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주 쏠림 경계 커진 월가, 실물경제주로 분산
코스피 92% 급등했지만 반도체 의존도는 부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나스닥종합지수가 이날 약 1% 하락하며 올해 초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장중 올랐던 상승폭을 내줬다고 보도했다. 기술주 반등 흐름이 하루 만에 꺾이면서 미국 증시의 변동성도 다시 커졌다.
투자자들의 우려는 미국 증시의 사상 최고치 행진이 소수 반도체 기업의 급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고금리 부담, AI 투자 열기에 대한 의구심, 스페이스X의 대규모 기업공개(IPO)를 시작으로 신규 기술주 물량이 시장에 쏟아질 가능성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날 시장 전체가 약했던 것은 아니다. S&P500지수는 0.3% 하락했지만, 11개 업종 가운데 부동산·필수소비재·헬스케어 등 9개 업종은 상승했다. 주택개량 유통업체 홈디포와 식품업체 J.M. 스머커 등 주택·소비·식품 관련 종목들이 강세를 보였다. 조슈아 섀크터 이스터리 스노 최고투자책임자는 WSJ에 “일부 반도체주는 밸류에이션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투자심리와 상승세에 기대 거래돼 왔다”며 “다른 곳에도 기회는 많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첫 번째 대안은 운송주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 금리 상승 우려는 커졌지만, 동시에 경기 침체 우려는 줄었다. 항공·화물·철도 등 운송주는 상품과 원자재 이동을 맡아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선행 지표로 꼽힌다. 다우존스운송평균지수는 최근 5거래일 연속 상승했고, 올해 들어 상승률은 29%에 이르렀다. 화물 운송업체 올드도미니언프레이트라인, 상용차 렌털·물류업체 라이더시스템, 물류기업 매트슨 등은 최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실적이 탄탄한 기업들도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동 전쟁, AI 거품 우려, 사모대출 시장 불안에도 미국 기업들의 이익 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빅테크 기업이 이익 성장을 주도했지만, 다른 업종도 점차 격차를 좁히고 있다.
엔비디아 같은 대형 기술주에 덜 휘둘리는 투자 상품도 대안으로 떠올랐다. S&P500 구성 종목을 같은 비중으로 담는 ETF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대형주가 지수 전체를 끌고 가는 일반 S&P500과 달리, 구성 기업들의 움직임을 더 고르게 반영하는 방식이다.
S&P500 동일가중 지수는 올해 들어 8% 넘게 올라 시가총액이 큰 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일반 S&P500 상승률 7.9%를 소폭 앞섰다. 기술주 몇 종목에 집중한 투자보다, 폭넓은 업종에 나눠 담은 방식이 더 나은 성과를 낸 셈이다.
옵션시장에서도 불안 심리는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6일 기술주 매도세가 확산된 날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 거래량은 5000만 계약을 넘어섰다. 이는 2025년 4월 관세 충격 당시를 제외하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하루 거래량이다. S&P500 관련 옵션 거래량도 같은 날 780만 계약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약 64%는 당일 만기 옵션, 이른바 0DTE 옵션이었다. 투자자들이 하루 안에 지수의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하는 초단기 거래에 몰린 것이다.
미국 밖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미국 AI주 쏠림이 흔들릴 때 영향을 덜 받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 증시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국 코스피도 올해 92% 급등해 주요 증시 가운데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였다.
일본은 재정 부양 기대가, 유럽은 국방비 확대 흐름이 증시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올해 30% 올랐고, 영국 FTSE100지수는 3% 상승했다.
WSJ은 미국 증시의 기술주 중심 랠리가 당장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투자자들이 이미 다른 선택지를 찾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AI와 반도체가 여전히 시장의 핵심 축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월가의 관심은 이제 “기술주가 더 오를 것인가”에서 “기술주가 흔들릴 때 어떤 자산이 버틸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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