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구심력·원심력이 빚어낸 '아리랑'의 완벽한 원형

기사등록 2026/06/14 00:53:24

13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BTS 월드 투어 '아리랑' 인 부산' 리뷰

"월드투어 가운데 토대 감각을 가장 중심에 세우는 방식"

"해외서 인기가 많아도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앨범 '아리랑' 다짐과 궤를 같이 해"

[부산=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이재훈 기자 = 기분 좋은 바닷바람 위로, 11만 명의 심장 박동이 거대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13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펼쳐진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BTS 월드 투어 '아리랑' 인 부산'의 두 번째 날 무대.

전날에 이어 360도로 개방된 원형 공간은 5만5000개의 보랏빛 아미밤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인 동시에, 전 세계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눈부신 발광체였다. 중심을 향해 맹렬히 파고드는 '구심력'과 바깥을 향해 무한히 뻗어나가는 '원심력'의 완벽한 균형, 그것이 지난 4월 고양 공연 이후 절정에 달한 이번 투어의 미학이었다.

무대는 '훌리건(Hooligan)'으로 포문을 열며 단숨에 끓어올랐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충돌하는 360도 무대의 진가는 곧바로 드러났다. '에일리언스(Aliens)' 무대에서 원형 틈새로 무용수들이 우르르 빠져나오는 대목은 숨 막히는 역동성을 선사했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모티브로 삼아 달리는 형상을 춤으로 승화한 '달려라 방탄', 전통 탈 이미지를 대형 스크린에 띄워 압도감을 준 '데이 돈트 노 바웃 어스(They Don't Know About Us)'로 이어진 흐름은 거칠 것이 없었다. 짐승처럼 내달린 '라이크 애니멀스(Like Animals)'와 '페이크 러브(FAKE LOVE)', 이어진 '스윔(SWIM)'과 '메리 고 라운드(Merry Go Round)'는 몰아치는 에너지의 완급을 섬세하게 조율했다.

이번 투어의 뼈대인 '2.0' 무대는 붉은색과 파란색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태극 문양을 그리며 웅장하게 전개됐다. "그래 방탄처럼 그게 말은 쉽지"라는 당찬 노랫말은 13년의 궤적을 관통하는 통쾌한 선언이었다. 특히 오직 부산을 위해 한국어 버전으로 준비한 '노멀(NORMAL)'의 수묵화 무대와 붉고 푸른 조명이 교차한 '낫 투데이(Not Today)'는 이들이 가진 구심점, 즉 한국적인 얼이 얼마나 단단한지 증명했다.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지역성은 세트리스트 곳곳에서 빛났다. 이번 부산 공연 첫날인 전날에는 '팔도강산'과 '마 시티(MA CITY)'로 긍지를 내세웠던 이들은, 데뷔 13주년 당일인 이날엔 '보조개'와 '땡'을 선보이고 이례적으로 세 번째 곡으로 '매직 숍(Magic Shop)'을 불렀다.
[부산=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제이홉은 "어제는 사투리, 오늘은 유닛 곡"이라며 미소 지었다. 진이 "역시 부산, 부산 야호!"라고 외치고, 제이홉이 "내가 발 디딘 내 땅, 내 도시에서 공연하는 게 제일 즐겁다"고 한 고백은 세계의 정점에서 다시 고향의 흙을 밟은 자들만이 내뱉을 수 있는 정확한 진심이었다.

떼창과 환호가 가장 크게 터진 '마이크 드롭(MIC Drop)'부터 '불타오르네'까지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에너지는 '보디 투 보디(Body to Body)'와 '아이돌(IDOL)'에서 기어코 만개했다. 일곱 멤버가 원형 트랙을 쉼 없이 돌고 시원한 워터 캐논이 터지는 가운데,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이라는 '아리랑'의 애달픈 구절이 양일 국경을 초월한 11만 명의 떼창으로 울려 퍼졌다.

가장 지역적인 정서인 아리랑이 해외 팬들의 입을 통해 불릴 때, 기원을 지키려는 구심력은 마침내 세계를 끌어안는 원심력으로 치환됐다. 각국에서 온 아미들이 생일 축하 슬로건과 '방탄갈매기'(방탄소년단+부산갈매기)를 흔든 '아미 타임', 그리고 물대포와 함께 축제로 번진 '버터(Butter)', '다이너마이트(Dynamite)' 무대는 거대한 소우주와 같았다.

세계를 유랑하는 월드 투어의 궤도 한가운데서, 기어코 13주년이라는 탄생의 당일을 부산이라는 출발점으로 가져온 선택은 하나의 고결한 윤리적 결단이다. 세계적이라는 것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이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장소에 발 딛지 않으면 결국 아무 데도 없는 유령이 되기 십상이다.
[부산=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일곱 멤버가 전원 한국인인 방탄소년단은 투어의 속도에 휩쓸려 기원을 증발시키는 대신, 자신들의 토대를 감각 가장 중심에 세우는 방식을 택했다. 거대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도 내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치열하게 묻는 자들만이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도 정확히 가닿을 수 있다는 미시적인 다정함의 증명이다.

이 깊은 정체성의 고민은 리더 RM의 고백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K-팝 산업이 거대해지는 격랑 속에서 후배들에게 "팀을 어떻게 이렇게 같이 오래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는 그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여섯 명을 통해서도 그리고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을 통해서 나를 계속 돌아봤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비춰본 이 겸정한 치열함이 13년의 구심점이었던 셈이다. RM은 "어디에 있어도, 어떤 모습이어도 항상 최선을 다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돌아오지 않을 6월13일"이라는 비가역적인 찰나 앞에서도 영원한 연대를 다짐했다.

중심과 확장의 팽팽한 균형을 지켜낸 다른 멤버들의 시선 역시 삶의 구체적인 질감과 맞닿아 있었다. 지민은 객석에 찾아온 초등학교 시절 춤 선생님들을 언급하며 "그분들과 여러분 덕분에 엇나가지 않고 올바르게 클 수 있었다"며 깊이 뿌리내린 감사를 전했다. 뷔는 "오랜만에 뭉친 저희가 얼마나 기대를 받을지 고심하며 준비했다. 오래 음악을 하고 싶다"고 진심을 건넸고, 정국은 "엄마가 보러 왔다"는 천진한 인사와 함께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머릿속에 아예 박아놔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소멸하는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슈가 또한 4년 전 천막이 쳐져 있던 경기장이 보수된 흔적을 짚어내고 객석의 이모들을 찾으며 시간의 더께를 정확하게 감각해 냈다.

대중음악 평론가들 역시 가장 지역적인 것의 보편성을 획득한 이번 부산 공연의 상징성에 주목했다.
[부산=뉴시스] 방탄소년단. (사진 = 빅히트 뮤직(하이브) 제공) 2026.06.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BTS 예술혁명 :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의 저자인 이지영 한국외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두 멤버(지민·정국)의 고향인 부산을 찾아온 것은, 아무리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도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앨범 '아리랑'의 다짐과 궤를 같이한다"고 짚었다. 조혜림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는 "가장 기념비적인 순간을 자신들을 키워낸 국내 아미들과 대면해 공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이자 초심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라고 분석했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 또한 "성공은 세계 시장에서 완성됐을지언정 정체성과 뿌리는 한국에 있음을 증명했다"며 "한국에 '서울'만이 아닌 '부산'이라는 거대한 인프라가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린 상징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개성적이고, 지역적인 것으로 세계의 마음을 관통한 방탄소년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완벽한 원을 그리며 영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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