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물에 '운지'를 써"…교실까지 침투한 '극우 밈' 혐오 문화

기사등록 2026/07/10 13:50:23 최종수정 2026/07/10 14:12:37

'일탈 아닌 사회의 산물'…또래 문화 타고 확산

극우 커뮤니티 은어, 교실에선 '밈'으로 소비

중요한 건 교육…"혐오 왜 문제인지 알려야"

[전남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서울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광주제일고로 사과 방문을 온 6일 오후 배재고 야구부원들이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2026.07.06. leeyj2578@newsis.com

[서울=뉴시스] 조성하 조수원 기자 = 온라인 극우 커뮤니티에서 소비되던 혐오 표현이 숏폼과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청소년 또래 문화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전국 고교 야구대회에서 배재고 학생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사건도 일명 '극우 밈'이 학교 현장으로까지 확산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배재고 야구부는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대회에서 광주제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전국민적 공분을 샀다.

이는 지난 5월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을 차용한 표현으로 당시에도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응원 구호로 사용한 배재고 학생들의 행동 역시 역사 왜곡과 지역 비하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극우 커뮤니티 은어, 교실에선 '밈'으로 소비…"불편하지만 넘어가"

교육 현장에서 혐오 표현은 더 이상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교사들은 극우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은어나 역사 왜곡 표현이 학생들의 일상 언어와 과제, 발표 자료까지 스며들고 있다고 말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89.3%에 달했다. 학생 간 대화뿐 아니라 수업 중 발언과 발표 자료에서도 혐오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가장 빈번하게 목격된 사례는 정치인이나 역사적 인물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표현이었다.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접했다는 교사는 58.2%였고,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을 향한 혐오·차별 표현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57.0%에 달했다.

박영환 전교조 위원장은 "학생들이 말끝마다 '~노'를 붙이거나 '운지', '부엉이바위' 같은 표현을 과제물과 일상 언어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며 "아마 일간베스트(극우 커뮤니티) 사이트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사이버 공간을 자신들의 혐오적 인식들, 이념을 전달하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해 왔던 것이 쌓이고 쌓여서 이렇게까지 온 것이라고 보여진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소재 중학교에 다니는 최지연(15·가명)양은 "남학생들끼리 장난으로 친구를 부를 때 (친구의) 엄마 이름으로 부르거나, 분위기를 띄우려고 갑자기 '노무현', '운지'라고 외치는 경우가 있었다"며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모르고 그냥 웃기려고 따라 하는 애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혐오 표현이 또래 문화 속에서 쉽게 제지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교조 조사에서는 학생 43.4%가 친구들의 혐오 표현을 '불편하지만 그냥 넘어간다'고 답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학생이 오히려 '진지충', '선비', '설명충' 등으로 낙인찍히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침묵이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라북도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유하늘(18·가명)양은 "뭘 얻자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쪽수로 밀린다 싶으면 조용히 있고, 우리(생각이 비슷한 친구들)가 더 많으면 말린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10대는 또래 집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라며 "주변 친구들이 일베식 말투나 우파적 경향성이 대세가 되면서 이를 하나의 유행처럼 받아들여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남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이효준 서울 배재고등학교 교장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스벅 가자' 사태에 대한 사과문을 읽다가 눈물을 닦고 있다. 2026.07.06. leeyj2578@newsis.com

◆"청소년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또래 문화도 확산 요인"

전문가들은 극우 밈 확산의 근본 원인을 청소년 개인보다 사회 구조와 기성세대에서 찾았다. 경쟁 중심 사회와 정치권의 혐오 조장, 온라인 플랫폼 알고리즘이 맞물리며 청소년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와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혐오) 콘텐츠를 노출하면서 혐오 문화를 놀이처럼 받아들이게 만든 측면이 있다"며 "이에 더해 경제적 불평등과 입시 경쟁, 성적 중심 문화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거나 협력하기보다 무시하는 문화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학생들만 비난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며 "아이들은 결국 어른들의 거울이고, 혐오 표현 역시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청소년들은 뉴스와 정치권, 사회 전반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악마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배우고 있다"며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논란을 정치권이나 기존 세력들이 과도하게 이용하다 보니 학생들이 무비판적으로 따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원래 하위문화였던 일베식 문화가 정치권 등 기성세대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오히려 청년과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라며 "청소년을 비난하기보다 사회와 정치권이 먼저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참배하고 있다. 2026.07.06. leeyj2578@newsis.com

◆'처벌만으론 한계'…"시민교육 회복 필요"

또 이들은 이번 논란이 단순히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혐오 표현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기준을 세우는 동시에 역사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왜 이런 표현이 문제인지 이해하도록 하는 과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태 교수는 "학교에서 역사교육과 민주시민 교육이 사실상 방치되다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이 역시 학생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만든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다만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교육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교조 설문에서는 교사들이 혐오 표현을 적극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로 정치적 중립 위반 우려와 학부모 민원, 온라인상 공격 가능성 등을 꼽았다. 학교 차원의 대응 매뉴얼이 있다는 응답도 2.1%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일정 수준의 규제도 병행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윤태 교수는 "처벌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단기적으로는 규제 장치도 필요하다"며 "혐오 발언을 처벌할 수 있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교육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재근 평론가도 "학생들은 교육의 대상인만큼 교화가 우선돼야 하지만 심각한 혐오 표현에는 일정 수준의 규제와 처벌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지난 1일 배재고에 6개월 출전 정지와 청룡기 잔여 경기 몰수패를 의결했다. 이후 배재고는 광주일고를 직접 찾아 학생 간 사과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배재고는 지난 8일 학교와 학생, 학부모 간 논의 끝에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징계 처분에 대한 재심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제출한 경위서에 "해당 표현이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는 의미인 줄 몰랐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사실이 알려지면서, 용서와 화해 국면으로 접어들던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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