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감축, 행정부 통제강화 등 대통령 권한 강화 판결
관세 출생시민권 선거제도 관련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 회기를 마친 미 연방대법원은 오는 9월까지 여름 휴정에 들어간다.
30일(현지 시간) 워싱턴포스트(WP),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연방 공무원 감축과 행정부 통제 강화 등 대통령 권한 확대에는 우호적인 판단을 내렸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서 압박해온 관세 정책, 출생 시민권 제한, 선거 제도 관련 주장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회기를 두고 미국 정치권에서는 보수 우위의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기보다, 전통적 보수 법철학에 따라 선택적으로 힘을 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권한은 넓어졌지만, 가장 원했던 승부처에서는 기대만큼 성과를 얻지 못한 셈이다.
◆트럼프 권한 확대에는 힘 실은 대법원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방정부 자체를 축소하고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는 방향의 개혁을 밀어붙였다. 연방 공무원 조직을 줄이고, 독립기관의 자율성을 약화하며, 의회가 정해 놓은 예산 집행 구조를 행정부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영역에서 대법원은 대체로 트럼프 행정부 편에 섰다.
법원은 대통령이 독립기관 인사에 대해 더 폭넓은 해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동안 미국 행정 체계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된 기관들이 존재했고, 의회는 기관장들이 정치적 압력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 장치를 마련해 왔다.
하지만 이번 회기에서 대법원은 대통령의 행정부 통제권을 보다 넓게 해석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기관 구조조정과 공무원 감축을 보다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수만 명 규모의 공무원 축소, 일부 기관 기능 폐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 취소 등도 가능해졌다.
이는 보수 진영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단일 행정부 이론(unitary executive theory)'과 맞닿아 있다고 WP는 분석했다. 이 이론은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관세·출생 시민권…트럼프 핵심 의제엔 제동
하지만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강하게 밀어온 사안들에서는 훨씬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관세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단순한 통상 정책이 아니라 경제·안보·외교 전반을 움직이는 핵심 수단으로 인식해 왔다.
그는 대통령 권한만으로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지만, 법원은 이 같은 관세 정책 추진에는 제동을 걸었다.
출생 시민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관행을 제한하려 했고, 이를 자신의 핵심 정치 과제로 공개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는 관련 구두변론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헌법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이 사안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선거 제도 개편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철저히 기존의 법적 안정성을 우선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정선거 가능성을 주장하며 오랫동안 우편투표 요건 강화, 투표함 설치 제한, 신원 확인 절차 대폭 확대 등 선거 운영 방식의 전면적인 개편을 요구해 왔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 주 정부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임의로 변경한 선거 규칙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소송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 수십 년간 이어진 유권자들의 투표 관행을 사법부가 쉽게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원은 사법부가 선거 직전에 규칙을 변경해 유권자와 선거 관리 유관기관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법리를 적용해 트럼프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정치 질서에선 보수 의제 강화
반면 공화당에 유리한 제도 변화에는 보다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법원은 특정 상황에서 소수 인종 유권자 보호를 위해 활용돼 온 투표권법 적용 범위를 제한했고, 텍사스주의 의회 선거구 재조정도 허용했다. 정당과 후보 간 선거자금 협력을 제한하던 규정 역시 완화했다.
이들 결정은 공화당의 향후 선거 전략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대법원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이 제기해 온 선거 불복 논리를 수용하기보다, 보수 진영이 오랫동안 추진해 온 선거·정치 구조 개편에는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 셈이다.
◆이민 정책은 절반의 성적표
이민 정책에서는 성적표가 엇갈렸다. 이민은 트럼프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과 두 번째 임기의 핵심 의제였지만, 대법원 판단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행정부가 제3국 추방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120만 명 이상에게 적용되던 임시 보호 신분(TPS) 종료도 인정했다.
반면 적성국 국민법을 이용한 일부 추방 시도에는 제동을 걸었고, 특히 적법한 행정 절차를 어기고 엘살바도르로 추방된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 사건에서는 행정부가 귀환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했다.
이 같은 판결 결과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출생 시민권 판결을 앞두고 대법원이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판결 직후에는 정면 충돌보다 정치적 메시지 전환을 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시진핑 주석과 중국이라는 위대한 국가가 거대한 출생 시민권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한다"고 판결을 비꼬았고, 이어 의회가 입법을 통해 출생 시민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결정 자체를 공격하기보다 다른 경로를 통한 정책 추진 가능성을 강조한 것이다.
반대로 행정부 인사권 확대와 기관장 해임 권한 인정 판결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내린 가장 크고 중요한 판결"이라고 평가하며 적극 부각했다.
백악관은 일부 판결을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로 평가했다. 특히 대법원이 임시 보호 신분(TPS) 종료 권한을 인정한 결정에 대해 이를 대통령의 이민 정책 추진 동력을 강화한 사례로 해석했다.
◆대법원이 선택한 것은 트럼프 아닌 '보수'
다만 이번 회기를 통해 드러난 것은 보수 성향의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우선순위를 그대로 따라가는 기관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법원은 행정부 권한 확대와 정부 축소라는 전통적 보수 의제에는 힘을 실었지만, 관세·출생 시민권·선거 질서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서서 밀어붙인 핵심 승부처에서는 잇달아 선을 그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 운영 수단은 얻었지만, 가장 원했던 정치적 승리는 얻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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