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틈타 기름값 '14조 담합'…소비자들, 손해배상 가능할까

기사등록 2026/07/07 06:00:00 최종수정 2026/07/07 06:28:24

전쟁 이후 유가 폭등…檢, 정유사들 담합 확인

집단 손배소 가능하지만 …"입증 난항 예상"

검찰 "미국처럼 국가가 공익 소송할 수 있어야"

[서울=뉴시스] 김명년 기자 =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미국·이란 전쟁 발발을 빌미 삼아 14조원대 유가 담합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담합 행위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 유가정보 알림판. 2026.07.07. kmn@newsis.com

[서울=뉴시스]박선정 기자 =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 등 국내 주요 정유사들이 미국·이란 전쟁을 빌미로 14조원대 유가 담합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담합 행위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지난 6일 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합의해 국내 유가를 끌어올렸다고 보고 두 회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두 회사의 가격을 뒤따르며 담합 행위에 편승했으나, 현행법상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보고 담합 혐의로는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직접 담합 규모가 14조2000억원에 이르고, GS칼텍스와 에스오일의 담합 가격 추종에 따른 파급 효과까지 감안했을 때 경쟁제한 효과는 약 26조원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국민 입장에선 '내가 어떻게 보상받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며 피해 복구 문제도 별도로 언급했다.
[서울=뉴시스] 황준선 기자 =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지난 4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전분당 및 부산물 가격 담합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6.07.07. hwang@newsis.com

현행 공정거래법은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로 손해를 입은 당사자가 사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피해자가 직접 자신이 입은 손해와 담합으로 인해 그 손해가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소비자들의 집단 손해배상 청구가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원고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이 같은 소송 특성상 승소 문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한 공정거래 분야 전문 변호사는 "담합이 있었다는 점과 별개로 소비자가 얼마를 더 지급했는지, 담합이 없었다면 정상 가격이 얼마였는지를 경제학자들의 분석 등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며 "개인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로펌이 다수 원고를 모집해 제기하는 집단소송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담합 사건을 둘러싼 집단 손배소송은 그간 꾸준히 제기됐다. 2012년 비료 담합 사건에서는 농민 1만8000여명이 남해화학 등 13개 비료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약 8년 만에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최근 적발된 밀가루·설탕 담합 사건에서도 서초동 로펌 주도로 손배소송이 추진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정유사 담합 사건이 다른 사건에 비해 소비자별 피해 규모를 특정하기 비교적 수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밀가루나 설탕 등 식품 공정 과정에 들어가는 원재료는 최종 소비자가 간접적으로 부담한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려운 데 비해, 유류비는 주유 영수증이나 카드 결제 내역을 통해 액수를 쉽게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같은 소송은 손해액 산정과 인과관계 입증을 위한 감정 절차 등이 필요해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통상 담합 사건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와 형사재판, 회사가 불복하는 경우 행정소송 등을 거친 뒤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최종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부천시와 서울시가 최종 승소한 지하철 7호선 입찰 담합 손배소도 판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수사 자료 확보는 또 다른 난관이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문서송부촉탁 등을 통해 자료 확보를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국가 기관이 아니라 시민단체 등 일반인들에게 수사자료를 폭넓게 제공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지난 5월 6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를 찾은 운전자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2026.07.06. jhope@newsis.com

수사기관으로부터 자료를 확보하더라도 곧바로 손해액 입증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검찰이 확보한 자료는 담합 여부나 정유사들의 책임을 입증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개별 소비자가 담합 행위로 어느 정도의 손해를 입었는지는 별도의 감정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유사 측과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소송에 드는 시간과 돈을 고려했을 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이에 국가기관이 직접 공익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 부장검사는 전날 브리핑에서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사례를 소개하며 "미국은 담합 사건이 적발되면 법무부 소속 검사가 직접 공익 소송을 제기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불특정 다수 피해자들이 직접 쟁송 행위에 나설 필요가 없고 어떤 비용도 지출하지 않으며, 국가가 나서서 피해를 보전받게 해주는 것"이라며 "이런 제도를 (국내에)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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