기, 폭발물을 장착한 우크라이나 지상로봇이 러시아군 진지 공격에 투입되고 있다. 병력 열세를 메우기 위해 개발된 ‘땅 위의 드론’이 보급과 후송을 넘어 보병이 맡던 공격과 진지 사수까지 넘겨받고 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궤도나 바퀴로 움직이는 무인지상차량(UGV), 즉 지상로봇을 운용하는 부대들은 물자·탄약 운반, 부상병 후송, 지뢰 설치, 진지 방어 등을 맡아 매달 수천 차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운용병들은 무선 조종기로 로봇을 원격 조종한다.

우크라이나 하르티야(Khartiia) 군단은 2024년 12월 하르키우 지역에서 지상로봇과 드론만으로 러시아군 진지를 공격했다. 공격 장비를 모두 무인화한 최초의 작전으로 알려졌다. 기관총과 화염방사기, 폭발물을 장착한 지상로봇들이 숲을 통과했고 드론은 상공에서 전장을 감시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작전으로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4월 자국 병사를 직접 위험에 노출하지 않고 지상로봇과 비행 드론만으로 러시아군이 지키던 진지를 장악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지상로봇 5만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지난해 생산량의 두 배가 넘는다. 군은 지상로봇 전담센터도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군도 지상로봇을 사용하지만 활용 규모는 우크라이나에 훨씬 못 미친다고 NYT는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보다 병력이 적다. 비행 드론 때문에 움직이기만 해도 공격받을 수 있는 ‘살상지대’는 일부 지역에서 전선 후방 약 24㎞까지 뻗어 있다. 일부 전선에서는 진지 자체보다 그곳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더 위험해졌다.

[바흐무트=AP/뉴시스] 1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군의 항복을 촉구하는 전단 뭉치를 동봉한 다연장 로켓이 발사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2023.08.14.
지상로봇 개발을 이끈 사람들은 비행 드론 분야의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아니라 최전선의 용접공과 정비공, 보병들이었다. 지상로봇 제작업체 유포스의 올렉시 혼차루크 이사회 의장(전 우크라이나 총리)은 “비행 드론은 창의적인 정보기술 인력의 손에서 빠르게 발전했다”며 “반면 지상로봇은 최전선 보병이 부품을 어떻게 결합해야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찾아내는 현장 작업에서 발전했다”고 말했다.

지상로봇 대대를 지휘하는 올렉산드르 하르코베츠 대위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전 자동차 전자장비 정비소를 운영했다. 그는 2023년 바흐무트 시가전에서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소총을 들고 싸우다가 ‘이런 시가전은 기계가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퇴각 과정에서 숨진 전우들을 남겨둔 뒤에는 숨지거나 다친 전우가 전장에 남겨지는 일을 막겠다고 결심했다.

하르코베츠 대위는 원격조종 차량에 갈고리와 기관총을 달아 엄호 사격을 하면서 시신을 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이 차량은 같은 해 특수부대가 일주일 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시신을 수습하는 데 투입됐다. 그가 작전 영상으로 지휘부를 설득하면서 지상로봇이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올렉산드르 소령이 지휘하는 K-2여단 지상로봇 대대는 병력 500여명과 로봇 600여대를 보유하고 하루 5~6차례 임무를 수행한다. 지상로봇은 픽업트럭보다 작고 느리지만 상공에서 발견하기 어렵고 사람의 체온 신호도 없다. 드미트로 이바노프 제36여단 지상로봇소대 지휘관은 무인 장비가 충분히 보급된 뒤 수송과 보급 등 전체 임무의 최대 80%를 병사 대신 무인 장비로 수행했다고 전했다.

[키이우=AP/뉴시스] 1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역 야타간 무인항공학교의 군 교육생이 스팅 요격 드론의 요격 훈련을 위해 표적용 드론을 띄우고 있다. 2026.03.20.
지상로봇은 병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부상병 후송에도 투입된다. K-2여단은 최근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돌격대원을 지상로봇으로 후송했다. 로봇은 적진 약 4㎞를 통과하면서 지뢰 폭발을 세 차례 견디고도 부상병을 무사히 후송했다. 올렉산드르 소령은 “로봇이 없었다면 누구도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지상로봇은 장애물이 없는 평지에서는 쉽게 노출되고 병사처럼 장애물을 넘거나 참호 안으로 뛰어들지 못한다. 돌발 상황에도 즉각 대응할 수 없다. 아군과 적군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위험도 있어 한 부대는 군복에 전파식별장치(RFID) 칩을 꿰매 넣어 로봇 포탑이 우크라이나군을 식별하는 방안을 시험했다.

지상로봇의 평균 가격은 약 2만4000달러(약 3600만원)로 중량물 운반용 비행 드론의 두 배 수준이다. 다만 보병전투차 1대 가격이면 지상로봇 77대를 살 수 있다. 막심 바실첸코 우크라이나 지상로봇시스템제조업협회장은 “인명 피해 없이 임무를 완수할 기회를 77번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무장 로봇이 항복한 러시아군을 우크라이나 진지까지 인도하기도 한다. 러시아군은 로봇 앞에서 백기를 들거나 두 손을 들어 항복 의사를 표시한다. 미콜라 진케비치 소위는 제3돌격여단에서 12.7㎜ 기관총을 장착한 궤도형 로봇의 경계 작전을 지휘했다. 로봇은 45일 동안 매일 아침 경계 위치로 이동했다가 저녁에 돌아와 충전했다. 러시아군은 경계 임무를 수행한 장비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울=뉴시스] 우크라이나 내무부 장관 고문인 빅토르 안드루시프가 "러시아 군인이 항복했다"며 SNS에 올린 사진. 러시아 군(왼쪽)으로 추정되는 병사가 엎드려 항복 자세를 취하고 있다. (출처 : 빅토르 안드루시프 SNS) 2022.03.28. *재판매 및 DB 금지
비행 드론을 요격하는 자동화 포탑도 시험 중이다. 시험 단계지만 이미 수십 차례 드론 요격에 성공했다. 사격 사이에는 전원을 내려 열 발생을 줄이기 때문에 적의 열화상 카메라에 포착되기 어렵다. 진케비치 소위는 포탑이 드론 한 대를 격추할 때마다 우크라이나 병사 3~4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현장에서는 지상로봇에 디지털카메라와 스타링크 단말기를 달고 파편 방호 장갑과 펑크가 나지 않는 비공기압 타이어를 추가하는 개량이 계속되고 있다. 배터리를 추가한 로봇의 작전거리는 약 48㎞까지 길어졌다. 이바노프 지휘관은 “전쟁에는 고정된 전술이 없다”며 “상황을 판단하고 앞을 내다보며 끊임없이 해법을 바꿔야 한다. 매일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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